내가 영어를 잘했던 의외의 비결

불행했던 고등학생이 자라서 영어 선생이 되었다

by 암사자



현재의 괴로움, 고민, 자책과 반성은 미래의 나를 얼마나 도울까? 모든 경험은 자산이 된다는데, 내가 바보라서 겪는 번민의 경험도 나에게 자산이 될까? 세상도 나를 싫어하고 나도 이런 내가 싫어서 나만의 방으로, 구석으로 기어들어가 숨어서 하는 생각들은 나를 어디로 이끌까? 이 글은 그 생각들의 결과물로 먹고사는 자의 짧은 회고이다.


영어를 잘하는 의외의 비결은,


고등학교 때 나는 영어를 잘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문법은 전치사가 뭔지 모를 만큼 형편없었지만 모르는 단어가 정말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단어들을 독서로 갈고닦아진 국어 실력으로 이리저리 꿰면 해석하지 못할 문장이 없었다. 나는 왜 그렇게 많은 단어를 외우고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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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결은 바로 친구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들이 싫어할 말만 골라서 했다. 공부를 못하는 친구에게, “나는 공부 못하면 뭐 먹고살아야 할지 모르겠는데, 넌 다른 게 있나 봐?”라고 묻는 수준이었다. 정말 궁금해서, 무슨 다른 방법이 있나, 있으면 나도 하려고 물어본 것이다. 여자애들이 패거리를 지으며 다른 친구들과 편 가르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유치하다. 언제까지 남을 배척해서 자기의 안전을 도모하는 간사한 짓을 할 거야? 나는 정말 너희랑 같은 반이란 이유로 동류로 분류되는 게 싫다”라고 말했다.



친구가 없으면 이런 걸 하루에 6장 씩 쓸 수가 있다




​이런 나에 대한 평판이 어땠을지는 뻔한 일이다. 나를 위한 변명을 해 보자면, 나는 친구들에게 조금의 악의도 없었다. 그저 조금 조숙했고 현실적이었는데 말을 사회성 있게 고르지를 못했다. 그때의 나는 애들이 왜 나를 싫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 문제는 내가 대학에 가서 내 또래가 모두 나이를 먹음으로써 해결되었다. 친구들이 이런 필터를 거치지 않은 말의 폭격을 참아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던 것이다.


불행했다, 그러나


불행했다. 오전 7시부터 밤 12시까지 학교에 있는데 애들이 싫고 애들도 나를 싫어했다. 애들이 착해서 나를 괴롭히거나 왕따를 시키지는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그래서 남는 모든 시간을 단어를 외우고 책을 읽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은 ‘집단 따돌림’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혼자 생각하며 놀 시간을 주는 것이다. 나는 하루 종일 자유롭게 생각했다. 영어로 된 글이든 국어로 된 글이든, 주어진 지문을 읽고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고 공감하며 이해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왜 그랬어? 아 이래서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나도 이런 얘기 들어봤어. 지문과 대화를 나누는 마음으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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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과목을 이렇게 공부해야 하는 거라고 단언할 수 없다. 특히 수학은 처참했으니 전혀 조언할 바가 없다. 하지만 국어와 영어는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다. “그래?” “왜?” “아하” “나 같아도 그랬을 거야”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며 읽어 내려가야 한다. 능동적인 읽기를 하면 공부의 양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질 좋은 공부이기 때문이다.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의 흐름은 우리가 지각하는 것보다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즐겁지 않은 언어 공부는 힘든 게 아니라 편의주의적인 것이다.



학원에서 수업하면서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배경 지식을 알려주며 웃겨주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내 경험 때문이다. 언어 공부는 즐거워야 한다. 그러므로 학생이 가르치는 사람을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왜요? 저는 다른 경험을 한 적 있는데요?”를 할 수 없다면 그 수업은 언어 수업이 아니다. 수업의 속도를 높이고 싶다면 주입식으로 단어나 문법 사항을 ‘랩’하듯이 읊어주고 빠르게 적게 하는 게 아니라, 터져 나오는 생각을 받아줌으로써 사고의 속도가 빠르게 흐르게 도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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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아이들이 이해를 하지 못할 때는 경험의 폭이 좁아서 그런 것이다. 그럴 경우 학생들 개인의 성향을 잘 알거나 경험을 평소에 공유하고 있다면 설명할 도구의 폭이 넓어진다.


그렇다고 항상 영양가 있는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학원에서 입시 영어 수업을 하는데 이런 것 까지 생각해야 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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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 인간을, 그것도 어리고 모든 게 처음이고 뭐가 될지 모르는 손바닥 안의 꽃잎 같은 인간들을 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해주신 많은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많은 경솔한 말씀들이 상처로 남았다. 이 작고 여린 인간들의 인생에 내 말이, 나와 수업하며 교감하고 숙고하는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하려 한 적은 없지만 그들의 눈을 마주치면 느껴진다. 나는 애들 앞에 서면 내가 지휘자이자 연예인이 되었음을 느낀다. 수업을 일사불란하게 끌고 가고 내가 의도한 지점에서 애들이 웃고, 다시 집중해야 할 때 집중하게 하려면 강한 힘을 가진 지휘자이면서도 순간순간 빈틈 많은 연예인이어야 한다.



공부는 혼자, 스스로, 고독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놀다가 남은 시간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쩔 수 없는 시간에 최소한만 공부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제보다는 많이 공부했다고 자부하며 은근히 성적 향상을 기대한다. 고등학교 영어 공부는 단순히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익혀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 정말 많은 기초 상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능동적인 사고를 요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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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행한 고등학생이 아니었었다면 이런 것을 중시하는 선생이 될 수 있었을까? 자문하곤 한다. 아니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이 괴로웠으므로, 먼 길을 돌아 나와 이젠 내가, 나에게 배우는 학생들을 도울 수 있게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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