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사랑하며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방학 특강 2일 차 화요일 아침 9시 반. 나는 나의 당연한 출근을 준비하고 있다.
씻고 밥 먹고 머리 말리고 옷 입고 화장까지 마쳤다. 이제 마음의 준비가 남아있다. 34년을 살아온 덕에 몸의 준비는 자동으로 행해지는데, 마음의 준비는 그날의 날씨, 어제 받았던 전화, 오늘 갑자기 스쳐가는 생각들에 따라 매일 달라진다.
어떻게 보면 산다는 것은 결코 익숙해지거나 편해질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나의 매일이 다르기 때문에. 오늘이 다른 이유는 어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시로 스쳐가는 어제에 의해 상처 받고 또 치유받았다. 그리고 배웠다. 그 교훈으로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출근이 바쁘지 않은 직업을 가진 덕에 아침마다 생각의 시간을 차고 넘치게 갖는다.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지 못한 못난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런 나라도 예쁘게 봐 달라고, 나를 포기하지 말고 내가 주는 이 시간으로 나를 어떻게 데리고 살 것인지 고민해 달라고. 이렇게 소담한 선물을 매일 건네는 나를 위해, 나는 이 성의로서의 아침을 소중히 받아 든다.
오늘 나의 친구는 아침에 앱에서 버스 도착 시간을 잘못 알려준 탓에 지각을 했다. 그 바쁘고 스트레스받는 와중에도 그 소식을 내게 명랑하게 알려주며 푸념했다. 나는 그 푸념 덕에 아침을 웃으며 시작했다. 나는 그 친구가 나한테 토해도 봐 줄텐데, 6분 늦는다고 혼이 난다니. 조직 생활을 안 해 봐서 지각이 얼마나 엄중한 잘못인지 모르는 나는, 사람마다 사정이 있을 수 있는데 9시는 되고 9시 1분은 안 되는 게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잘리면 내 회사로 취직하라고 농담을 던져놓은 후 샤워를 시작했다.
뜨거운 물줄기 아래에서,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것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든 허허실실 좋은 상사가 되고 싶지 않겠는가. 누군가에겐 다정한 연인이고 살가운 자녀일 상사는, 팀장으로 출근을 하는 순간 큰 조직이 이상 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화를 내고 고과점수를 매길 것이다. 누구든 이 악역이 달가울 리 없다. 나는 그 사선에서 빗겨선 채로 사람 좋은 말이나 해대는 것이다. 나의 모든 말은 가벼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심각해지는 순간, 직장인들의 생계를 위한 분투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이 된다.
내 친구와 그녀를 혼낼 팀장, 그리고 모든 직장인들의 아침을 응원하고 싶어 졌다. 이렇게 애정을 담아 당신들의 노동을 성스럽게 여긴다는 문장을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기는 하지만. 나는 그분들이 9시부터 6시까지 일한 급여를, 그들의 자녀들의 교육비로서 벌어 산다. 그분들은 핸드폰도 만들고, 보험 서비스도 제공하고, 치안도 유지하고, 건물도 짓는데 나를 경제의 일원으로서 먹고살게도 해 주신다. 스스로를 회사의 노예라고 칭하지만 사실 그들이 사회의 주인임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종종 이렇게 앉아 열심히 사는 사람들 속의 나의 쓸모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사랑과 알량한 영어 지식뿐임을 아쉬워하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조금 더 잘하는 것 말고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나 자조한다. 하루에 4시간만 쓰이다 보면, 노동이 돈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시간의 문제이기도 함을 느끼게 된다. 나의 나머지 20시간은 너무도 쓸모가 없어서, 8시간을 자다 깨어도 ‘내가 일어나서 할 일이 없는데 일어나서 뭐해?’ 하며 다시 잔다. 두 시간을 더 자서 10시간을 채우고서야 더 이상 잠이 안 와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 10시간을 책을 읽고 인터넷을 한다. 그렇게 3년을 보내니 치열한 세상 속의 나의 무용함을 참을 수가 없어졌다. 그래서 작가가 되겠다고 선언도 하고, 특강을 개설해 교재도 만들었다.
글쓰기는 아무래도 사랑이다. 작가가 되겠다고 선언을 하고서 어린 학생들을 보면, 내가 채점하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교실 뒤로 튀어나가 제로 투 댄스를 추는 아이들도 참을 수 없이 귀여워 보인다.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는 저 에너지가 세상의 약동하는 에너지 중 가장 큰 힘처럼 보인다. 들어와! 한마디에 웃으며 쪼르르 들어오는 것도 예뻐보인다. 저 작은 머릿속에서 선생에게 잘하려는 착한 마음이 아이들을 앉힌 거라는 생각에 웃음이 터진다.
어제는 문득 애들이 학원에 오는 것은 그저 부모에 대한 효심이 아닐까 생각했다. 애들이 공부를 잘하면 얼마나 좋은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중학교 1학년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너 효도하려고 학원 다니지? 네가 공부를 잘하든 말든 니 알 바는 아닐 것 같은데. 그랬더니 애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가 원하니까 어쩔 수 없죠. 아이는 엄마를 위해 자신의 놀 시간을 내어 주고, 그 엄마는 또 이 아이를 학원에 보내기 위해 일을 한다. 이들의 사랑이 숭고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렇게 하루를 타인의 아름다움과 숭고함과 귀여움 속에서 산다. 이 현실 속에서 많이 비껴나가지 않기 위해 내 오후 3시간을 특강 시간으로, 염가에 내놓았다. 나도 함께 놀게 해 주고 일하게 해 주고 사랑하게 해 주라. 최선의 컨디션으로 아이들 앞에 서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요가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