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 선수들의 스파이크가 내 가슴에 꽂혔다

팔, 그녀들의 그 강인한 팔이 세상을 바꾼다

by 암사자


2021년 8월 6일. 학생들에게 오늘 밤은 모두 집에서 여자배구를 봐야 하니 일찍 오라고 해 놓고 하루 종일 밤 9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칠판에 단어 하나 쓰고 팔을 뻗고는 “김연경!”하면 애들이 웃었다. ”웃겨? 김연경이 웃겨?”하고 억지를 부리면 애들은, “아니요. 선생님이 웃겨요.”하며 하루를 보냈다.


자느라 한일전을 놓친 아쉬움으로, 보면서 먹을 수박을 전날부터 냉장고에 넣어놓고 선수들의 포지션을 공부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라이트 김희진 선수의 팬덤이 거대하게 형성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186cm의 키에 76kg. 내 이상형이 여기 있었구나.

열심히 응원했고, 실점을 하는 순간에도 뜨겁게 행복했다. 승패가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배구 선수들을 존경했으므로 메달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팀도 존중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요즘 세대”의 특징일 거라고 생각한다.

브라질 선수들이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바로 그들의 팔 근육이었다. 힘이 정말 세서 우리 팀의 블로킹을 뚫어버리곤 했는데, 그들이 스파이크를 날리는 순간의 팔근육의 움직임이 참으로 경이로웠다. 내가 여체를 보고 그 정도로 감탄해 본 적이 있었던가. 사회에서, 특히 미술관에서 철저하게 타자화 되고 대상화된 여자의 몸의 문제를 타개할 방법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브라질 전에 이어 동메달 결정전인 세르비아 전까지를 보고 알게 되었다. 내가 곧 운동을 시작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다음 날부터, 나는 괜히 책상에 대고 팔 굽혀 펴기를 몇 개씩 해보기 시작했다. 이 힘없고 두꺼운 살덩이. 내 팔과 근육질의 팔은 너무도 달라서, 이 지방 덩어리에서 이상적인 근육 팔로 변하는 게 가능이나 한가 싶었다. 하지만 내게 용기를 준 것은 사실 맨손 운동의 동작 하나하나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꾸준히, 오랫동안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만들어진다고 한다. 필요한 것은 언젠간 근육질이 될 것이라는 믿음과 끈기뿐.


내가 사는 곳에는 성인 여자가 배구를 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크로스핏을 다닐 것이다. 내 팔이 무언가를 칠 때 팔근육이 움직이는 것을 봐야겠다. 나는 직업이 학원 선생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내 말과 행동, 그리고 외양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내가 배구 선수들의 건강미를 보고 찬탄했듯, 내가 건강한 외양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닮고 싶다고 느끼는 여학생이 생길지도 모른다.

집 근처 중학교에서 여자 축구부, 농구부, 배구부를 운영하고 있어서 학생들이 방과 후에 해당 운동을 하고 온다. 각 운동부에서 평판이 좋아지는 방법이 그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해서 애들이 멋있게 느껴졌다. 처음 여학생들이 방과 후에 축구하느라, 농구하느라 학원에 늦거나 숙제를 안 해왔을 때는 “어떻게 운동이 공부보다 우선일 수가 있어? 그것도 중3한테?”라고 말하며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공부가 운동보다 우선일 수가 있겠는가. 그것도 사람한테.

남자아이들은 축구를 하고 여자 아이들은 그늘에서 수다를 떠는 내 세대의 체육시간이 막을 내린 것에 대하여 축배를 드는 바이다. 올림픽을 즐긴 우상혁 선수와 동메달을 딴 선수들에게도 금메달 딴 선수와 똑같은 축하를 보내는 우리 국민들도, 가느다랗고 여리여리한 팔이 아닌 강철 같은 근육질 팔에 동경을 느끼는 나도, 학교 끝나고 축구하고 배구하고 농구하느라 땀 흘리는 여학생들도 모두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내가 사는 사회가 이렇게 발전해서 행복하다. 한국 체육 역사상 최악의 성적 중 하나라는 도쿄 올림픽이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 줄 몰랐다. 내가, 우리 세대의 젊은 국민이 바라는 사회의 발전 방향이 어딘지가 뚜렷하게 보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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