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왜 하는지 제대로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공부 잘했던 학원 원장이 현장에서 느끼는 슬픔

by 암사자



사람들은 생각보다 상식적이지 않다. 학원 원장일을 하다 보면 알게 된다. 아이의 도덕성보다 성적을 중시하는 것이 펜트하우스나 스카이캐슬에만 나오는 “극적인 장치”일 거라고 믿고 사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런데 그 부모는 결코 주단태처럼 이해받을 마음이 없는 극악무도한 부유층이 아니다. 평범한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다.

주단태는 부정행위로 자란 주석경을 평생 자신이 힘으로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잘못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것도 권력의 맛이라는 도취에 빠져 판단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일반 학부모들은 주단태가 아니다. 선량한 시민이라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평범한 부모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앞세운 채 미약한 날개를 파닥여보는 나비와 같다. 나는 그 나비가 자신의 노화해가는 육체와 한정된 재산, 얼마 모으지 않은 삶의 철학을 총동원하여 와들와들 떨면서 지켜가는 가정의 뒷모습을 보곤 한다. 위태로움. 많은 것을 운명에 맡긴 그 위태로움.

주단태가 수표를 얼굴에 뿌리며 갑질을 하듯이, 그보단 훨씬 약한 강도이지만 학부모들도 학원비를 카드 결제하며 갑질을 한다. 갑질을 당하는 내가 가장 슬픈 것은, 내가 그 가정의 아이들을 너무도 사랑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학부모님들도 아이들도, 내가 그들의 돈을 받고 고용된 종업원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아이의 상습적인 부정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알겠는데 선생님은 성적이나 내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 가장 슬펐던 것은, 역시 내가 그 댁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공부는 왜 하는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려면 학벌도, 사회적 지위도, 수입도 있어야 한다는 말은 어디서 주워 들어서 다들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가? 정말 그게 공부의 이유라고 생각하는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힘들게 사는 모든 사람은 그저 공부를 “안 해서”인가?


이 공부의 이유에서 핀트가 나가 있어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는 것 같다. 공부가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말은 차치하고 공부가 다라고 하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학벌도, 사회적 지위도, 수입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공부를 “못해서” 그런 것이다. 공부를 못한 이유는 아이가 성실하지 못해서, 학원 선생님을 잘못 만나서 일까?


아니다. 우리는 모두 그 이유를 알고 있지만 진실이 너무 뼈아파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공부 머리가 없어서”이다. 유전자의 문제이다. 타고난 것이다. 공부 머리를 타고 난 집안의 모범생으로서 말한다. 우리 집안 아이들은 공부를 한 번도 열심히 한 적 없으나 다 공부를 엄청 잘했다. 학구열이 심한 동네에서 이름을 날리며 화려한 학창 시절을 보냈으나 공부량이 많지도, 엄청난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다. 그저 다 이해가 됐고 공부가 너무 쉬웠으며 재밌었다.


이런 아이들은 정말 너무도 많다. 재능이 없는 아이들에게 뛰어라, 날아보아라 라고 채찍질해도 소용없다. 내가 슬슬 걸어도 그 아이들보다 훨씬 빨랐다. 공부는 고등학교 때가 끝이 아니었다. 대학 때도, 20대 때도,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도, 공부는 너무도 요긴하게 나를 도와주고 있다. 운명은 끊임없이 뒤집힌다. 정말 공부의 목표가 학벌을 얻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인가?


음, 근데… 그건 이미 타고난 사람 꺼라니까?

아이들에겐 부모가 하늘이고 부모의 말이 우선적으로 옳다. 그리고 그 말들로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해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은 생각과 발언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무책임한 공부관으로 아이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설득하다니. 아이가 부모 이상으로 성장하지 못해 부모의 말의 모순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자식이 그 정도만 성장하길 바라는 부모는 아무도 없겠지만 말이다.

내가 고3일 때 한 반 학생 40명 중에 괜찮은 학벌을 갖는 아이는 4명 정도였다. 10%. “원하는 삶의 방식대로 살 수 있는 공부 잘하는 아이”는 상위 10% 정도이다. 그러면 90%는 어떻게 하느냐의 질문에, 많은 부모들은 “그러니까 내 아이를 그 10% 안에 집어넣어야지!”로 대답한다.


사람들은 여홍철의 딸 여서정 선수가 타고나서 체조를 잘하는 것은 인정하면서, 그 10%의 공부 잘하는 학생도 타고났다는 것을 너무 늦게 인정한다. 사고력과 인성을 기르는 공부를 해야 하는 소중한 10대를 다 놓치고 나서, 이미 말이 도망쳐버려서 손에는 말고삐의 감촉만 남은 그때서야 말이다. 이미 날아다니는 10%의 아이들은 웬만해선 자기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을 것이다. 90%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준비해서 들려주어야 한다. 부모라면 그래야 한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사고력을 기르고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기 위함이다. “한국의 교육”이라 하면 쓸데없는 암기 사항만 주입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학창 시절에 공부를 제대로 안 해봤다는 방증이다. 한국 공교육에서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 교양을 손으로 똘똘 뭉쳐 입에 집어 욱여넣어준다. 내가 그걸 뱉어서 한 알 한 알 음미하면서 씹어 삼킨 학생이어서 안다. 그것만 잘 기억해도 평생 유식하다는 말을 듣고 살게 된다.

국어, 영어, 사회의 지문은, 어떤 화두가 현재 사상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그 논제에 대해 저명한 학자들이 어떤 근거로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독서를 좋아하게 키운 후에 독서실에 아이를 혼자 넣어두면, 아이는 곱씹으며 읽고 감동하여 눈물 흘리고 몽상에 빠진다. 이렇게 마음으로 공부한 내용을 틀릴 리도, 잊을 리도 없다. 모든 과목을 이렇게 공부했고,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입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렇게 공부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나는 현재 광주에서 중고등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내가 이 일을 오래 할 것 같지는 않지만, 내 품 안에 있을 때 애들을 제대로 공부하게 해주고 싶다. 진실된 마음으로, 너의 온 세계관을 다시 꺼내서 뜯어보며 생각하라. 그것이 공부다. 아이들은 눈을 빛내며 공부한다. 어릴수록 더 마음을 쉽게 동원해서 연구한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우리 사이에 무슨 찐한 상호작용이 있었는지 모른다. 타인에 대한 불신일까. 학원 선생이 돈 주는 것 이상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해가 갈수록 내 진심이 닳아간다. 완전히 닳으면, 나는 아이들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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