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니
여러분
저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K-모범생으로서 착하고 바르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내일 화이자 백신을 맞으러 가는 젊은이로서, 이 희박하지만 분명히 희생자가 존재하는 게임에서 제가 꼭 살아남으리라는 자신이 없는데요. 그래서 여러 단체카톡들에 장난으로 유서를 남기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깨달았습니다. 제가 잘못 살고 있다는 것을요.
저는 10대 내내 엄마를 위해 공부를 해주고 학원을 다녀주고 초중고 12년 개근을 해주었습니다. 아빠도 아니고 오로지 엄마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저를 위한 건 더더욱 아니었지요. 저는 도무지 제가 왜 개근을 해야 하는지, 엄마가 학부모들과의 정보 교환에서 알아 온 학원을 다녀야 하는지, 왜 공부를 잘 해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몰라서 내내 혼란스러웠습니다. 남을 위해 사는 것, 그거 정말 할 짓이 못 되더군요. 다행히도 너무 어리고 식견이 좁아서 그걸 뿌리치고 가출하거나 스스로 가치 없는 삶을 포기할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생존하여, 엄마가 해 준 밥을 먹고, 엄마를 위해 학교에 가서 엄마를 위해 앉아있어 주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찐따로서 교실 뒷 자석에 앉아, 자지러지게 웃으며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나는 공부만 잘하는 거야. 쟤네들이 나보다 더 잘 살고 더 행복할거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랬어. 나같은 공부빼고 아무것도 못하는 성격 파탄자는 쟤네보다 더 잘 살면 안 돼. 그게 정의야. 쟤네가 더 예쁘고 대인관계 좋고 더 친절해. 지금은 그저 고등학생이니까 내가 대우받는 것 뿐이야. 내가 지금까지 책 읽고 어른들 말씀 들은 결과로 장담하건대, 나보다 쟤네가 더 잘 살거야.
네. 이번에도 어른들의 가르침은 틀렸습니다. 제가 더 잘 삽니다. 어른들은 이렇게 멍청합니다. 행복이 성적 순이 아니라니요. 경제력이 성적과 비례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몇 명의 예외를 제외하면 공부 잘하는 놈이 돈 잘 벌어서 더 잘 살더군요. 그게 아니면 공부를 잘했던 부모든 못했던 부모든 물심양면으로 자식의 공부를 뒷바라지할 리가 없지요. 제가 그걸 모르고 또 모범생 답게 어른들을 믿었습니다. 20대 후반에 접어들어 빛을 잃어가는 고등학교 동창들을 보며, 아 씨발 어른들이란 그 긴 인생을 똥구멍으로 살아 온 새끼들이구나. 하고 쌍욕을 했습니다. 공부가 다가 아니다, 인성이 중요하다는 말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착하게 길들여 손쉽게 통제하기 위한 슬로건이었구나 하고 깨달았지요. 제가 더 잘 산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저에게서 세상에 대한 희망을 앗아갔습니다.
10대를 이렇게 맥아리 없게 살았다가 대학에 갔습니다.
놀랍게도 제 못생긴 얼굴 속에 예쁜 얼굴이 숨어 있어서, 3kg을 빼고 안경을 벗고 머리를 펴자 “영어교육과에 예쁜애 있잖아”의 예쁜애가 되었습니다. 어디에 넣어놔도 가장 예쁜 사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0명이서 교생 실습을 가면 학생들은 저를 “제일 예쁜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갑자기 외모가 제 무기가 되었습니다.
못생겼다가 예뻐지면 그동안 못생긴 사람으로서 느꼈던 세상에 대한 원한을 갚고 싶어지게 되는 법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예쁜 척을 다하며, 밥을 먹기 전 숟가락에도 얼굴을 비춰보며, 꼴뵈기 싫은 짓은 다 했습니다. 10대를 퉁퉁 부은 수동적인 덩어리로 살다가, 자아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내 자아를 가지고 여러가지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첨벙첨벙 거리며 하던 저의 실험에 주변 사람들까지 흠뻑 젖곤 했지만 용서받았습니다. 아, 나는 예쁘고 학벌 좋으니까 다 용서받는구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고를 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시시한 임용고사 말고 원대한 외무고시를 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 중에 그 때의 저 같은 사람이 나오는 소설이 있습니다. “비문명국”을 탐험하던 서유럽 남성이 “저 미개한 것들이 설마 나를 어떻게 하겠어?”하는 마음으로, 플룻 소리가 나는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가 혀가 잘리고 눈이 뽑혀서 광인이 되어 사라지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그렇게 겁이 없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데, 안 좋게야 되겠어? 이 마음으로 25살, 고시촌에 입성했고, 30살에 우울증을 얻어 나오게 됩니다.
그 때부터 34살인 지금까지, 저의 삶을 한 마디로 줄이자면 “우울증과 싸우는 삶”이 되겠습니다. 우울증 환자로서 사는 삶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피곤하고 불행합니다. 우울을 배를 갈라 떼어낼 수 있다면, 저는 생존 확률이 20%일지라도 수술대에 눕겠습니다.
종종 생각합니다.
나의 학벌이, 나의 외모가, 나의 인내력과 성실함이, 내가 가진 모든 장점들이 내게 이 병을 가져다 줬구나. 내가 조금만 더 부족했더라면, 나는 나를 믿지 못해 고시판에 뛰어들지 않았을텐데. 그랬다면 25부터 30까지, 더 많이 웃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젊음을 보냈을텐데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고시공부하는 내내, 저의 부족한 점에 의해 괴로웠습니다. 삶은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요? 잘난 게 문제일까요, 못난 게 문제일까요?
그러니까 제 삶은, 10대 때는 엄마를 위한 입시 공부, 20대 중반부터는 고시 공부, 30대 중반 까지는 우울증 투병. 이렇게가 다 인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행복이라는 것은 20살 부터 23살, 대학을 다니던 딱 4년 밖에 없었습니다. 나머지 30년도 제가 저렇게 엉망으로 살려고 대충 살거나 파국으로 몰아가며 산 것이 아닙니다. 행복을 추구했고, 그 수단이 공부일거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가르쳤잖아요!!”라고 화를 내고 싶습니다. 저는 적극적인 수동적 인간이 되어 살았던 것 같습니다.
내일 백신을 맞고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이제서야 알겠습니다. 공부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공부는 끊임없이 미래만을 준비합니다. 그 미래가 와서 그 공부의 결과를 수확한다해도, 그 시점에 새로운 공부할 것이 생깁니다. 왜 지금껏 ‘공부에는 끝이 없다’는 말에 감탄을 해왔을까요. 모범생 앞에 펼쳐진 끝없는 연옥에 대한 경고문으로 저 말만큼 어울리는 말도 없는 것 같은데요.
제가 운이 좋아 두 번의 화이자 접종 후에도 살아남게 된다면, 공부하지 않는 삶을 살아보겠습니다.
열심히 술을 마시고 열심히 섹스하고 열심히 춤을 추겠습니다.
54살이 아닌 34살에 이것을 깨달아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