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책상 위의 바다

by 암사자



정말 지독한 “밖순이”였다. 집은 자고 씻고 아침 먹는 곳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아침 먹고 머리 말리고 화장하고 옷 입고 나면 바로 가방을 챙겨 들고나갔다. 그리고 다시 어두워져 잘 때가 되어서야 귀가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나는 밖을 좋아하니까. 주말에 일어나 할 일이 없으면 홍대 정문 앞 대로변의 카페테라스에 커피를 시켜두고 앉았다. 모두를 볼 수 있고 모두가 나를 볼 수 있는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했다.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그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를 하고, 그 사람도 심심하던 중이었으면 커피를 하나 더 시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테라스 인간”을 추구했던 게 아니라 내가 타고나길 그런 사람이라서 그랬다.


집 청소와 인테리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집은 병 걸려 죽지 않을 정도로만 청소했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것 이외에 집에 바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20대의 나는 집에 화분 하나, 그림 하나 들여놓을 줄 몰랐다. 집은 내게 10원 한 장 쓸 가치가 없는 대상이었다. 쉬는 날이면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거린다는 집순이들은 정말 게으른 존재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부지런해서 밖에 나가는 줄 알았다.


시간이 흘러 33살이 된 해, 코로나가 발병했다.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했다. 그래, 역병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집에서 칩거했다. 답답하긴 했지만 견딜만했다. 거실도 있고 안방도 있고 옷방도 있고 베란다도 있고 주방도 있고 화장실도 있는 20평 아파트. 그리고 배달 어플. 훌륭하진 않지만 부족할 것도 없었다. 나는 절대 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집순이의 삶에 적응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이렇게는 못 산다며 엉엉 울고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지낸 지 1년 반이 넘어가는 해의 추석 연휴이다. 나는 명절 당일 조카를 보러 부모님 댁에 가는 것을 제외하고 내가 있고 싶은 곳에 있을 수 있다. 예전 같으면 강릉이나 여수 등 음식 맛있고 낯선 사람들 많은 곳으로 2박 3일 여행이라도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집에 있고 싶다. 그래서 집에서 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내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시민으로서 국가 방역 체제에 순응하는 성숙한 자세라거나, 나이가 들어서 성향이 바뀐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살이 쪄서 게을러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문득, 20대 때의 나와 30대 때의 내 집이 달라서는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20대 10년의 나의 주거. 이모 집 작은 방에서 반년, 사생활이라고는 전혀 존중되지 않는 남도학숙의 2인 1실 기숙사 1년 반, 대학 기숙사 1년, 홍대 자취방에서 3년, 나머지 시간은 신림동 고시촌 원룸에서. 하나 같이 서러운 공간들이었다. 자기 전셋집을 마련할 수 없는 가난한 젊음은 사생활과 인권을 어느 정도 내놓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지독히도 근대 동아시아적인 빈곤한 철학이 만들어 낸 주거 환경이었다. 집순이라는 꽃이 그런 토양에서도 피어날 수 있는 꽃이었던가? 코로나가 아니라, 나이 들어 성향이 바뀐 게 아니라, 이제야 머무를 수 있는 집에 살게 된 것은 아닌가?


이 생각이 나를 슬프게 한다. 차라리 내가 너무도 “칠렐레 팔렐레 싸돌아다니는 정서불안의 인간”이어서 가만히 엉덩이를 붙이고 집 청소를 할 수 없는, “시집 못 갈 차분하지 못한 여자”였으면 좋겠다. 나의 모든 특성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나로부터 나온 것이었으면, 내 기질에 따라 내가 선택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 집 거실 서재에 앉아 평온을 느끼는 나는 20대의 내가 혹시 그 형편없는 원룸이 답답해서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돈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아프다. 20대의 혜우야, 집이 번듯했으면 집에 있었을 거였니? 네가 하루 종일 맘 편히 뒹굴거릴 공간이 없어서 밖으로 나갔던 거였니?



내가 바라는 게 이렇게 작은 것이었다니. 한 벽면에 내 책을 놓을 책장과 널찍한 책상 하나.

이것 하나를 갖지 못해 내가 집순이인지 밖순이인지도 몰랐던 내 20대를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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