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히트를 치고 있다. 빅토르 위고나 알베르 까뮈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절절히 써 놓은 책은 굳이 읽지 않지만, 오락거리인 넷플릭스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컨텐츠가 가장 인기 있는 사람들의 시대. 언제나 인간의 본성은 사람들의 관심사이지만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법도, 보고 생각해보는 방법도 활자에서 영상으로 바뀔 시기가 온 것 같다.
나의 정체성, 나의 본성, 나의 가치 등은 활자도 영상도 아니라서, 나는 꽤 오랫동안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어려웠다. “나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물어봤자 부모님은 “까다롭다”라고 말하며 나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만 말씀하셨다. 그리고 친구들은 내가 칭찬을 해달라고 대놓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여 나에 대한 칭찬을 짜내느라 고생을 했다. 남에게 나의 본성을 묻는 것은 그들이 나를 나만큼 잘 알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남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에 묻지 않는 게 예의인 것 같다. 결국 이 어려운 여정은 책도 영상도 남의 도움도 없이,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나만의 전투인 것이다.
어설프게 철이 들어 둥둥 떠다니는 30대
10대 때는 내가 계속 학생일 줄 알았다. 내가 계속 부모님께 예속되어있을 줄 알았고, 이번 학년이 끝나면 다음 학년 담임 선생님이 생기듯, 나의 삶에는 계속 나를 인도해 줄 선생님이 생길 줄 알았다. 20대 때는 소속이 없어진 것이 자유인 줄 알아서 날아갈 듯 기뻤다. 20대 중반에는 회사에 소속되기 시작한 친구들을 보며, 고시 공부하며 꿈을 이어나가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여유로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20대 후반에 적을 둔 곳이 없어서 표류하다 침몰할 것 같은 느낌을 처음 느꼈다.
하지만 30대, 어디에 속해도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사업을 하는 나도, 공립학교 교사인 친구도, 삼성에 다니는 친구도 똑같은 눈빛을 한 채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 드디어 철이 든 것이다. 결혼을 해도, 취업을 해도, 지금 통장에 잔고가 많아도, 그것은 나의 정체성의 일부일 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 가는 새로운 사람에게 나를 보여줄 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문제이다. 새 친구를 사귀는 것이 한없이 가볍고 큰 의미 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것만큼 정체성에 관한 짧은 면접도 없는 것 같다.
내가 시간을 두고 이루어왔고 집착하고 있는 것들이 새 친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낳은 내 아이가 커서 그 친구에게 효도할 리 만무하고, 내가 아무리 멋진 회사를 다녀도 그 친구에게 명예를 나누어 줄 리가 없고, 내가 재산이 많다고 해서 새 친구에게 십일조를 낼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있고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으며 성격이 얼마나 잘 맞는지, 그리고 대화가 얼마나 깊이 있고 유머러스한지가 중요하다. 개인 대 개인으로 맨몸으로 부딪히는 느낌이다. 그 눈치싸움과 매력 싸움!
나는 매일 나와 싸운다. 나는 이대로 침몰할 것인가?
나를 이대로 늙어 사라지게 할 수 없는 사람은 나뿐인 듯하다. 그래서 오늘도 “너 정도면 됐지, 뭐가 고민이냐.”라는 말을 뒤로하고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나를 둘러싼 수많은 정체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중 내가 가장 뾰족하게 벼리고 싶은 정체성은 무엇인가?
우선 사람들이 가장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나는 나의 직업인 것 같다. 꽤 잘 되고 있는 학원의 원장. 많은 방황을 했지만 결국엔 이 사회에 안착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매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정체성, 우울증 환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우울증 환자인 것은 나와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내 주치의 선생님에게만 문제이다. 나는 그다음 정체성, 좋은 친구이다. 좋은 선생이며 좋은 친구이고, 힘들 때 생각나는 지인이라고 평가받는다. 대외적인 평가가 좋아서 내가 이렇게 매일매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고민한다는 것을 알면 다들 어리둥절해한다. 왜 굳이, 그 나이에 다 이루고 나서? 내가 학원 원장으로서의 정체성을 내 최종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내 모든 고민이 시작된다. 내가 이루긴 뭘 이뤄? 나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나는 유튜브 스타가 될 거야
어제 나의 다섯 번째 유튜브 영상을 올렸다. 지인들이 몰려가서 봐 줘서 60회 조금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다들 재미없다고 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나의 유튜브. 반응이 나빠서 시무룩한 나에게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고, 뭐하러 쓸데없는 걸 만들어서 시무룩할 일을 만들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철딱서니 없는, 나잇값 못하는 34세 미혼 여성. 내 고등학교 은사님들은 이제 60이 되셨는데, 내가 돈 버는 일이 아닌 다른 걸 했다고 말씀만 드리면 “네가 그렇게 쓸데없는 데 정신이 팔려있으니까 결혼할 생각을 안 한다”라고 하신다. 사회가 내게 원하는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나는 지지 않을 것이다. 용기가 없어서 다 버리고 맨 손으로 타지로 떠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거나, 프랑스어 조금 할 줄 아는 걸로 무작정 프랑스 아무 대학에나 원서를 낸다거나 하는 멋진 모험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 작은 아파트 안에서의 혁명은 매일 나를 전소시키고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이다. 나 홀로 에어컨이 시원한 거실에서 높게 깃발을 쳐들고 진격한다. “박혜우여, 일어나라!” 그리고는 커피를 내려 휘젓는 영상을 찍는다. 내 마음속만 활활 탄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이 타오르는, 나이들었다고 죽어 멈춰버리지 않은 “나”에 대한 열망이 키덜트를 만들고 수많은 부업으로서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만들고 있다. 우리 자리에 앉아 활활 타오르자. 나는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유튜브를 만들어 언젠가 홈런을 칠 것이다. 피아노 학원에서 사과 10개를 그려놓고 한 번 칠 때마다 하나 씩 긋는 초등학생처럼, 매일매일 조금씩 끄적여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위대해질 것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1만 시간이 채워지고도 남을 것이다.
우리 영원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