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고향이 있으십니까?

프롤로그

by 암사자

내가 가르치던 학생의 할머님이 내게 “눈에 야망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맞아요, 그렇습니다.”라고 웃으며 대답하였지만 사실은 적잖이 놀랐었다. 아니, 나만큼의 야망도 갖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어?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유독 목표지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몸으로 부딪혀 얻은 경험이 아닌 책에서 나왔다.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나는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지식인, 전간기의 프랑스 지식인들의 책을 읽으며, 현시대도 위기의 내용만 바뀌었지 여전히 난세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 난세 대한민국의 숨겨진 영웅이 어쩌면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치인이 아니면서도 나라를 구하는 특별한 위치를 갖고 싶었다. 내가 앉고 싶었던 곳은 4년에 한 번씩 갈아치워 지는 국회의사당 의석이 아니었다. 생전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후에는 역사에 남을 사람이고 싶었고 그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쉬는 날이면 강남이나 여의도를 걸으며 거리와 건물들, 사람들을 눈에 담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알게 되리라. 내가 여러분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 물론 나는 나 자신조차도 이롭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가 내게 크게 될 사람이라고 했다. 큰소리만 쳐댔기 때문이다.

그런 내 요동치는 마음을 담을 곳은 대한민국에 서울밖에 없었다. 사람과 자본, 생각, 상품 중 가장 경쟁력 있는 것만 살아남는 곳. 그래서 손만 뻗으면 현재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문화로서 누릴 수 있는 곳. 나는 서울로 대학을 온 2007년을 두 번째 탄생의 해라고 명명했으며, 홍대를 내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제1의 고향인 광주에 내려갈 때마다 도로에 사람이 없음에, 교통 체증이 없음에, 마천루가 없음에, 그리고 서울에서는 한창 유행인 최신 문물이 아직 없음에 질색을 했다. 내가 바글바글한 사람들과 교통 체증, 빽빽한 빌딩 숲을 미래를 만들 재료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설픈 역진법으로 미래가 없으면 현재도 없는 것이라는 계산을 해내었다. 전제가 잘못되어 결론도 내나 마나 한 추론이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쓰러졌다. 그리고 서 있을 수도, 글을 읽을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 광주로 내려왔다. 3개월간 누워 있었다. 나는 광주에서의 와병 생활을 견딜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여의도 공원을 빙빙 돌았다. 모든 꿈의 끝엔 김영모 과자점에서 마늘빵을 사는 내가 있었다. 너무도 생생해서 꿈에서 깨면 화들짝 놀라서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제1의 고향에서 제2의 고향에 대한 향수병에 죽네사네했다.

그리고 투병의 4년간, 나는 광주 앞에서 선택적 분노조절 장애자처럼 굴었다. 광주는 힘도 없고 돈이 없고 성깔도 없는 데다 느릿느릿하게 걷는 할머니 같은 도시였다. 게다가 광주는 구박에 익숙했다. 한국 현대사 내내 얻어맞은 곳이라 나 하나가 또 때린다고 반격하지 않았다.

나는 광주사람들이 만들어 주거나 사 주는 밥을 먹으며 삶을 버리고자 하는 생각을 떨쳐냈다. 그리고 광주에서 나고 자란 순하디 순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존감을 회복하고 돈을 모았다. 훌륭한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의 치료를 받고 사람들의 이해와 응원을 받아 우울증에서 완치되었다.

20대의 나는 내가 비빌 곳이 없는 슬픈 서민의 자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30대의 나는 안다. 내겐 광주가 비빌 언덕이다. 나는 다시 무너져도 광주에서 힘을 모은 뒤 다시 일어설 것이다. 나는 내가 다시 건강하고 능력 있어지면 그 영광은 광주가 아닌 서울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어떤 광주 사람도 그 말에 서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힘들면 언제든 내려오라고, 그때도 자기가 여기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제야 서른 살에 겪은 실패가 정말 실패였을까 자문한다. 19년 간 태어나서 자란 광주를 이제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을 더 사랑한다. 하지만 나의 서울에 대한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광주에게서 사랑을 충분히 받았기에 서울에도 완전한 사랑을 내어줄 수 있는 것이다.


한 달 후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 서울로 돌아간다. 대한민국은 서울 공화국이 맞고, 나는 내 에너지를 완전히 회복했기 때문이다. 언젠간 글로서 광주에 대한 사과문과 감사의 편지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이 개인적인 글을 공유하는 이유는 서울에 살다가 지방으로 내려간 사람들이 흔히 나처럼 답답증을 앓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지방도 들여다보면 예쁠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는 광주에 사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광주를 미워하느라 내 삶도 미워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자기를 품어주는 지역에 호의적인 감정을 품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어차피 그 지역에서의 삶도 당신 삶의 일부라면, 그 지역을 싫어하는 한 당신의 현재를 사랑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광주 북구에 위치한 노포 ‘찜나라’의 대표 메뉴 ‘해물 갈비찜’이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모든 친구를 이곳에서 대접했고, 합격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