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가 하늘의 뜻을 물으러 철학관에 가는 이유

외롭고 무서워서 그래

by 암사자

sk 최태원 회장이 공금횡령으로 구속된 적이 있다. 최 회장이 450억 원 대의 회삿돈에 손을 댔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는가? 그 이유는 놀랍게도 그가 점쟁이의 예견을 믿고 투자를 잘못했다가 거액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그 뉴스를 보는 내 머릿속엔 그의 화려한 학력과 인맥, 그가 요청하면 얼마든지 도움을 줄 우리 사회의 석학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일류 기업은 돈도 많지만 인재도 많다. 그런데 왜 최 회장은 그 사람들을 다 두고 점쟁이에게서 자문을 구했을까?


최태원 회장의 횡령 사건이 2014년의 일이니 나는 5년 후에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게 된다. 학원이 내 첫 직장이었기 때문에 그 학원의 원장이 내가 처음 겪는 경영자였다. 그분이 내게 동네 맛집보다 먼저 알려준 것은 용한 사주쟁이였다. 그분은 수시로 점집을 찾아 조언을 듣는 사람이었다.

보통 중요한 결정을 사주쟁이의 의견에 따라 내린다고 하면 그 사람을 반지성적인, 비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하기 쉽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원장도, 아마도 최태원 회장도, 학력이나 지능이 평균 이상일 것이다. 오히려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뛰어난 직관으로 많은 것을 이뤄낸 전력이 있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원장은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본인 혼자서 모든 것을 예측해서 적중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원장이 택한 방법은 하늘의 뜻을 듣는 것이었다. 5만 원이면 하늘의 뜻을 전해준다는 신통하신 분들에게로 가서 중요한 결정 사항을 의논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하늘의 뜻을 따랐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나는 이렇게 사람을 믿지 않는 사람을 몇 명 더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랬다. 결정도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견딜 수는 없었던 것일까? 나는 내가 학원 원장이 되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학원이든 다른 업종이든 사업체를 연다는 것은 많은 투자비용이 든다. 돈도 돈이지만 내 명예와 자존심, 시간 등도 쏟아붓게 된다. 즉 내 운명을 그 사업체에 걸게 되는 것이다. 사업체에 투자된 것 중 경영자에게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취미로 일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사업체의 실패는 경영자의 실패와 동일시된다. 실패를 피하는 것이 절실해질수록 신의 계시든 운명의 길이든 절대적인 가능성에 기대고 싶은 것이다.

나도 학원 개업을 앞두고 한자 선생님 출신의 철학관 선생님에게서 학원의 운명을 점쳤다. 그 선생님은 내 학원의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했다. 이름도, 방향도, 시기도. 큰 일을 앞두고 그 말이 덕담으로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고릿적 만들어진 사주 체계에는 코로나가 포함되어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펜데믹익 시작되고 있었고 나는 코로나 시대의 소상공인이 되었다.

최태원 회장은 450억 횡령 사건 이후로 점쟁이의 의견에 따라 경영을 하는 것을 관두었을 것이다. 고통 속의 숙고 끝에 본인이 열심히 연구하고 일해서 4500억 도 벌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수도 있다. 원장은 이 전 글에 밝혔듯이 덕이 부족해 인복이 전혀 없어서 인생이 잘 안 풀리는 타입이다. 그러나 그 점을 깨달을 만큼 문제를 자기의 부덕의 소치로 돌리며 반성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니 항상 하늘을 원망하느라 철학관에 다녀야 할 것이다.

나는 다른 이유로 사주 보는 것을 끊었다. 빅데이터를 수집하겠다고 짧은 시기에 철학관 4곳에 방문해서 의견을 들었는데, 그 4곳의 말이 다 달랐다. 누군가는 내 명이 짧으니 연금 들 필요가 없다고 하고 누군가는 명이 길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내 인생의 전성기가 10대라고 하고 누군가는 30세 이전에는 뭘 해도 안 됐을 거라고 했다.

빅데이터가 형성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샤머니즘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운명이 정해져 있을 수도 있고 신이 존재할 수도 있겠으나 샤먼들이 신과 내 사이에서 메시지를 전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내 고3 시절 좌우명이던, ‘진인사 대천명’을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운명이 있다면, 신이 있다면 그가 납득할 만큼 내 몫을 다 하리라. 인간이 부릴 수 있는 욕심은 딱 여기까지인 것 같다.

내 학원의 운명을 점치러 간 철학관 중 한 곳에, 치열한 연애를 하고 있던 친구와 함께 갔다. 철학관 선생님은 내 친구와 그녀의 남자 친구가 운명이 정한 평생의 배필이라고 했다. 그들은 그로부터 4개월 후 완전히 헤어졌다. 이 또한 코로나 때문이었다.


사주가 만들어지던 시절엔 예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변수들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경영자는 계속 혼자 결정하고 승부수를 던져야 할 것이다. 이 외로움과 무거운 책임감을 어찌할 것인가.

나는 서울에 가기 위해 최근 내가 운영하던 학원을 접으며 내가 경영자의 짐을 짊어질 감이 못된다는 것을 인정했다. 서울에 올라가면 직원으로서 취업을 할 것이다. 신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는 경영자에게 잘 보이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상대인 나 자신을 설득하는데 집중할 것이다. 나라는 상대는 내가 한 시간 산책만 해도 쉽게 흡족해하며 넘어가 준다.





[광주 북구 용봉동 ‘장가네 생태탕’의 한우 산낙지 탕탕이이다. 이 식당 주변에 이 식당의 유명세 덕을 보기 위해 유사 업소가 여러 군데 있으나 이곳만 맛있다. 그냥 생물을 썰어놓는 음식인데 왜 솜씨를 이렇게까지 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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