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진 독립의 정의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느 날, 이만하면 많이 얻어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이 대한민국 사회에 사느라 많이 쥐어터지고 고개 숙였다. 사회적 관념의 말들에 말이다. “결혼은 해야지. 안 하면 늙어서 후회해.”라는 말에 결혼하기 싫은데도 움찔한다. 내가 아직 노후를 겪어보지 않아서 결혼 안 하고 늙는 게 얼마나 외롭고 슬픈 건지 몰라서 실수하는 건가?
특히 “너는 기가 너무 세.”가 나에게 가장 나쁜 영향을 미쳤다. 사실 기가 약해서 눈치도 많이 보고 싸우면 무조건 지는데도, 저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자기 검열이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블로그에 내 주장이 든 문장을 하나라도 쓴 밤이면 기센 나의 문장이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슬프게 했을까 봐 밤잠을 설친다.
나만 맞고 살면 괜찮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그런 말들에 만신창이가 되어 아프다고 소리친다. 나는 그걸 보면 괜찮지 못하다. 더 나은 사람이 되자고, 그래서 더 나은 사회를 읽고 배우고 고민하는 시간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거였나? “애 둘은 낳아야지.”, “남자는 능력이지.”, “늙었으면 집에나 가만히 있을 것이지.”, “학생은 공부만 해야지.”는 왜 시대가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그 권력을 잃지 않느냔 말이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서재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허공을 노려보고 다짐했다.
“나는 이 모든 말에서 독립할 거야. 독립해서 내 생각대로 살 거야. 그리고 사람들의 독립을 돕는 사람이 될 거야.”
홧김에 선언은 했지만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조용히 앉아 커피를 마저 마셨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나는 “인간의 독립”이라는 화두에 민감해졌다. 독립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끄적일 노트를 만들고, 주변 사람들에게 “너는 독립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니?”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점 홈페이지를 ‘독립’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서 책을 사 들이고 포털 사이트를 검색했다.
그런데 조사하면서 사람들의 독립에 대한 생각에 깜짝 놀랐다. 우선 본인이 독립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네가 어디가 어때서?라고 물으면 “돈도 없고… 회사의 노예고…”, “엄마 집에서 사니까요”라고 말하며 자기는 절대 독립적인 인간이 아니고 앞으로도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검색 결과는 더 놀라웠다. 독립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있고 포털 사이트에 글도 꽤 있었지만, 사람들이 생각보다 독립을 협소한 의미로만 정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정의는 부모님 집으로부터의 출가, 경제적 자립, 퇴사. 이렇게 셋이었다.
앞에서 말했듯 나는 자기 검열이 심한 사람이라 내 주장을 강하게 표현하는 문장을 잘 못 쓰지만 이것은 확언할 수 있다. 저 세 가지의 의미의 독립을 가지고 자신의 독립성을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저 기준은 잘못되었다. 저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은 ‘혼자 사는 꽤 버는 프리랜서’ 밖에 없기 때문이다. 꽤 버는 건 모두가 원하겠지만, 혼자 사는 프리랜서가 모두가 선망하는 삶의 방식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결혼을 하고자 하고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이 되고 싶어 한다. 저 정의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신의 독립성을 버리기 위해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돈을 모으는 게 된다.
게다가 이 정의는 부모님 집에서 나올 수 없는 청소년들,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학생, 전업주부들, 노인들, 그리고 퇴사할 수 없는 많은 생활인들을 독립할 자격이 없는 자로 꿇어 앉힌다. 독립성은 인간의 기본권이다. 저 세 가지 모두 돈이 많으면 간단히 충족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돈이 최고이고, 돈이 없으면 기본권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인상을 준다.
이렇게 제대로 정의조차 되지 못한 ‘독립’이라는 단어 앞에서, 우리는 독립을 추구할 기준점을 찾지 못한다. 때때로 자의적으로 해석된 ‘독립의 자격’ 앞에 자신을 비춰보게 된다. 저 독립들은 평범한 사람은 얻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면 어느새 ‘독립’이라는 기본권적인 단어도 사회적 강요를 띈 단어가 되어 사람들을 패고 다니기 시작한다. “독립성은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누리는 거야. 네 소유의 집이 아닌 곳에서 살거나 회사에 묶인 너는 꿈도 꾸지 마라.”
나는 돌고 돌아 독립에 대해 고민하고 얘기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인간애의 실천임을 깨닫는다. 사회가 격변기를 맞이하였으니 독립에 대한 패러다임도 전환해보자. 우선 독립에 대한 오해를 풀고 정의부터 다시 내려보자. 독립은 관습적인 말로부터의 독립이다. 내가 내 자리에서 똑바로 서서 독립적이라고 느끼며 사는 것이다. 그 외의 조건은 모두 그다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