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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Sep 01. 2021

클럽하우스와 카카오 음

목소리로 소통하는 SNS 플랫폼에 대한 개인적 소감

클럽하우스 초대권 삽니다



한창 <클럽하우스>라는 iTunes 앱 하나가 화제였다.


 <클럽하우스>는 여러 유명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고, 다른 SNS와는 다르게 글이나 사진 같은 시각적 소통이 아닌, 청각적 요소를 활용했다. 초창기에는 가입하기 위해 초대장이 있어야만 했고, 아이폰 유저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SNS, 말 그대로 Social Network Service 치고는 폐쇄적이고 장벽도 있는 편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면 너도 나도 '초대장'이 있는지를 물었다.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에서 '인싸'에 속한 나는 어쩌다 보니 초창기 이 '파티'에 초대되었고, 초대를 할수록 내게 초대장이 많이 생기는 시스템 덕분에 초대장도 많이 갖고 있었다.

 나는 가입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냥 초대장을 바로 날려 주었는데, 이 <클럽하우스>가 한창 핫하던 때엔 무슨 VIP 티켓 구하듯 온갖 커뮤니티에서 "<클럽하우스> 초대권 삽니다." 글이 올라왔다.


 나는 이 앱에 도저히 적응하기 어려웠다.

 일단,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클럽하우스>에서는 모두가 말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일상적인 대화보다는 '내가 이 분야에서 콧방귀 좀 뀐다'는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의 지식 자랑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식이나 코인 같은 재테크 주제부터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모여 소통하는 방 등 토픽은 다채로웠으나 딱히 내가 낄 만한 방도 없어 보이고, 내가 뭘 말할 만한 용기도 없었다.


 나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남들 앞에 잘 나서는 사람인 줄 알지만, 나는 사실 '나서는 사람이 없을 때 나서는 사람'이다. 새로운 모임에 가도 초반엔 가만히 말없이 눈치를 보다가, 아무도 말이 없을 때 갑자기 먼저 말을 건다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 사람들이 파악되었을 때쯤에야 나대기(?) 시작한다.

 그렇다 보니 나서는 사람밖에 없는 이 플랫폼에서 내가 설 곳이 없었다.


 그래서 몇 번 이 방 저 방을 서치 하다가 난데없이 '노래방'에 끌려 들어가 갑작스레 노래 한 곡을 뽑고는... 외국 힙합 방에서 흑인들의 슬랭으로 버무려진 이야기를 듣다가 결국 그 앱을 삭제했다.



<카카오 음>에서 만난 인도 사람



 며칠 전, 친한 언니와 집에서 술 한잔 기울이다 오밤중에 <클럽하우스>에 방을 하나 개설했다.


 "Sunday night, Drunken girls - 술 취한 언니들"이라 방제를 붙이고 그냥 둘이 시시콜콜한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않게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다. 우리는 그냥 '아무 말이나 하는 방'이라며, 내가 연애상담을 해 주겠다고 한 명씩 돌아가며 '망한 연애담'을 풀게 했다.

 나는 취미로 글 쓰는 사람인데, 소재거리 될 만한 본인의 썰이 있다면 좀 풀어 달라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정확히는 모르는 사람)에게 차라리 내 연애가 어떻게 망했는지 말하는 게 지인에게 말하는 것보다 편하다 했다.


 스피커 한 분이 "혹시 <카카오 음> 해 보셨어요?"라 물었다.

 "저는 사실 <클럽하우스>에서 이렇게 말해보는 것도 처음이라서요! <카카오 음>은 어때요?"

 "조금 연령대가 어린것 같더라고요. 카카오가 한국 플랫폼이라 그런지 외국인은 아직 못 만나 봤어요."


 다음 날 저녁,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 빈 집이 허전해서 <카카오 음>을 깔고 들어가 봤다.

 연령대가 어릴 거라는 편견이 이미 생겨버려서인지, 주제들은 대부분 클럽하우스보다 소소한 것 같았다.


 [ASMR 타자기만 두드리는 방], [아이돌 XX팬 모여라], [ENFP 모여라], [음 앤(?) 구해요]


 이 중 [Let's speak in English] 방이 눈에 띄어 들어가 보았다. 다섯 명의 스피커가 있었는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두 사람은 대화를 하고 나머지 세 사람은 말이 없다.

 그리고 그 영어 악센트가 한국인도 미국인도 영국인도 아니었다. 듣자 하니 '우리나라에는 영어 수업이 따로 없고, 그냥 자연히 교육받는다.'는 식으로 얘길 하고, 'English'를 'ingles'로 발음하기에 "멕시칸, 스패니쉬, 아니면 인도?"라 생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스피커로 초대되어 끌려 올라와서 인사를 하고, 짧게 배운 스페인어로 "¿Eres Español?" 물으니  사람은 멕시칸,  다른 사람은 인도 사람이란다.

 "너희도 BTS 때문에 한국을 알고 이 앱까지 흘러 온 거야?" 하니 그냥 원래 K-POP에 관심이 많았는데 어떤 한국인 친구가 이 앱을 소개해줘서 들어왔단다. 그런데 들어와 보니 정말 죄다 한국인들밖에 없어서 "영어로 대화할 사람~"을 구하고 있던 것이다.


 "Let's globalize this app!"을 외치는 그녀들을 보며, 내 카카오 주식이 너희의 바람을 타고 치솟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깍두기 시켜 주는 <카카오 음>



 둘 중 하나를 꼽자면 나는 <카카오 음>이 조금 더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전문적일 필요도 없고, 그냥 아무 말이나 대충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한국인 특유의 정이 있어서 그런지 리스너들이 손을 들지 않아도 방 주인들이 영차 영차 같이 이야기하자고 껴 준다. 방마다의 텃세도 별로 겪어보지 못했고, 한참 말이 없는 스피커가 보이면 "Enero님 계신 것 맞죠? Enero님은 저녁 뭐 드셨어요?" 하고 깍두기 껴주듯 꼭 한 마디 덧붙인다.



나갈 타이밍을 못 잡겠어



 하지만 내가 이 목소리 기반의 SNS를 즐기지 않는 데엔 '나갈 타이밍을 못 잡아서'란 이유가 가장 크다.

 리스너일 때는 자유롭게 나갈 수 있지만, 스피커일 때엔 피곤하다. 이제 그만 듣고 말하고 싶은데 저 사람이 말하는 도중에 나간다는 건 마치 친구가 진지한 이야길 하는 데다 대고 "야, 진짜 미안. 나 먼저 간다!" 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번 <클럽하우스>와 <카카오 음>을 써 보다 도저히 내 성격에는 생각보다 심적 부담감이 커서 그만두었다.



 혼자 살아서 사람의 목소리가 그립고 대화가 필요하다면 한 번쯤 써볼 만한 플랫폼인 것 같다.

 물론 나는... 아직도 적응이 어렵지만 말이다.


 요즘 애들 따라잡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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