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 이름을 찾아서
등본을 뗐는데 내 한자 이름이 다르네?
주민등록등본을 뗐다.
보통 등본은 제출용으로 뽑으니 유심히 들여다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한 번 유심히 보니 내 한자 이름이 어딘가 이상하다.
내 이름에 들어가는 '진' 자를 나는 '참 진'(眞)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글자보다 어려워 보이는 꼬부랑 한자 글씨가 적혀 있다. 아빠, 엄마와 밥을 먹다가 물었다.
"등본을 뗐는데 내 한자 이름이 잘못 들어간 것 같아. 나 眞이라 쓰지 않아?"
"응, 너 眞 맞는데."
엄마가 맞다고 응하자 아빠가 픽 웃더니 말했다.
"아니, 네 이름 縝이라 써. 이름에는 잘 쓰지 않는 한자인데 유명한 곳에서 사주랑 다 보고 받아온 이름이야."
이럴 수가! 30년 넘게 알고 있던 엄마가 알려준 내 한자 이름이 사실 내 이름이 아니었다니!
그럼 그간 내가 한자를 적어 넣은 사주풀이들은 모두 잘못된 정보였단 말인가?
"엄마. 엄마는 어떻게 내 이름도 몰랐대?"
"한자 쓸 일 뭐가 있어~ 어쨌든 네 이름 갖고 잘 살았는데 뭐."
"그건 맞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는 엄마와 나를 보며 지독한 원칙주의자인 아빠는 혀를 내둘렀다.
아빠 내 세례명이 뭔 줄 알아?
이사하면서 성당에 다녀보려 마음먹었다. 성당에 가면 어떻게 무얼 해야 하는지 몰라서 에디타와 리아 언니의 도움을 받았다.
"성당 나가보려는데 어떻게 하면 돼?"
"그냥 가면 돼, 언니. 교적 등록하려면 본당 사무실 가서 말씀드리면 되고. 언니 그런데 유아 세례 받았지? 그러면 따로 세례는 다시 받지 않을 거야. 한 번 가 보고 이야기 나눠 봐!"
성당에 전화해 보니 현재는 코로나로 예비 신자 모집을 하지 않고 있단다. 그러면서 통신 교리 수료하는 방법을 안내해 주셨다.
"저, 그런데요. 제가 사실 부모님 두 분 모두 가톨릭 신자 셔서 제가 유아 세례를 받은 걸로 알고 있거든요."
"성함 하고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세요? 세례명은 아세요?"
"세례명은 부모님도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더라고요."
몇 초 지난 후, 수화기 너머로 내 진짜 세례명을 듣게 되었다.
"마크리나로 되어 있으시네요. 세례를 이미 받으셨기 때문에 세례를 다시 받으시면 안 됩니다. 공부가 필요하시다면 번호를 드릴 테니 한 번 문의해 보세요."
가족 단톡방에 "내 세례명 뭔 줄 아는 사람~" 했더니 엄마는 기억이 안 난다며, '안젤라? 아니면 무슨 네 글자였던 것 같기도 하고.' 했는데, 아빠는 당당하게 말했다.
'아그네스'
'나 아그네스 아닌데?'
'누구 맘대로?'
아빠는 신부님도 아니고 본인이 분명 선택해 준 세례명일 텐데 자기 마음대로 기억하고 있다.
내 이름의 기원을 스스로 찾는 과정이 우습기도 하고 또 하나의 나를 찾는 것 같아 재밌다.
내가 살면서 갖게 될 내 이름은 몇 개나 될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줄까?
내 한글 이름 석 자가 있고, 친구들이 부르는 '디니', 직장 동료들에게는 '진매', 고양이를 닮았다며 '냥이'란 애칭도 딱 한 번 들어봤다. 어릴 때부터 썼던 영어 이름 'Sunny', 영어 학원 강사 시절 'Claire', 작가 'Enero', 그리고 다시 찾은 내 세례명, 마크리나.
21. 9. 1.
심지어 오늘 성당에 가서 교적 전입 신청을 하니 내가 전화도 잘못 들었다.
나는 나탈리나였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