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ero Aug 30. 2021

지르텍을 먹는 사람들

지르텍을 아는 사람만 아는 모종의 심리적 관계

 나에게 '지르텍'은 그야말로 '상비약'이다.


 회사 책상 서랍부터 가방마다 지르텍이 들어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 지르텍을 알고 있다면 비염이 있거나 알레르기가 있거나, 아마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알레르기가 있다.

 분기에 한 번은 갑자기 허리나 팔부터 올라오는 알레르기에 몸이 붓고 간지럽기 시작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지르텍을 먹으면 30분 이내 두드러기가 가라앉는다. 그런데 1년에 한 번 정도는 꼭 응급실 신세를 진다. 지르텍으로 두드러기가 가라앉지 않으면 눈의 흰자위도 알레르기로 붓고, 기도까지 올라서 숨을 쉬기 어려워진다. 이럴 땐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119를 불러 당장 응급실에 가서 수액을 맞아야 한다. 


 문제는 이 알레르기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대학병원 세 군데를 갔고, 매년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알레르기 검사를 하는데 나는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음식이나 동물, 환경이 하나도 없단다. 그럼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갑작스러운 두드러기를 주기적으로 겪어야 하는지 되물었으나, 원인은 알 수 없는 채로 묵혀졌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피할 길이 없다.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하루를 보냈는데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니, 차라리 무엇 때문인지라도 알면 좋겠는데 참 답답할 노릇이다.


 지르텍을 먹은 날은 하루 종일 피곤하고 잠이 온다. 그 어떤 수면제보다도 강력해서 취급 시 주의사항으로 "운전하지 말 것"이라는 항목이 있을 정도다.

 예전에 만났던 사람은 내가 알레르기로 지르텍을 먹는 날이면 종일 연락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잠에 빠지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했다. 이건 정말 안 먹어본 사람은 모르는 '피할 수 없는 부작용'이다.


 "잠 오지 않는 항히스타민제 주세요."

 약국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졸린 성분이 없다던 항히스타민제 치고 그 말을 지키는 약이 없다.

 그래서 '훌쩍훌쩍 알레르기엔, 에취 에취 알레르기엔 지르텍!'을 먹는다.


 얼마 전 만난 분의 가방에서 지르텍이 나왔다.

 반갑지만 달갑지는 않은 지르텍 카르텔이다. 비염인지 알레르기인지를 물었는데 비염도 있고 알코올 알레르기도 있단다. 그럼 앞으로 적어도 우리가 만날 때엔 술을 먹지 말자고 했다.



 달고 살아야 하는 병이 있다는 건 그게 만성이 되었든 이따금 찾아오는 급성이 되었든 참 싫은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한화 이글스팬이 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