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직 팀장 될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일단, 누가 시켜준다고 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감투 쓰기가 정말 두렵고 싫다.
승진 욕심도 별로 없고, 더군다나 한 무리를 이끄는 '장'이 되고 싶지 않았다. 특히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이 IT 스타트업 업계에서 파트장, 팀장, 실장 등 '장'이 된다는 건 가진 권한은 별로 없지만 중간에 끼어 위아래로 두들겨 맞는 역할처럼 보였다.
나는 다행히 존경할만한 팀장님을 많이 만났지만, 그들을 보면서 한 번도 '일하는 게 행복해 보인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래서 입버릇처럼 팀장님께 "저는 이 회사에서 '장' 다는 날 퇴사할 거니까, 저는 절대로 리딩 하는 일은 시키지 말아 주세요. 저는 든든한 팔로워가 되는 게 좋아요. 팀장님만 따라다닐 거예요."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저런 팀장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은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있는 자리에 내 모습을 투영했을 때, 나는 그 사람만큼 잘할 자신이 없다. 내가 좋아했던 그 리더들을 통해 깨달은 점에 나를 끼워 맞췄을 때 무엇 하나 꼭 맞아 보이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첫째로 '일잘러'이어야 함
팀 내/외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소지
실무에 투입할 필요는 없지만, 실제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 것
중요한 프로젝트를 우리 팀 공으로 가져오거나, 'bottom up'이 가능케 하기
팀원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것
업무 분장 제대로 해주기
팀원과 면담 시 회사와 팀원 개인의 성장을 함께 고려할 것
팀원의 강점을 캐치하여 극대화할 줄 알기
다른 팀이나 업무로부터 팀원 보호
팀원의 공로 가로채지 말 것
정보를 어디까지 팀원들에게 공개할 것인지 잘 판단하기
너무 부지런하고 열정적이어서 팀원이 눈치 보게 하지 않을 것
팀원의 사생활과 워라밸을 존중할 것
당장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도 '좋은 팀장의 자질'엔 끝이 없다.
일단 나는 한 가지 서비스에서 실무자로 오랫동안 일했기 때문에 실무는 뒷단까지 빠삭하게 알고, 부문 관계없이 좋은 관계 형성이 잘 되어 있어 커뮤니케이션에는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장'이 된다는 건 리더가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리' 직급에서 '과장'으로 승진함은 곧 '한 과를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판단한다. 나는 그래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게다가 나는 내 일만 해도 분에 차고 넘쳐서 잠자는 시간도 아끼며 일하는 사람이다. 아무도 주지 않은 책임감에 '내가 안 하면 누가 하겠어!'라고 생각하고 남들에게 일을 시키거나 던질 줄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팀장이 된다면, 들고 있는 업무 분장도 제대로 못하고 팀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되다가 내 힘에 눌려 많이 아플 것이다. 거절도 잘 못해서 다른 부서에서 던지는 업무를 블랙홀처럼 받아올지도 모르고, 팀원 보호를 앞세우다 다른 팀과 싸우거나 그냥 답답한 사람으로 전락할지도 모르겠다.
절대 장이 되고 싶지 않다는 나에게 팀장님은 '자기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잘 생각해보라'며 말했다.
"회사를 계속 다닌다면 언제까지 '팀원'으로만 남아서는 안 돼요. 특히 이직할 생각이 있다면요. 현실적으로 회사 10년 경력이 있는데, 작게는 파트장이라도 리더 경력이 한 번도 없다면 어떨 것 같아요? 팀원을 뽑을 땐 기존 팀원들과 비슷한 경력을 선호하지, 팀장보다 경력만 긴 팀원을 뽑을 이유가 없어요."
이 직장이 평생직장이라 생각하지 않으므로 그 말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정타가 날아왔다.
"이직할 때 팀원에서 팀원으로 연봉 협상하는 건 쉽지 않죠. 이 사람의 퍼포먼스가 어느 정도인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더 얹어 주겠어요. 그래도 이 회사에서 '장' 한 번 달아야 다른 기업이 됐든 스타트업이 됐든 '있어 보일 것' 아니에요? 연봉 협상도 그럼 더 수월하겠죠."
실제로 얼마 전 본 면접과 협상에서 내 연봉과 스펙이 '투 머치'라며 결렬된 일이 있었기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도 나는 아직 팀장 될 자격도 경력도 자질도 안 되는 것 같다 말하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