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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Sep 25. 2021

개기일식 같은 순간

돌다보면 언젠가 다시 우리가 일렬로 선다

 그는 우리의 마음이 맞닿은 순간을 '개기일식'이라 표현했다.

 살면서 볼까 말까 한 순간에 아주 드물게 나타나고, 개기일식이 일어나도 그 과정을 볼 수 있는 정확한 위치에 사람이 서 있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순간.

 그 말이 내포한 의미는 여럿 있겠다.


 그만큼 운명적이고 치명적이었다. 세상이 어둠에 잠겨 공기가 10℃ 정도 낮아지고, 내가 원래 알고 있던 같은 시간과 공간의 모든 공기가 바뀐다. 그 찰나에는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내게 태양 같았고, 나는 그 주위를 도는 지구라 생각했다.

 시간과 운명이 내 주변을 도는 달이라면, 그 셋이 일렬로 섰을 때. 그 찰나의 순간에 지구 위에 면봉 같은 내가 그를 보았고, 감히 손으로 쥐려 했다.


 태양이었던 그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 달에게 제발 이 순간을 오래 지켜달라 기도했다.

 오늘이 아니면,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오래도록 그의 눈을 보고, 팔을 끌어안았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이카루스의 날개가 생겼다.


 우리를 일렬로 서게 했던 달이 사라지자 태양은 다시 눈부시게 달아 올라 또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내가 만든 이카루스의 날개를 펼까 고민하다가, 결국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양초로 붙인 날개가 견고하지 못할까 두려워서도 아니고, 태양에 녹아내려 내가 무너질까 봐도 아니다. 그저 저를 따라 내가 돌고 있음을 뻔히 아는 태양이 내가 추락하는 걸 바라지 않을 듯하여. 그 태양이 가슴 아파할까 봐 배낭 메듯 날개를 둘러메고 가만히 앉았다가 밤이 깊으면 다시 양초를 발랐다.


 언젠가 나를 부른다면 바로 날아가고 싶어서. 아니면, 또다시 개기일식의 순간이 온다면 어찌 되었든 일렬로 선 태양, 달, 지구는 다른 행성으로 바뀌어 있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 인간의 어떤 만남도 우리에겐 개기일식에 비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모든 순간이 개기일식이었다고 판명 나지는 않는다.

 비를 잔뜩 안은 먹구름이 태양을 가릴 때, 눈이 먼 우리 중 누군가는 "태양이 가려진 걸 보니, 개기일식이다!"라고 외칠지도 모른다.

 구름이 지나가고 나서야 그는 그게 일식이 아니라 스쳐 가는 먹구름이었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태양이 눈 앞을 가린 비구름에 '달이 내 앞을 가리러 왔구나.' 착각할 수도 있지 않은가.


 달이 해를 갉아먹 순간, 파도가 요란스럽던 항구 도시에서  끝까지 차오르는 사랑한다는 말을 참을  없어서 내뱉었던 날이 죽기 전에    있을지 모르겠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내가 바보였는지, 달이 잠깐 마실 다녀온 건지 알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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