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탄생기
형이 결국 부모님과 친척에게 알리지 않고 결혼식을 거행하고 외국으로 나갔다.
그 결혼식에는 가족 중 유일하게 형을 응원한 나만 초대받았고, 작고 예쁘게 사랑의 결실을 맺는 순간을 지켜봤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께 말씀은 드려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 이 난관을 무릅쓰고 결혼한 형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앞으로 한국에 남아 고스란히 부모님의 화를 견뎌야 하는 나 자신에 대한 걱정도 들었다.
이런저런 감정을 뒤로하고, 형이 앞으로도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랐다.
형수님이 엄청나게 모자란 부분이 있거나, 형이나 우리 집안이 빼어나게 잘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엄마는 나이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형이 데려온 친구를 무척이나 못마땅해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우리 집안이 대기업 총수 집안이거나 잘 나가는 '사'자 집안인데, 형수님이 어디 빵집 아르바이트생에 달동네 옥탑방에 동생 일곱쯤을 데리고 사는 줄 알겠지만, 부모님이 반대하는 이유는 그냥 마음에 안 든다는 게 전부였다.
"너, 그 애랑 지금 좋다고 결혼하지? 앞으로 평생 불행할 거야."
"너 키우는 데 들어간 돈 다 내놔. 양육비부터 너 유학 간다고 대준 학비, 생활비 모조리 다 내놔!"
엄마가 악담을 마구 퍼부었다. 부모님이 낳은 자식의 인격체에 대한 걱정인지, 제2의 자아실현을 자식을 통해 하려는 건지 헷갈릴 만큼 정도가 지나쳤다.
울어도 보고 소리도 쳐 보고 빌어도 보고, 장문의 편지까지 써서 마음을 전하려고 부단히 애썼던 형. 형은 부모님을 설득하고자 이런저런 노력을 많이 했다.
겨우 진정시켜서 함께 갔던 심리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 엄마가 내뱉은 한 마디를 끝으로 형은 집을 나가 버렸다.
"저 상담가란 양반, 돌팔이 아니니? 어떻게 저런 사람이 나를 평가할 수 있니? 무슨 자격이 있어서 우리 가족 인생사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냐고! 절대 저런 사람 말 받아들일 수 없어. 순 사기꾼!"
형이 겨우 도망치듯 나가서 구한 집에 엄마는 여러 차례 말없이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아파트 복도에서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 부모님도, 형과 형수님도 모두 마음에 병이 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사돈어른 댁에도 눈물 마를 날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누구도 가늠치 못했을 만큼 내 마음도 병들었다.
형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결혼한 뒤 외국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안 부모님은 -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모두가 상상할 수 있을 만큼보다 더 - 뒤집어졌다.
그리고 그의 결심을 막지 못한 책임의 화살이 별안간 나에게 날아와 꽂혔다. 둘째 아들로서, 그리고 동생으로써 이 불행의 씨앗을 막지 못한 게 내 탓으로 돌아왔다.
소리를 내뱉을 형이 없어지자 언제든 전화할 수 있는 내가 그다음 타깃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냥 우리 가족이 행복하길 바랐을 뿐이다.
형이나 나나, 부모님이 낳아준 자식들이지만, 우리는 성인이 되었고 스스로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롯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나는 형이 '우리 형', '우리 집 장남'이라는 타이틀보다는 '행복한 사람'으로 남길 바랐을 뿐이다. 그래서 45:55의 비중으로 형 편을 조금 더 들었다.
그게 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 나라는 결론이 날 줄은 몰랐다.
호적을 정리하자는 말은 당연히 나왔고, 형에게 갔던 날카로운 말이 그대로 나에게도 왔다.
"너 키우면서 든 돈, 증여해준 것들, 유학비 다 갚아. 언제까지 어떻게 갚을건지 계획서도 내고, 모조리 다 현금으로 가져와. 넌 이제 우리 아들이 아니다."
진절머리가 나서 호기롭게 나도 그러겠다고, 당장 다 빼서 있는 만큼 먼저 드리고 나머지는 다달이 갚겠다고 말했다. 아이가 있는 채로 내가 바람을 피워 이혼을 당해도 양육비를 다달이 이만큼이나 보내고, 위자료를 이렇게나 많이 주는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현실적으로는 막막해도 차라리 다 줘 버리고 안 보고 사는 게 마음 편하겠다 싶어서 지지않고 싸운 뒤 현관을 박차고 나왔다.
아마 엄마는 내가 집을 그렇게 나온 뒤 가슴을 치며 눈물을 쏟았겠지.
하지만 나 역시 꽉 막힌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는 길,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차와 함께 심장이 멈추는 것처럼 화가 치밀고 피눈물이 맺혔다.
그래도 지금까지 부족한 것 없이 살았고 우리 가족도 나쁘지 않았었는데, 꼭 여자 문제만 끼면 이런 사달이 나는 게 괴롭다. 형이 이기적이었다고 욕하고 싶지도 않다. 나라도 그냥 누가 물으면 "저 고아인데요."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어떤 사람을 만나야 충분히 부모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들이 아까운 만큼, 그 집 딸도 집에서는 너무 곱고 사랑스럽고 어디 내 주기 아까운 자식이다.
남의 집 귀한 딸을, 그것도 내가 결혼하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낳아 준 부모님이 상처 주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부모에게는 자식을 낳을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자식은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날지, 나아가서 태어날지 말 지를 결정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다.
양육은 아이를 낳은 부모의 책임이며 의무지만, 부양은 의무보단 선택에 가깝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가 정말 나 잘 되라고 하는 소리가 맞는지, 불효자 같은 의문이 든다. 내가 이렇게 큰 데엔 결국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 키운 탓도 있는 게 아닌가.
언젠가 내가 아이를 갖고, 그 친구가 커서 나에게 이런 소리를 해 댄다면 또 마음이 아파 나도 비슷한 소리를 해댈지도 모른다.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들 하는데, 난 꼭 자식을 이겨야 하는 아버지, 어머니와 산다.
어찌저찌 집만 나와 사는데, 이 빨간 줄은 시공간을 초월해 길고 단단히도 묶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