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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Oct 31. 2021

길거리 헌팅 법칙

10년 간 한결같은 길거리 헌팅

두 분이서 오셨어요? 저희도 두 명인데.



 얼마 전, 친구와 함께 을지로에 한 가맥집을 찾았다.

 사람도 건물도 없는 '이런 곳에 가맥집이?' 싶은, 을지로 구석진 곳에 위치한 가게였다.


 허름한 슈퍼, 메뉴판도 없는 이 가게를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물론 나도 우연찮게 친구를 따라갔지만) 바깥에 테이블은 딱 세 개뿐인데, 오후 다섯 시가 되니 그 테이블이 다 찼다. 할머니 혼자 장사를 하시는 탓에 계란말이 하나를 주문하면 30분은 걸린다. 다른 테이블에서 메뉴를 다양하게 시킨 모양이었다.

 슈퍼 안에 들어가 소주 한 병과 포카리 스웨트 한 병을 친구와 나누어 먹고, 이야기를 하며 길을 걷다 보니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지듯 나오는 거리가 나왔다.


 그 유명한 '만선 호프'가 있는 거리였다.


 내가 기억하는 을지로라 함은, 청계천 근처를 따라 공구상이나 새, 햄스터, 물고기 상점들이 몰려있고 오랜 시절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켜온 을지면옥 같은 노포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20대 초반, 을지로에 있는 한 기업 인턴을 할 때에도 을지로 3가 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회사까지만 걸어봤으므로 그 동네가 이렇게 많은 젊은이로 붐비는 장소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만선 호프가 있는 거리에 발을 딛자, 요즘 코로나 시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저녁 여덟 시 정도 된 시각이었는데 이미 가게 밖 야외 테이블에는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을지로에 이렇게 사람이 많아진 건 3-4년은 되었다고 하는데, 그때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천천히 사람을 구경하며 지하철을 타러 역으로 향하는데, 과장 보태지 않고 다섯 걸음에 한 명씩,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멘트 학원이라도 있는지 첫마디는 똑같다.


 "저기요, 두 분이서 오셨어요? 저희도 두 명인데. 술 한 잔 같이 하실래요?"



저 말고, 저 친구 잘생겼어요.



 10  ,  주무대는 홍대 인근이었다. 심지어 내가 홍대를 나온 거로 착각한 친구들이 있을 만큼, 나는 밤마다 단짝 홍대에 나가 놀았다. 아르바이트도 홍대에서 했고, 데이트나 친구들과 술자리도 주로 홍대, 상수, 합정 인근에서 가졌다.


 2000년 중후반, 홍익대학교 정문에서 극동방송으로 향하는 길가는 클럽으로 붐볐고, '클럽데이'라 불리는 날이 되면 입장권 하나로 근방에 있는 모든 클럽에 갈 수 있었다. 흑인 힙합에 심취해 있었으므로 주로 챙이 넓고 평평한 뉴에라 모자에 커다란 스트릿 맨투맨 따위를 입고 다녀서 클럽 안에서 추행을 당할 일은 별로 없었지만, 네시쯤 밖으로 나오면 길 잃은 나그네들이 말을 붙여오곤 했다.


 주로 그렇게 말을 붙이는 건 남자 셋이 모인 그룹이었다.

 조합은 보통 잘생긴 남자 A(라고 무리에서 지칭되는), 말 잘하고 유쾌한 남자 B, 그리고 돈 잘 쓰는 형님 C로 이루어진다. 일반화하려는 건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 내 경험 상 술을 마시기 시작한 성인이 된 후로 '길거리 헌팅'을 한다는 조합은 대부분 그랬다.


 보통은 말 잘하고 재치 있는 B가 등 떠밀리듯 여자들에게 먼저 말을 건다. 접근 방식은 다양하지만 주로 갑자기 뒤에서 앞으로 휙 나타나 한쪽 팔로 앞을 가로막은 채 뒷걸음으로 걷거나, 뒤에서 어깨를 한 번 톡톡 친 뒤 옆에서 눈치를 보며 따라 걷는다.


 "저기요, 세 분이서 오셨어요? 저희도 세 명인데. 지금 어디 가세요?"

 "집에 가는데요!"

 "지금요? 저희 아쉬운데 첫차 뜰 때까지 한 잔만 같이 해요. 저 말고, 제 친구가 진짜 잘생겼어요."


 그러면서 잘생겼다는 친구가 있는 쪽을 가리켜서 그쪽을 보면, 미남이라는 친구 A와 C 형님은 저 멀리서 관심 없는 척(?) 저 멀리 서서 담배를 태운다. 아마 애간장도 같이 태웠을 것이다.

 홍대, 이태원, 강남역 어디를 가도 비슷한 패턴의 반복이다.


 "저희 술 잘 못해요."

 "괜찮아요, 사이다 시켜드릴게요."



 젊은 청춘들이 모여 같이 놀고 싶고, 마음에 드는 사람과 술 한잔 하며 알고 싶은 마음, 한 시간이라도 친구와 우정 쌓기보다는 잠깐의 '텐센'이라도 느끼고 싶은 심정, 혹은 그냥 오늘 밤 한 번 어떻게 해 보려는 흑심일지라도 10여 년 전과 지금은 장소를 불문하고 똑같은 모습이 재밌다.



 다만... 이제 나는 안 껴준다는 슬픈 사실 빼고는...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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