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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Sep 25. 2021

여자 화장실에는 구멍이 있다

무병장수는 안 바라고요, 살해 당하지나 않았으면 해요.

 공중화장실에 가면 변기를 에워 싼 벽에 항상 자그마한 구멍들이 많이 박혀있다.

 지역과 건물의 연식을 불문하고 반드시 벽과 문에는 나사 하나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박혀있고, 으레 그 구멍은 휴지나 매니큐어, 스티커 등으로 막혀있다.

 그리고 나도 문구점에서 산 스티커나 휴지로 보이는 구멍을 다 메우고 화장실을 사용한다.


 이 정체 모를 작은 구멍이 여자 화장실에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몇 해 전이었다.

 친한 남자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벽면 가득 뚫려있는 흔적을 다 메우고 나서야 용변을 봤고, 돌아와서 "아니, 대체 화장실에서 총기 난사가 벌어진 것도 아닌데 뭐 이렇게 구멍이 많냐?" 했더니 "무슨 구멍?" 하고 되물었다.

 나사 구멍같이 작은 것들이 여기저기 뚫려 있다고 말해도 당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 화장실에 도로 가서 사진을 찍어다 보내줬다.


 남자 화장실에 그런 구멍은 없단다.




 예전에 자주 가던 한 프랜차이즈 카페 화장실 역시 비밀번호는 있지만 결국 남녀 공용이었다.

 항상 그 화장실을 이용할 때에는 갑자기 밑에서 손이 불쑥 나오진 않을지, 앞에 있는 나사가 몰래카메라는 아닐지 걱정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엔 "죽을지도 모른다"라는 공포심이 몰려와 그냥 나와버린 적도 있다.


 혹자는 내가 너무 오버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학부 시절 인문관 안 여자 화장실 바닥에 엎드려 훔쳐보던 남자와 눈을 마주친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여자 기숙사에 몰래 들어온 변태가 학교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내가 스무 살 때 오후 6시경 홍대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고 줄을 서 있었다.

 사람이 북적이는 틈을 타 어떤 아저씨가 내 어깨를 톡톡 치더니 "저기요!" 했다. 도움이 필요한가 해서 뒤를 돌아보니 바지를 내려 시꺼먼 걸 꺼내 보였다.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 소리를 꽥 질렀고, 눈물이 나고 손이 떨렸다. 그때, 내 옆을 지나쳐 버스를 타려던 어떤 남자의 "아, 시끄러워." 말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 후에 지하철에서 어떤 남자가 내 엉덩이를 쥐었을 때, 나는 소리를 지르는 대신 내 손을 슬그머니 뒤로 가져가 그의 손목을 잡고 꺾은 후 싸대기를 날려 그가 쓰고 있던 모자까지 날렸다. 그 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우리 둘을 쳐다봤고, 그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뒤 "죄송합니다!" 외치고 정차한 역에서 후다닥 내렸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남은 나만 손을 떨며 울었다. 그에게 흉기라도 있었으면 난 죽었을지도 모른다.


 만원 지하철 좌석 끝, 문 앞에 서 있으면 끝에 앉은 노친네가 허벅지를 만지기도 하고, 남자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하니 차를 태워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같이 죽자 했다. 한 번은 스토커가 따라붙어 밤낮이고 발신 번호 표시 제한으로 전화를 해대서 전화번호를 바꿨더니 트위터에 내 얼굴 사진을 달고 음란 계정을 만들었다. 사이버 수사대에 가서 수백 장의 PDF 파일을 인쇄해 가져갔다. 돌아온 말은 "못 잡아요."였다. 이 사건은 이제 꼭 10년이 되었으니 미제 사건으로 종결되었을 것이다.


 취업 준비 시절에는 유명 잡지사 에디터가 해외 유명인이 입국하면 같이 인터뷰를 하고 통역을 하는 인턴 자리를 제안했다. 신나는 마음에 따라가 '살면서 이런 사람을 또 볼 수 있을까?' 싶은 사람을 인터뷰했다. 일을 마치고 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 갑자기 그 에디터가 내 손을 잡았다. 차량 조수석에는 아내와 아이 사진이 붙어있었다. 놀라서 손을 뿌리치고 도산대로 한가운데서 내려달라 하니, 차를 잠시 멈추고 지긋이 바라보더니 갑자기 내 입을 맞추려 했다. 손으로 그 얼굴을 패대기치고 내려서 또 길 한복판에서 엉엉 울었다.

 그는 그 이후에도 잘 성장해서 TV에도 나오고 잡지사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듯했다.


 심지어 바로 며칠 에도 광장시장에서 남자 친구들과 해물탕을 먹는 내게 취한 남자가 나타나  가슴에 손을 대려 해서 한바탕 싸움이 났다.


  2016, 친한 친구 C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 그녀가 꺼낸 말이 잊히지 않아 아직도 메모장에 보관하고 있다. 아래는 C 했던  전언이다.

(6년이나 지났는데 상황이 다를 바 없는 게 우습다.)




 사회계약설에 따르면 국민과 국가는 쌍무 간 계약을 맺고 국민이 국가에 통치권을 맡기는 대신, 국가는 국민의 신변을 보호해야 하는데, 살인 사건이 일어난 후 살인범을 잡는 건 이미 일이 끝난 후이므로 국민 보호가 아니고, 살인 사건을 방지, 억제, 제재하는 것이 국민 보호다.

 여성 대상 주차장 범죄가 너무 잦아서 울며 겨자 먹기로 여성 전용 주차장 등을 만들어 그 구역만 CCTV 등 경비를 증설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요즘 국가가 국민 보호를 정말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새벽 냄새를 맡으며 조깅을 할 거고, 밤에 술잔을 기울이고 심야 영화 보는 걸 좋아하며, 깜깜한 이른 아침에 일터를 향해 집을 나선다.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떤 옷을 입고 뭘 하는지 내가 직업이 무엇인지, 내 머리카락이 긴지 짧은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럼 어쩌라고? 한 미친X이 그런 것뿐이야. 네가 스스로 조심해야지. 그러니까 일찍 다녀."라는 뉴런 개수가 의심되는 반응을 보고, '아, 이제 국가와 사회 차원의 국민 신변 보호 강화, 처벌 강화, 피해자 대우 및 가해에 대한 사회구성원 전체의 인식 개선 등이 아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자 셀프 보호 시대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흑인 인권이 신장하면서 그에 대한 백인의 반발로 흑인 살인 피해 사건이 증가했다. 세계는 이 사건을 두고 '흑인 차별 하지 말라, 흑인 인권 보장하라!'는 경각심을 갖지, 백인 전부를 가해자로 몰아 '기분이 나쁘다'로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


 허구헌날 후배에게 폭언을 일삼고 개인적인 사욕만 챙기는 이른바 '꼰대' 상사를 보고 젊은 직장인은 '꼰대 세대가 사라져야 한다, 강제로 야근시키고 불합리한 지시하는 상사들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데 누구도 "마치 이 세상 모든 상사가 그런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상사와 후배 갈등 조장, 사회 갈등 조장 마시고 조용히 하세요."라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발생하는 일이고, 이게 사회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사건, 작게는 에스컬레이터 정지, 엘리베이터 추락과 같은 안전사고가 생길 때, '우리나라 안전 불감증 심각하다. 부실 공사 하는 곳 대한민국에 아주 많다. 철저히 조사해라.'는 경각심을 가지지 '우리나라에 안전한 건물도 많은데 왜? 모든 건설사가 날로 먹는 거 아닌데 싸잡아 비난하지 말자. 우리 건설사 에스컬레이터는 안전한데 왜 손잡이 꽉 잡고 불안해해? 이게 고장 날 것 같아? 기분 더럽네!' 하는 반응은 없다.




 나는 호신용 후추 스프레이를 가지고 있는데,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장난감 권총 라이터를 꺼내 들자 상대가 두 손을 번쩍 드는 걸 보고, 차라리 비비탄 총을 사서 들고 다니는 게 낫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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