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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Oct 13. 2021

내 나이 서른둘, 엄마를 울렸다

비밀을 알리자 엄마가 울었다

아빠에겐 비밀이야


 내가 엄마를 울린 건 ‘미필적 고의’라 정의할 수 있겠다.


미필적 고의: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어떤 범죄결과의 발생 가능성을 인식(예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의 발생을 인용한 심리상태


 그러니까, 엄마가 내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엄청난 충격과 죄책감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리라는 걸 알면서도 간과한 셈이다.


 엄마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집에 갑자기 찾아왔던 어느 날, 식탁 위에 잔뜩 쌓여있던 내 이름이 적힌 약봉투를 발견했고, 나는 애써 담담한 척 “그냥 잠이 안 와서.”라고 말했다.

 매일 내 상태를 확인하고 안부를 물어올 때마다 내가 괜찮다고만 하니, 엄마는 그 말을 믿기 어려워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enero라는 필명으로 어딘가에 글을 쓰고 있음도 엄마는 대충 알고 있었다.

 다만, 어떤 내용의 글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분명 엄마가 알게 되면 매일 내 브런치 글을 들여다보고 내 심리를 다 알려고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 지인들에게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걸 괜히 알렸다는 생각을 간간히 했다. 항상 밝고 괜찮은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산다는 걸 괜히 널리 알린 탓에 주변에 걱정만 안긴 것 같아서.

 그래도 아랑곳 않고 글을 썼고, 수개월 간 내 글을 봐주신 독자님들 역시 내 상태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보다 많이 건강해졌음을 느낀다 해주셨다.


 여러 작가들과 함께 공동 저서로 쓴 글이 드디어 출간을 목전에 두고 있다.

 초판이 인쇄됐고 몇 부를 미리 받아볼 수 있었다.


 고민 끝에 한 권을 엄마에게 가져다줬다. 그러면서 아빠에게는 비밀로 해 달라했다.


 책을 건네자마자 나는 내 차에 올라타서 강변북로를 건넜다. '중전마마'의 카톡 알림이 계속 울렸지만, 그날따라 차가 하나도 막히지 않아서 나는 그냥 내달리기만 했다.



다른 엄마들은 다 안대. 난 나쁜 엄마야.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단짝 B와 E도 내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글로 마주하니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J는 심지어 이제 내 글을 더는 못 읽겠다며 나 때문에 가입한 브런치 앱을 지웠다.


 그러니까 엄마가 읽게 된 글은 내 상태가 최악을 때 썼던 에세이다.

 엄마는 그때의 나를 처음 마주했고 결국 그게 고스란히 엄마의 죄책감이 되었다.


 [우리 딸, 이렇게 힘든 줄도 몰랐어. 다른 엄마들은 다 안다던데. 나는 우리 딸이 이렇게까지 힘든 줄도 모르고... 난 정말 나쁜 엄마야. 엄마가 미안해.]


 애써 이모티콘을 잔뜩 붙이며 답했다.


 [엄마, 엄마가 내 인생에 가장 큰 에너지야. 나 그리고 지금은 정말 괜찮아. 행복해. 미안해할 필요도 없고 잘 이겨내고 있으니까. 많이 사랑해.]



 아마 엄마가 나를 낳고 키운 만 32년 중, 엄마를 가장 크게 울린 날은 결국 엄마가 내가 가족에게만큼은 숨기고 싶던 비밀을 알아버린 이 날이리라.


 나는 어른이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엄마에겐 작은 아기다. 

 그리고 세상 모든 딸 중 가장 못된 불효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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