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만에 복직. 변한 것과 그대로인 것
애타게 기다렸어요. 정말 든든하네요.
복직 첫날, 출근하자마자 미팅이 잡혔다.
팀에서 각자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돌아가면서 공유를 하는 시간이다. 팀장님이 각 업무에 대해 세심한 피드백을 해주었고, 이번 주 내에 끝내야 할 업무와 앞으로 착수할 프로젝트에 대해 공유해주었다.
같은 팀 친한 동료인 Y는 내게 개인 메신저로 말했다.
"이 회의에서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말씀하시지는 않는데. enero님 바로 일하시려나 봐요 ㅋㅋ"
워낙 변화가 빠르고 경쟁이 심한 IT 업계 특성상, 3개월 간 많은 게 변하기도 했지만 어떤 일들은 내가 떠나기 전과 마찬가지로 진척이 없다. 1시간짜리 미팅에 참여해보니 대충 돌아가는 꼴이 바로 파악된다.
휴직하고 돌아와 보니 왜 휴직자 자리를 대체할 사람을 뽑지 않고 기다려주는지도 (특히 나처럼 단기 휴직의 경우)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나는 이 회사에 직원이 200명 남짓되는 '스타트업'에 입사해서, 지금은 전사에 1,200명 이상이 근무하고 있는 틈새에 만 5년 이상을 근무한 덕에 고인물이 되었다. 직무는 바뀌었지만 한 서비스를 오래 붙잡고 가다 보니, 구구절절 설명이 없어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고, 히스토리를 바탕으로 다른 분의 업무에 조언을 할 수 있는 정도는 됐다. 그러니 내가 없는 사이 새로 사람을 뽑아 가르치는 것보다 그냥 나를 기다리는 게 리소스 절감에 유의미하다고 봤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부재 기간 동안 내 업무를 특히 많이 가져간 S와 개인 미팅을 잡고 그녀가 해야 하는 업무 중 큰 꼭지를 가져왔다. 그녀는 내게 연신 고맙다며 밝은 목소리로 답했고, 나는 그저 그녀가 이런 일들을 다 쥐고도 지금까지 버티고 기다려줘서 고마웠다.
팀장님이 말했다.
"너무 오래 기다렸어요! 다른 회사 갈까 봐 얼마나 애가 탔게요. 정말 든든하네요."
팀장님 목소리가 상기되어 있다고 팀원들이 웃으며 말하기에 답했다.
"저는 온보딩 시간 안 주시나요? 저 좀 돌봐주세요."
"네, 온보딩 시간 오늘 하루 드릴게요. 지금 이 미팅이 enero님 온보딩 시간이었어요!"
사람들이 사라졌고, 도메인이 바뀌었다
일단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없는 3개월 새 많은 사람이 휴직하거나 퇴사했다는 점이다.
극악무도한 업무량에 혀를 내두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사람, 더 나은 곳에서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고 싶다며 떠난 사람, 커리어를 아예 바꿀 거라며 떠난 사람.
병가 휴직 기간 중 내 회사 메일 계정이 정지된 상태라 떠난 분들의 '졸업 메일'을 모두 확인하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꽤 떠났다는 게 아쉽다.
TO는 줄었다. 이를테면 3명이 떠난 자리에 1명 TO가 난다.
공장 라인에서 옆 사람이 농땡이를 치면 그 옆 사람이 두 배로 일을 해야 하듯, 우리도 개인 업무 capacity를 늘려야 할 거로 보인다.
제플린에 쿼리를 돌렸더니 이상한 문구가 요란스레 잔뜩 떠 있다. 물어보니 도메인이 변경됐단다.
조직개편이 얼마나 크게 있었던 건지, 내가 속한 실에 무슨 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우리 팀장님이 겸직 중인 두 팀의 모든 팀원 이름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오랜만에 브런치나 워드가 아닌 시트와 노트를 켰더니 단축키 몇 개가 잠시 헷갈렸다.
나는 여전하고, 잠이 안 온다
나는 휴직 전과 마찬가지로 또 떠안기 시작한다.
내 일이 아니지만 "제가 할 수 있다면 도와 드릴게요." 소리가 두뇌 회전 속도보다 빨리 입 밖을 튀어 나간다. 복직하기 전, 내 일이 아니면 너무 머리와 마음 쏟지 않고 퇴근 시간도 잘 지켜야지 마음먹었던 게 이틀 만에 도루묵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푹 쉬다 와서 그런지 아직은 열정 넘치는 신입 사원 같은 기분이 든다. 이 패기가 또 며칠이나 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쉬는 동안 머리를 비우니 그전에 프로젝트를 담당할 땐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였다.
결국 어제 복직 2일 차만에 야근했다.
물론, 받은 업무를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 반에 더해 이번 주 내내 약속이 있으니 어제가 딱 '해야 할 거 해 놓기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다시 잠이 안 온다.
오늘도 결국 꼭 세 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대신 업무 창을 켜지 않고, 글을 쓰러 직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