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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Feb 16. 2022

보물찾기

 "전에 살던 집주인인데요, 택배가 왔는데 중요해 보여서. 온 지 좀 된 것 같은데 깜빡하고 이제야 연락해요."


 지금 집으로 이사 오기 바로 전, 살던 집에 누군가 택배를 보냈던 모양이다.

 고지서 같은 웬만한 우편물이라면 그냥 넘어갈 듯 하지만, 택배가 왔고 발신지가 적혀있지 않아 반송도 어려워 보여, 차라리 직접 전해주어야 할 것 같았단 말을 덧붙였다.




 그 집에선 꼬박 3년을 살았지만 그 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떠나기 직전 마지막 3개월이라 할 수 있겠다. 이사를 할 거라 마음먹고 6개월 뒤 집을 빼겠다고 집주인 아줌마에게 말씀드리고 얼마 후, 그를 만났다.


 그는 내가 살던 도시에 잠시 놀러 온 사람이었다. 예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그리 가깝게 지냈던 사람은 아니었는데, 우연찮게 그의 여정에 내가 갑작스레 끼어들게 되었다. 내가 알던 멋진 뷰와 맛있는 음식을 소개했고, 휴가를 나온 군인의 3박 4일은 3분 4초처럼 느껴진단 말처럼, 그와 함께 한 일주일이 7초처럼 스쳤다.


 그가 떠나고 나서는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가끔에야 볼 수 있는 얼굴이라 해도 카카오톡 알림에 그의 이름이 뜰 때마다 마음이 쿵쾅거려 도저히 바로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밀당이다 뭐다 해도, 나는 그에게 푹 빠져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도 항상 다정했다. 추운 날이면 품 안으로 꼭 안아주고 손을 잡아 자신의 코트 주머니에 넣어 데워주었다.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나는 그의 뒤에 서서 허리를 껴안는 걸 좋아했다. 

 이사를 돕기 위해 일을 뒤로하고 찾아온 날, 짜장면에과 탕수육을 시켜 먹으며 새 출발을 축하했다. 우리 집 한편에 있는 폭신한 소파에 그가 앉아 있으면 굳이 옆자리가 아니라 위에 올라 껴안았고 목덜미에 나는 향이 좋아서 연신 코를 킁킁댔다.


 그러다 어떤 계기랄 것도 없이 드물어지고, 멀어지고, 증발하기 시작했다.

 말을 꺼내면 물거품이 될 것만 같아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하던 중 결국 터지고 말았다. 그는 변한 게 없다며 손사래 쳤지만, 나는 내가 이러면 그를 더 질리게 할 걸 알면서도 눈물만 터뜨렸다. 내 생일이 있던 주간인데 별 계획도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아 서러움이 더했다.

 



 이사 후 수개월이 지났는데 전에 살던 집주인에게 연락이 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택배를 가지러 전에 살던 동네에 가는 길,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골목길 상점들이 여럿 바뀌거나 '임대 문의'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여긴 원래 국숫집이 있던 곳이었는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파란 대문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건네받은 작은 상자에는 발신인의 이름과 주소가 없었지만, 송장에 찍힌 도장을 보니 그가 살고 있는 동네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는 분명 내 이사를 도왔으니, 우리 집 새 주소를 모를 리 없는데. 왜 이곳에?

 눈물로 보내고 몇 날 며칠 꿈에 나오던 그 이름과 얼굴이 심장을 두들긴 탓에 차에 타자마자 상자에 붙은 테이프를 마구 뜯었다.


 내 발 사이즈에 꼭 맞춘 운동화와 함께 카드가 들어 있었다.


 [지금부터 보물찾기 하는 거야. 일단, 곧잘 갔던 카페에 가 봐.]


 바다 앞에 있던 작은 카페였는데, 내가 살던 내내 거의 매일 출근 도장을 찍던 곳이라 사장님과 곧잘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눴었다. 찰랑이는 종소리를 뒤로 한 채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여전히 맛있는 레몬 마들렌 냄새가 코 끝을 간지럽혔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어머, 윤지 씨! 정말 오랜만이네요. 이사하신 거예요?"

 "네. 조금 떨어진 동네로 이사해서 이 동네에 올 일이 없었어요. 잘 지내셨죠?"

 "그럼요. 몇 달 기다렸는데, 연락을 드려야 하나 싶을 정도로요. 연락처를 알아야 말이죠."

 그녀가 입을 가리며 웃더니 잠시만 기다려달라 하고는 선반에서 티라미수 한 판을 꺼내 포장하고 서랍에서 카드를 꺼내 주었다.


 "남자 친구. 이거 부탁한 지 몇 달 됐는데, 직접 올 때까지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어찌나 신신당부하던지요."


 송장에 찍힌 동네 이름으로 가진 심증, 거기에 사장님의 목격담이 더해져 이 보물찾기 대회 주최자가 그라는 걸 확신했다.


 "아, 어떡해. 잊지 않고 생각해주셔서 감사해요. 비록 지금은 헤어지긴 했는데, 참 깜찍한 일을 해놨네요."

 눈만 대충 웃으며 말하는 날 보고 그녀는 아차 싶었는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녀가 사과할 만한 일도 아니고, 사장님이 만든 티라미수를 정말 좋아하니 이만한 이별 선물이 어딨겠냐 말하고 나왔다.


 카드에는 또다른 지령이 있었다. 호텔 예약 인보이스와 함께.


 [케이크 들고 와. 내일 여기서 만나자. 바쁘단 핑계로 자꾸 신경 못 써서 미안해.]


 인보이스를 펼쳐 보고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체크인 날짜는 9월 10일.

 그리고 오늘은, 11월 1일. 지나도 한참이 지났다.




 오랜만에 그에게 연락해 이런 일을 했던 줄은 몰랐다며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때 서운하다고 할 때 한 마디라도 하지 그랬냐 물으니, 내가 택배를 받고도 이미 헤어질 마음으로 나타나지 않은 거라 생각했단다.


 "이전에 살던 집에 택배를 보냈는데 온 줄도 몰랐지."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잘못 보낸 줄도 몰랐단다. 보기보다 허당인 그의 성격이 고스란히 보이는 실수.


 수신지를 잘못 쓴 택배와 이미 기한이 지나버린 호텔 예약까지.

 나의 진짜 보물이었던 그를 향한 사랑도 함께 엇갈리고 만료되었다니 허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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