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시간 글을 쓰거나 읽지 않았다.
마지막 남긴 글 때문에 자주 내 글을 찾아주던 독자님 몇몇 분들이 염려와 응원이 담긴 메시지와 메일을 담아 주셨다. 그때마다 답장을 하고 싶었지만 기획안을 두들기는 것 외엔 키보드를 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해가 바뀌었다.
작년 브런치 결산을 보니 나름 '다작'했고, 독자 수도 내 기대보다 많이 늘었다.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해가 바뀌는 게 뭔가 대단한 일 같았는데, 점점 그런 기분이 안 난다. 코로나로 인해 시끌벅적한 연말 분위기와 모임이 줄어서인지, 아니면 점점 나이가 들어가며 별 일 아닌 것들이 늘어서인지 모르겠다.
복직하자마자 큰 프로젝트에 투입됐고, 마주한 유관부서 사람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돌아오더니 또 매일 야근이냐며 타박했다.
이사한 집엔 꽤 익숙해졌지만, 그 탓에 또 조금씩 지저분해진다. 처음 이사 와서 정리해 둔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고 싶어서 옷장이고 책상이고 가지런히 두고 매일 청소기를 밀었는데, 몇 달이 지나고 나니 집 상태가 '내 모습'이 되었다.
잠시 글과 멀어진 사이 몸에 타투가 총 열두 개로 늘었다. 1월 1일 1시에도 손목에 타투를 새겼고, 가장 친한 친구와 똑같은 나비를 손목에 새겼다.
외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수술 때문에 부산에 다시 내려갔다 왔다.
서울에 가서 수술을 받겠다는 둥, 수술을 받지 않고 그냥 살겠다는 둥, 오락가락하던 할아버지는 결국 부산에서 수술을 받았다. 실패 확률 10%. 35년생인 할아버지가 견디기에는 실패 확률이 너무 높아서 이 개복 수술을 권하지 않는다 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죽더라도 수술을 받겠다 우겼다.
수술 시간은 8시간 정도 걸릴 예정이며, 중환자실에 며칠을 계시게 될지 모른단 말에 감성적으로는 할아버지를 못 보게 될까 두려웠고, 이성적으로는 들어갈 수술비와 병원비, 간병인은 어떻게 될까 내심 외삼촌과 엄마 걱정을 했다.
'코로나 시국'이 된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정말 집 밖에 잘 나가지 않는 탓에 확진자와 접촉을 해본 일도, 바이러스가 지나간 장소에 간 적도 없었던 덕에 꽤 희귀종으로 지내고 있었다.
결국 할아버지 얼굴을 보고 싶어서, 병원에 들어가기 전 코를 찔렀다. 하나도 안 아프다더니,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하자 엄마는 그게 아프면 도대체 타투를 어떻게 받냐고 웃었다.
할아버지 수술 전날, 엄마와 또 술을 진탕 마셨다.
힘든 이야기나 아픈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그냥 나 어렸을 때 그런 일 있었던 거 기억나냐며 웃었다. 놀랍게도 엄마는 내가 어릴 적 부산에서 오토바이 뺑소니를 당했단 사실을 잊고 있었다! 괜히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고, 시답잖은 이야기만 하고 잤다.
다행히 할아버지 수술은 예상보다 일찍 끝났고, 할아버지는 중환자실로 옮겨진 지 꼭 하루 만에 자가 호흡을 시작해 바로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다. 입 밖에 내지 않은 수많은 걱정과 한숨이 쏙 들어가서, 1월에 다시 내려오겠다고 약속했다.
걱정했고 아파했던 일이 결국 시간이 지나며 흘러가고 아물고 있다. 모든 게 다 그렇다고 칭할 수는 없겠지만, 글 쓰며 풀고 나눈 감정을 떠나온 게 아쉬워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여러 작가와 함께 또 글 쓰기를 하고 있고, 잠자느라 미룬 시간을 다시 아껴보려 한다.
그간 많이 응원하며 기다려주신 독자님! 덕분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