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체 탈피하기
외국 생활을 나름 좀 한 탓인지, 성인이 되고 맡았던 번역 업무 때문인지 내 글에는 번역체가 많은 편이다. 대학 생활도 그렇고 주변에도 그런 비슷한 환경의 친구가 많았던지라, 나는 내가 '글 잘 쓴다'는 말에 취해 '내 문장이 어디가 이상한가?'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여러 사람의 글을 읽고 내 글을 퇴고하며 느낀 점이 있었다.
내 글에는 '-것'이 많다
내 글은 주어가 너무 뚜렷하다 (이미 이 예시에도 그렇듯)
내 글에는 '-의' 등 필요 없는 말이 많다
마찬가지로 '-들' 같은 복수형을 나타내는 말이 지나치게 많다
내게는 자연스러운 문장이 사실은 너무나 번역체다. 아마 이 글 안에도 누군가는 '이런 말은 순수 국문법에선 쓰지 않을 문장이다'라 짚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 내 글에는 '-것'이 많다
이건 'that'이나 'what' 등으로 나타내는 번역체에서 비롯된 듯싶다.
예를 들어,
"야근을 오랫동안 하는 것은 나를 괴롭히는 것이 되었다."
어떤 문장은 '것'으로 묶을 수밖에 없지만, 대부분 '것' 따위는 없어도 된다.
이를테면,
"나는 야근을 오래 해서 괴롭다." "야근을 오랫동안 하니 내가 괴롭다." "야근을 오랫동안 해 오니, 내가 괴로운 사람이 되었다."
등, 풀어 쓸 수 있는 말이 많다.
'것'을 빼도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2. 내 글은 '주어'가 너무 뚜렷하다
고치기 어려운 점이다. 내가 주어를 확실하게 쓰게 된 데에는 번역체도 있겠지만, 법무팀이나 다른 유관부서와 일하면서 주어를 뚜렷이 나타내지 않으면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글에는 굳이 영어처럼 항상 주어가 없어도 말이 완성되지만, 나는 이게 참 고치기 어렵다. 사실 예시로 들 만한 문장을 생각해내기 어려울 정도다. 이건 우리 독자님께서 나에게 '이 문장은 읽기 불편하다'는 지적을 해 주신다면, 다시금 곱씹어보고 싶은 점이다.
3. 내 글에는 '-의' 등 필요 없는 말이 많다
마찬가지로 of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의'는 국문법상 빼도 상관없는 경우가 많다.
나는 주로 글을 올리기 전 부산대학교 인공지능연구실과 (주)나라인포테크가 함께 만든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링크)를 이용하는데, 여기서 나에게 고쳐야 할 문장으로 '-의'가 굳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한국의 출생률은 나이지리아의 출생률 보다 낮다." 이 문장을,
"한국 출생률은 나이지리아 출생률 보다 낮다." 라 표현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도 이 쓸데없는 조사가 자꾸 붙어서, 글을 쓰면서 가장 신경 쓰는 지점이기도 하다.
4. 내 글에는 '-들' 같은 복수형을 나타내는 말이 지나치게 많다
이 문제도 번역체에서 비롯된 거로 볼 수 있다. "-s" 등으로 붙는 복수형 형태를 구분 짓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 다른 성격을 지닌다." 에서
"사람은 저마다 각자 다른 성격을 지닌다."고 바꾼다고 해도, 사람이라는 단어가 갖는 복수형 속성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더더기는 빼도 꽤 담백한 문장이 된다.
내가 쓴 글에서 손가락 하나를 자르는 심정으로 문장과 단어를 쳐내기란 '내 새끼' 같아서, 뭣 하나 빼기 어렵다.
최근 공동에세이를 기획해 주관하면서 다른 기성/신임 작가의 글을 읽고 검토하면서 나도 어떤 문장은 좀 더 정리되었으면 하고, 어떤 글은 부연설명을 덧붙였으면 싶기도 하다.
그런데 어쩌나! 내 글부터가 완벽하지 않은데.
다행히 전업 작가가 아닌지라 이런 글을 '싸지를 수 있다'라는 데 감사하며,
내일은 독자님의 눈과 마음이 좀 더 편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스스로 바란다.
+ 그래도 이 글 어디에도 '것' 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