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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Jul 26. 2021

If I Die Young

장미꽃 내음이 나는 향수를 좋아합니다

내가 죽게 되면 장미꽃 위에 눕혀 주세요


 이건 친구 M이 컬러링을 바꾸게 된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장미꽃 내음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20대 초반에 친구 M에게 전화를 걸면 The Band Perry의 <If I Die Young>이란 곡이 흘렀다.

나는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컬러링을 듣는 게 좋아서 시답잖은 일로도 전화를 자주 했다.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치 내 마음 같아서, 노래와 함께 잠겨 죽고 싶었다.


If I die young, bury me in satin
Lay me down on a bed of roses
Sink me in the river at dawn
Send me away with the words of a love song

제가 일찍 죽거든, 저를 새틴에 감싸 주세요.
그리고 장미꽃으로 덮인 침대에 눕혀 주세요.
새벽녘 강물에 저를 가라앉혀 사랑의 노랫말과 함께 보내주세요.

- The Band Perry, <If I Die Young>


 밴드의 선율이 깨끗하고 밝은 데 비해 가사가 음울하고, 보컬의 발성이 어찌나 좋은지 단어 하나하나가 귀에 박혔다.


 내가 먼저 떠나게 되면 머리가 하얗게 세기도 전에 아이를 묻은 우리 엄마를 비춰줄 수 있도록 주님에게 무지개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빈다.

 젊은 나이에 충분히 살았다며 가장 예쁠 때 장미꽃을 가득 채운 관에 눕는 것까지 서사가 완벽한 노래다.


 이 이야길 M에게 하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컬러링을 바꿔 버렸다.


 사실 최근에도 요절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다가 요절한다면 내 작품이 더 멋지게 완성되는 거 아니겠냐는 말에 선배 J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요절한 천재 반열에 오르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요. 에이미 와인하우스, 커트 코베인, 제임스 딘과 같이 적어도 20대 초중반에는 갔어야 해요. 근데 지금 죽으면 요절이 아니라 그냥 술도 많이 마시고 생활 습관이 안 좋아서 생긴 간 경화 같은 지병인 줄 알 걸요. 그러니 넣어 둬요.”




저기, 혹시 향수 어떤 거 쓰세요?



 나는 이 노래를 계기로 꽃 향기가, 특히 장미꽃 향이 더 우아하고 아름답게 느껴져서 향수를 찾았고, 그러다 향수를 모으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20대 초반에는 그때 그 나이 때 여대생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다는 안나수이 돌리걸, 패리스 힐튼 에어리스, 메이비베이비 같은 달콤하고 프루티 한 향을 뿌리고 다녔고, 조금 지나서는 디올 자도르 같은 살짝 어른스러운 느낌의 향수를 즐겨 썼다. 그러다 니치 향수를 접하게 되면서 조말론, 바이레도, 산타마리아 노벨라와 같이 헤어 나올 수 없는 면세 향수의 늪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로 향수를 좋아하느냐면 - 향수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은 무매력 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예전에는 돌체  가바나 라이트 블루나 샤넬 알뤼르 옴므 향을 정말 좋아했었다. 그래서 20 초반에는 샤넬 알뤼르 옴므를 쓰며 나보다 나이가  살은  많은 - 나랑 만나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하는 - 남자를  개월 정도 쫒아다닌 적도 있었다. 여전히  향수들을 좋아하지만, 마치  이상형이 20 때엔 송중기, 이태민에서 30대가  지금은 유연석, 이정재가  것처럼 나의 취향도 바뀌었다. (괜히 첨언하자면, 11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이상형은 윤계상이다. fan god 3기이자 ‘계상마누라 나다!)


 지하철이나 버스 옆자리에서 좋은 향이 나면 따라 내리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다. 다행히 존 바바토스 같은 향은 꽤 흔한 향이라 그 사람이 내리면 또 다른 존 바바토스가 탄다. 어떤 때에는 옆자리에서 풍기는 향기에 너무 기분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물어본 적도 몇 번 있었다.


“저기, 죄송한데… 혹시 무슨 향수 쓰세요? 향기가 너무 좋아서요. 안 알려주셔도 괜찮아요!”


 그렇게 알아낸 향수가 크리드 밀레지움 임페리얼과 바이레도 라 튤립이다.


 관건은 단순히 비싼 향수를 쓰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향이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 인 것 같다.

 지나가다 좋은 향이 났을 때 나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적이 없었고, 본인에게 어울리는 향기를 감고 다니는 사람 치고 섹시하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어울릴 것 같은 향수를 추천하는 것도 좋아한다. 꼭 비싼 게 아니어도 그 사람이 떠오르는 향. 그래서 의류 브랜드인 마시모두띠의 향수가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에게 향을 골라 주었다.



 장미꽃 향을 좋아하는 나는 지금 바이레도의 ‘로즈 오브 노 맨즈 랜드’와 ‘인플로레센스’를 섞어 쓴다.

나와 잘 어울리는지는 아직 누구에게도 평가를 못 받아봐서 모르겠지만, 내게서 좋은 향기가 난다는 이야기는 더러 듣는다. 무엇보다 내 살결에서 나는 향이 좋아서 내 손목에 코를 파묻고 잠을 청할 수 있다.  



 내가 나중에 죽고 나면… 국화꽃 대신 장미꽃을 놓아 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까?


<If I Die Young>의 한 구절을 생각하면 가능할 것 같다.

 “Funny when you’re dead how people start listening” (노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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