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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Jul 29. 2021

나는 도시괴담이 싫다

죽겠다고 해놓고 살려달라 빌었다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다 끌려갔대


 나는 도시괴담을 싫어한다.


 길을 가다 보따리를 양 손 가득 쥔 할머니를 도와드리려 짐을 나눠 들고 할머니를 따라 가는데 건장한 남자들이 나타나 끌고 갔다던지, 버스에서 사소한 것으로 시비를 거는 할아버지를 따라 내리려 하는 순간 그 뒤에 따라오던 봉고차를 보고 기사님이 황급히 문을 닫았다던지. 어린아이가 건네 준 보답의 음료가 사실은 수면제를 탄 것으로 그대로 기절해 인신매매단에게 끌려갔다 따위의 괴담.


 물론 아니 뗀 굴뚝에 연기 안 난다고, 예를 들어 강호순의 수법이 선한 얼굴 뒤에 살의를 감추고 버스를 기다리는 여자들을 낚아 살인을 저지른 일이나, 게임에서 만난 남자가 갑자기 돌변해 스토킹 하고 살해한 김태현 사건과 같이 괴담보다 더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 사회에서 이런 괴담이 나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종류의 도시괴담을 싫어하는 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정말 선량한 사람이 도움받을 수 있는 기회를 이런 괴담들이 빼앗아 간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말로 짐이 무거워서 도움이라도 구하고 싶은 할머니나, 복잡한 지하철에서 정말로 가방을 몽땅 잃어버려 전화를 빌리고 싶은 사람들은 각박한 ‘진짜 뉴스’와 ‘가짜 괴담’ 사이에서 도움을 구할 길을 잃어간다. 글쎄, 내 목숨이 아깝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굳이 도와주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나는 좋은 타깃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둘째로,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빨리 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다.

 자, 나는 언제든 죽을 각오를 하는 최중증 우울증 환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누가 나를 고통과 공포 속에 죽여줬으면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강 다리 끝에 내가 앉아 있어도, 내가 스스로 떨어지길 바라지 누군가 내 등을 번지점프 교관처럼 ‘하나, 둘, 셋!’하고 밀어버리길 바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횡단보도를 덮치는 덤프트럭에 치어 죽을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다른 사람이 칼을 내 목에 들이댄다면 살려달라고 해야 할지, ‘마침 죽고 싶던 차에 잘 걸렸다, 나 좀 제발 죽여주세요’라고 해야 할지 고민될 것 같다. 솔직히 그런 상황이 되면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말하겠지. 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포 속에 죽음을 맞는 건 내 마지막의 옵션에 없다.



차 안에서 연기가 나


 2년 전에 2천만 원 중반에 산 코나를 얼마 전 팔았다.

첫 차인만큼 애지중지 아꼈고, 운이 좋게도 전 직원 사다리 추첨을 통해 분기마다 사용권이 주어지는 사내 주차장에 차를 사자마자 세 번 연속 당첨되었기 때문에 매일 차를 끌고 다녔다. 몇 번의 작은 사고는 있었지만 꽉 막힌 서울, 그것도 강남에서의 운전도 거침없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운전 실력이 늘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1년 이상 지속되자, 애지중지 아끼는 나의 물 빠진 포터 색 코나는 아파트 주차장 한편에 박혀서 다달이 보험료와 자동차세만 잡아먹고 있었다.

 꼭 팔아야지 했던 건 아닌데, 중고차 딜러에게 시세를 알아보니 2천만 원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어차피 잘 타지도 않는 거, 보증이 살아 있어 값을 조금이라도 더 쳐 줄 때 얼른 팔아야지 싶어서 넘겼다.


 차가 있다가 없어지니 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서, 20만 킬로를 뛴 15년 된 프라이드를 엄마에게 50만 원을 주고 가져왔다. 엔진과 미션 오일을 점검하고 브레이크 패드를 교체하는 등 몇 가지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하니 꽤 힘 있고 잘 나가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엉덩이를 시원하게 해 주고, 스마트키로 버튼만 누르면 시동이 걸리고, 차선을 자동으로 맞춰 주고, 완벽한 후방카메라로 나의 주차를 돕던 코나와는 달리 이 프라이드는 ‘와, 그래도 열선 시트는 되네?’ 싶은 깡통 자동차였다. 덕분에 사이드미러를 확인하며 완벽히 주차할 수 있는 나로 거듭났다.


 운동하러 가려고 어느 때처럼 프라이드에 시동을 걸고 나왔다. 어둑한 저녁 시간이라 라이트를 켰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도는 데, 무언가가 타는 듯한 냄새가 났다.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는데 하얀 연기가 핸들 뒤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집에서 나온 지 딱 3분 만의 일이다.


 바로  E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 안에서 연기가 나.” 차 어디서 연기가 나느냐고 묻던 E는 당장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끄라고 했다.

나는 아파트 단지에서 바로 나와 ‘어린이 보호구역’ 앞 횡단보도에 있었는데 도대체 어디에 세우란 말인가! 이런 위급상황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다급히 유턴을 한 뒤 다시 우리 집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3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차 안에서 연기가 계속 새어 나오는 걸 보면서 돌아가는 길에 차가 터져버리면 어떡하지? 생각했다.

 그리고 내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와, 결국 내 인생은 이런 고물 프라이드 폭발로 마무리를 하게 되다니… 바로 전 날 찍은 바디 프로필 사진이 너무 잘 나왔다며 장난으로 B가 “너무 잘 나와서 나중에 영정사진 써도 되겠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정말 씨가 되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퇴사도 못하고 힘들게 사느니 이렇게 체지방 10%를 찍고 멋진 몸을 만들었을 때, 그러니까 손뼉 칠 때 떠나는 것도 꽤 근사 하단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 찰나에 죽어버리기엔 아직 내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남겨야 할 말도 많은데… 엄청나게 슬프지는 않았지만 분명 마음이 두려움에 쪼그라들어 있었다.


 다행히 무탈하게 주차장에 돌아왔다.

 연기가 났던 이유도 사실은 별 거 아니었다. 깜빡이 합선이었다.


 허무하게 내 인생이 끝날 뻔했는데, 결국 허무하게 실패했다. 그래서 하루를 더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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