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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Aug 04. 2021

살다 보니 정우성을 다 만나네

죽지 못할 이유가 자꾸 늘어요

온 세상이 너 죽지 말라고, 심지어 정우성까지 나타났어



 바닷가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빠질 용기가 생길 것 같아서 미포 끝자락에 자리를 잡고 혼자 앉아 있었다.

 파도가 넘치는 해운대 바다는 새까만 하늘과 연결되어 끝이 없어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렸고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나는 왜 죽고 싶은 감정이 드는지, 1년을 약을 먹어도 왜 나는 차도가 없는 것 같은 기분인지를 곱씹었다.

 그런데 해운대 바다는 내 생각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는 부적합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내가 휴직하는 한 달간 해운대에 숙소를 잡은 건 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죽음을 결심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고, 그러기에 뛰어들기 전에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서 적절한 타이밍을 찾기 위한 집중을 해야 하는데, 훼방꾼들이 너무 많다.

 

 저쪽 어귀에서는 불꽃을 터뜨리고 ‘불꽃놀이 하지 마세요’, ‘마스크 끼세요’, ‘취식 금지입니다’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터져 나온다.

 등 뒤로 오가는 남자들은 지나가는 여자들 뒤를 쫓으며 “저기요”하기 바쁘고, 연인들은 파도 위에서 “나 잡아 봐라”를 하는 중이다.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고 딱히 죽고 싶지도 않아져서 나간 지 10분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숙소에 가려 길을 건너는데 까만 벤 한 대가 ‘뿅’ 소리를 내며 차 문을 잠가서 깜짝 놀랐다.

 해운대에 있으니 온갖 좋은 차들, 새까만 선팅을 한 차들이 워낙 많아서 벤을 봤다고 연예인인가? 하고 촐싹댈 일도 없었다.


 너덜 너덜 걸어서 내가 묵는 숙소의 엘리베이터를 타러 복도에 진입했는데, 내 눈을 의심했다.

 말도 안 돼. 이럴 수가!

 정우성 배우님이 나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다고?


 잘못 본 거라 할 수가 없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100미터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 서울 패션위크 일을 하면서 수많은 연예인들을 보았는데 그때 김사랑 배우님을 보고 천사가 내려온 것 같아서 한번 놀라고, 오늘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싶었다.

 서울에 오래 살면서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심지어 지금 내 반경 2미터 안에 이 사람이 있다니!

 전설에 나오는 용을   마냥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꽃미남, 내 단짝 E도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미남이라던 그 사람!


 너무 신기해서 가슴이 쿵쾅댔지만, 알아본 척을 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불편하실 것 같아서 그냥 못 본 척했다.

 그리고 내리자마자 카톡방에 날렸다.


 “대박. 나 정우성 님이랑 같은 엘리베이터 탔어;”


 단짝 B에게 해운대는 자살하기엔 너무 집중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3분 전에 카톡을 보내 놓고 호들갑을 떠니 바로 전화가 왔다.

 

 “온 우주가 너 죽지 말란다. 어떻게 하면 정우성을 부산에서, 그리고 그 타이밍에 만나서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


 그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다 보니 정말 이런 일도 다 생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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