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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Jul 23. 2021

딱 90일만 더 살아 볼까

마지막 날을 정하려다 만난 책 한 권

실패하면 성공한 경우만큼 상처가 된다



 오늘로 회사로부터 휴직을 받아낸 지 꼭 한 달이 된다. 죽는 것보다 퇴사가 더 어려울 것 같아서 힘겹게 팀장님께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그 길로 바로 휴직을 받았다. 회사에서는 내 진단서로 병가 휴직을 인정해주지는 않았지만, 비타민이나 편지 같은 소소한 선물들과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나는 바로 부산의 한 레지던스 한 달을 예약했고, 부산에 와서는 매일 바다를 보며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있다.


 부산에 혼자 와 있으니 서울에 있을 때와는 다른 것들이 보였다.

 수평선 너머에는 한강 너머로 보이는 높은 빌딩들이 한 채도 보이지 않고 끝없이 하늘과 이어져 있었고, 내가 발 닿는 카페마다 아름다운 산과 바다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굳이 밖에 앉아서 그 기분을 온전히 누리겠다며 자리를 잡고 있다가 바람이 심하게 불어 자몽에이드가 넘어져 새로 산 옷에 다 쏟았을 때에도, 커플들이 부러워하는 풍경이 좋은 창가 자리에 혼자 자리를 잡고 글을 쓰다가 그대로 태양을 맞아 왼쪽 팔에 시계 자국이 타투처럼 하얗게 남아도 웃음이 터졌다.


 휴가철이 되니 친구들도 괜히 한 번 나를 다녀갔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을 것이고, 또 마침 부산을 잘 아는 내가 있으니 좋은 관광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아니, 사실은 불안정한 나를 위로해 주고 싶어서, 분명 어디 처박혀 코를 훌쩍거리며 눈물 흘릴 내 손을 잡아주고 싶어서 소중한 시간을 내어 준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서울에서도 보기 어려웠던 사람들을 여기서 만나기도 했다.


 완벽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하늘에 로맨틱 필터가  건지,  눈에 행복 필터를   씌운 건지, 광안대교 앞에서는 불꽃놀이가 터졌고  심장도 터질  같았다.


 사실 이 부산 생활이 끝나고 나면 나도 끝낼 생각을 했다. 가장 친한 친구 B에게도 너무 행복하고,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을 잔뜩 만났고, 이 이상 행복하긴 어려울 것 같아서 이제 미련이 없을 정도다, 그러니 정말 잘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당연하게도 B는 또 눈물이 터져서 나를 봐야겠다고 당장 주말에 만나자고 서울에서 내려온다고 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모두에게 - 특히 남은 사람들에게 큰 죄책감과 상처를 안긴다.

나도 내 절친한 친구 N이 떠났을 때 그런 배신감과 자책감, 우울감에 사로잡혔고 그때 한 번, 이런 짓은 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자살에 실패를 한 경우에는 여기에 더해 비난과 책임이 더 따른다.

 쉬어야겠다고 마음먹기 직전, 한 친구가 ‘그동안 고마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잠적해버렸다. 그 친구는 내 상태를 몰랐지만 나는 그 친구가 최근 굉장히 힘들고 우울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를 아는 친구들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결국 그건 다행히 한 차례의 소동으로 끝났다. 왜 그랬느냐는 말에 ‘그냥 정말 문득 고마워서 남겼을 뿐이야’라고 변명했다. 나도 해 본 짓이라서 무슨 뜻인지 솔직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친구를 탓하고 싶어 졌다.  마음을 무겁게   알면서도, 일단  하나 감당하기도 힘든 상황이라 나는  친구와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혼자 다짐했다. 그래서 향이 좋은 바디워시를 고심 끝에 골라서 선물했다.  나름의 이별 선물이었다.

 “향이 좋은 바디워시로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고, 하루의 루틴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더라. 우리 나중에 정말 괜찮아지면 그때 연락하자”


 그러니까 나는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잘못했다가는 상처를 주고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목을 메자니 동네 주민들의 집값 걱정에 짐이 될 것 같고, 열차에 뛰어드는 것은 기관사에게 씻지 못할 충격이 될 수 있다. 건물에서 뛰어내리자니 처참한 광경을 볼 지나가는 사람들이 안쓰러웠고, 물에 빠지자니 나를 못 찾으면 어쩌지 생각이 들었다.

약을 모았다가 한 번에 먹는 짓도 생각해봤는데 모아두면 당장 오늘 밤에 잠을 못 자고 내일이면 공황장애에 시달릴 것이다. 그리고 딱히 확실하지도 않다. 그냥 잠만 푹 자고 일어날 것 같다. 방법을 찾는 것도 너무 어렵다.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혼비의 < 90일만  살아볼까>라는 책이 나타났다.  그대로 그냥 눈앞에 “나타났다라고 표현하는  맞다.


<A Long Way Down>이라는 제목으로 2005 초판이 나왔고 한국에서는 2013 발행된 이후 새로 출간된 흔적이 없는  보면 정말 내가 만날 일이 없는 책이었다.


네 명의 각기 다른 환경과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런던의 한 자살 명소에서 12월 31일 우연히 모여들어 마주 앉게 되었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소중한 시간을 방해받았다는 핑계로 네 명이 일종의 ‘자살 동맹’을 맺고 죽을 날짜를 미뤄간다.


 그런데  과정에 나오는 감정들과 생각들이 지금의 나와 너무 같았고, 작가의 문체가 담담하면서도 코믹해서 읽는 내내 실소가 터졌다. 영국인 특유의 sarcastic 한 말투가 이 우울한 이야기를 우습게 그렸다.


 이를테면, 나는 자살하려고 사다리를 가져와 옥상에 올라앉아서 생각을 진중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본인도  사다리를 써서 올라가서 죽고 싶으니 언제쯤  예정인지, 뛰고 나면  사다리  빌려도 되는지 묻는 것이다. 갑자기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말을 거니 너무 놀라서 “떨어질 뻔했잖아요! 죽을 뻔했다고요!”라는 아이러니컬한 말을 하기도 하고,    집중이 깨지니 지금은 뛰기 싫어지기도 하고.

 본인도 죽으려 올라와 놓고 다른 사람의 자살을 막는다. 그렇게 동맹의 마지막 날짜는 자꾸만 이런저런 사건들로 밀린다.


 책이 나에게 ‘ 90년만  살아 보자 했다.  마음이 가득해서  눈물이  터졌다.



 안 해본 것들을 잔뜩 했다. 

 외할머니 돼지국밥만 먹어봐서 밖에서 돼지국밥을 사 먹어 본 적이 없었는데 해운대 시장에서 몇 년 만에 먹은 돼지국밥은 우리 할머니 것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훌륭했다.

 태닝 크림을 사서 바닷가에 누워 까맣게 살을 태웠고, 근 20년 만에 처음으로 부산 바다에 빠져 봤다.

 행복하다는 말이 부족해 황홀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지난 1년을 통틀어 처음으로 약을 먹지 않고 잠이  날이었다. (물론 다음  오후에 갑자기 찾아온 사소한 발작으로 약을 먹긴 했지만)


 감정이 넘쳐서 터질  같은 기분을 안고,  핑계로 나도 마지막 날짜를 미뤄야지 생각했다.


 엊그제  하늘이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핑크빛이어서. 폭염 뉴스와는 걸맞지 않게 바람이 너무 시원하고 펼쳐진 배경과 사람이 만화에서 방금 막 나온 것만 같아서. 다음에도    있지 않을까 작은 기대감도 생겼다.


어쩌면 새로운   해볼 수도 있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읽지도 않는 에세이를 쓰고 있으니 이번에는   연애 소설을 써볼까, 아주 평범하고 로맨틱한 걸로.


 책 한 권이, 닉 혼비가, 그리고 그 책을 만나게 해 준 당신이 나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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