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을 정하려다 만난 책 한 권
실패하면 성공한 경우만큼 상처가 된다
오늘로 회사로부터 휴직을 받아낸 지 꼭 한 달이 된다. 죽는 것보다 퇴사가 더 어려울 것 같아서 힘겹게 팀장님께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그 길로 바로 휴직을 받았다. 회사에서는 내 진단서로 병가 휴직을 인정해주지는 않았지만, 비타민이나 편지 같은 소소한 선물들과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나는 바로 부산의 한 레지던스 한 달을 예약했고, 부산에 와서는 매일 바다를 보며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있다.
부산에 혼자 와 있으니 서울에 있을 때와는 다른 것들이 보였다.
수평선 너머에는 한강 너머로 보이는 높은 빌딩들이 한 채도 보이지 않고 끝없이 하늘과 이어져 있었고, 내가 발 닿는 카페마다 아름다운 산과 바다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굳이 밖에 앉아서 그 기분을 온전히 누리겠다며 자리를 잡고 있다가 바람이 심하게 불어 자몽에이드가 넘어져 새로 산 옷에 다 쏟았을 때에도, 커플들이 부러워하는 풍경이 좋은 창가 자리에 혼자 자리를 잡고 글을 쓰다가 그대로 태양을 맞아 왼쪽 팔에 시계 자국이 타투처럼 하얗게 남아도 웃음이 터졌다.
휴가철이 되니 친구들도 괜히 한 번 나를 다녀갔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을 것이고, 또 마침 부산을 잘 아는 내가 있으니 좋은 관광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아니, 사실은 불안정한 나를 위로해 주고 싶어서, 분명 어디 처박혀 코를 훌쩍거리며 눈물 흘릴 내 손을 잡아주고 싶어서 소중한 시간을 내어 준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서울에서도 보기 어려웠던 사람들을 여기서 만나기도 했다.
완벽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하늘에 로맨틱 필터가 씐 건지, 내 눈에 행복 필터를 한 겹 씌운 건지, 광안대교 앞에서는 불꽃놀이가 터졌고 내 심장도 터질 것 같았다.
사실 이 부산 생활이 끝나고 나면 나도 끝낼 생각을 했다. 가장 친한 친구 B에게도 너무 행복하고,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을 잔뜩 만났고, 이 이상 행복하긴 어려울 것 같아서 이제 미련이 없을 정도다, 그러니 정말 잘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당연하게도 B는 또 눈물이 터져서 나를 봐야겠다고 당장 주말에 만나자고 서울에서 내려온다고 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모두에게 - 특히 남은 사람들에게 큰 죄책감과 상처를 안긴다.
나도 내 절친한 친구 N이 떠났을 때 그런 배신감과 자책감, 우울감에 사로잡혔고 그때 한 번, 이런 짓은 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자살에 실패를 한 경우에는 여기에 더해 비난과 책임이 더 따른다.
쉬어야겠다고 마음먹기 직전, 한 친구가 ‘그동안 고마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잠적해버렸다. 그 친구는 내 상태를 몰랐지만 나는 그 친구가 최근 굉장히 힘들고 우울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를 아는 친구들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결국 그건 다행히 한 차례의 소동으로 끝났다. 왜 그랬느냐는 말에 ‘그냥 정말 문득 고마워서 남겼을 뿐이야’라고 변명했다. 나도 해 본 짓이라서 무슨 뜻인지 솔직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친구를 탓하고 싶어 졌다. 더 마음을 무겁게 할 걸 알면서도, 일단 나 하나 감당하기도 힘든 상황이라 나는 그 친구와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혼자 다짐했다. 그래서 향이 좋은 바디워시를 고심 끝에 골라서 선물했다. 내 나름의 이별 선물이었다.
“향이 좋은 바디워시로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고, 하루의 루틴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더라. 우리 나중에 정말 괜찮아지면 그때 연락하자”
그러니까 나는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잘못했다가는 상처를 주고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목을 메자니 동네 주민들의 집값 걱정에 짐이 될 것 같고, 열차에 뛰어드는 것은 기관사에게 씻지 못할 충격이 될 수 있다. 건물에서 뛰어내리자니 처참한 광경을 볼 지나가는 사람들이 안쓰러웠고, 물에 빠지자니 나를 못 찾으면 어쩌지 생각이 들었다.
약을 모았다가 한 번에 먹는 짓도 생각해봤는데 모아두면 당장 오늘 밤에 잠을 못 자고 내일이면 공황장애에 시달릴 것이다. 그리고 딱히 확실하지도 않다. 그냥 잠만 푹 자고 일어날 것 같다. 방법을 찾는 것도 너무 어렵다.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닉 혼비의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라는 책이 나타났다. 말 그대로 그냥 눈앞에 “나타났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A Long Way Down>이라는 제목으로 2005년 초판이 나왔고 한국에서는 2013년 발행된 이후 새로 출간된 흔적이 없는 걸 보면 정말 내가 만날 일이 없는 책이었다.
네 명의 각기 다른 환경과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런던의 한 자살 명소에서 12월 31일 우연히 모여들어 마주 앉게 되었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소중한 시간을 방해받았다는 핑계로 네 명이 일종의 ‘자살 동맹’을 맺고 죽을 날짜를 미뤄간다.
그런데 그 과정에 나오는 감정들과 생각들이 지금의 나와 너무 같았고, 작가의 문체가 담담하면서도 코믹해서 읽는 내내 실소가 터졌다. 영국인 특유의 sarcastic 한 말투가 이 우울한 이야기를 우습게 그렸다.
이를테면, 나는 자살하려고 사다리를 가져와 옥상에 올라앉아서 생각을 진중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본인도 그 사다리를 써서 올라가서 죽고 싶으니 언제쯤 뛸 예정인지, 뛰고 나면 이 사다리 좀 빌려도 되는지 묻는 것이다. 갑자기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말을 거니 너무 놀라서 “떨어질 뻔했잖아요! 죽을 뻔했다고요!”라는 아이러니컬한 말을 하기도 하고, 한 번 이 집중이 깨지니 지금은 뛰기 싫어지기도 하고.
본인도 죽으려 올라와 놓고 다른 사람의 자살을 막는다. 그렇게 동맹의 마지막 날짜는 자꾸만 이런저런 사건들로 밀린다.
책이 나에게 ‘딱 90년만 더 살아 보자’고 했다. 그 마음이 가득해서 또 눈물이 펑 터졌다.
안 해본 것들을 잔뜩 했다.
외할머니 돼지국밥만 먹어봐서 밖에서 돼지국밥을 사 먹어 본 적이 없었는데 해운대 시장에서 몇 년 만에 먹은 돼지국밥은 우리 할머니 것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훌륭했다.
태닝 크림을 사서 바닷가에 누워 까맣게 살을 태웠고, 근 20년 만에 처음으로 부산 바다에 빠져 봤다.
행복하다는 말이 부족해 황홀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지난 1년을 통틀어 처음으로 약을 먹지 않고 잠이 든 날이었다. (물론 다음 날 오후에 갑자기 찾아온 사소한 발작으로 약을 먹긴 했지만)
감정이 넘쳐서 터질 것 같은 기분을 안고, 이 핑계로 나도 마지막 날짜를 미뤄야지 생각했다.
엊그제 본 하늘이 살면서 본 중 가장 아름다운 핑크빛이어서. 폭염 뉴스와는 걸맞지 않게 바람이 너무 시원하고 펼쳐진 배경과 사람이 만화에서 방금 막 나온 것만 같아서. 다음에도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기대감도 생겼다.
어쩌면 새로운 걸 또 해볼 수도 있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잘 읽지도 않는 에세이를 쓰고 있으니 이번에는 한 번 연애 소설을 써볼까, 아주 평범하고 로맨틱한 걸로.
책 한 권이, 닉 혼비가, 그리고 그 책을 만나게 해 준 당신이 나를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