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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Aug 18. 2021

비가 새는 자취방 천장 아래 살기

성수동 골목 안 오래된 주택

신발장 아래 대야의 정체


 스물일곱 살, 성수동 1가의 오래된 주택에서 첫 자취를 시작했다. 


 10월쯤 입주해서 추운 겨울을 견디고 여름 장마철이 되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다가 경악을 했다.

 현관에 있던 내가 아끼던 흰색 나이키 운동화가 물에 푹 젖어서 노랗게 되어 있었고, 현관은 그야말로 물난리가 나 있었다.


 신발장 위 천장에서 비가 샌 것이다.

 그제야 집 보러 왔을 때 왜 그 자리에 커다랗고 파란, 식당 앞 우산 꽂이로 쓸 법한 대야가 있었는지 알아챘다. 그렇다. 그 집 천장에서는 비가 샜다.



70년대 주택에서 자취하기


 먼저 자취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하자면, 우리 집은 일산이었고 취업한 회사는 잠실에 있었다. 지옥 같은 한여름 출퇴근 길에 완전히 지쳐 회사 근처의 원룸텔에 전화를 돌렸고, 바로 입주 가능한 원룸텔에 일단 짐을 다 싸들고 들어갔다.


 그 후, 회사와 적당히 거리가 있으면서 가격도 괜찮은 집을 알아보고 다녔다. 대부분 회사 사람들은 송파구에 포진해 원룸이나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는데, 나는 일단 회사와 너무 가까운 곳은 싫었고 뭐가 두려웠는지 대출을 받는 게 무서워서 내가 가진 돈 안에서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사이트를 뒤지고 부동산 발품을 팔아 개포동 주공아파트와 성수동 구옥 사이에서 고민했다. 개포동 주공아파트도 혼자 살기 괜찮았지만, 아무래도 차가 없어 대중교통 이용이 좀 불편할 것 같아서 회사까지 20분 만에, 그것도 버스 한 번만 타면 갈 수 있는 성수동 구옥을 선택했다.


 얼마나 오래된 주택인지 내부 몰딩이 흰색도 체리색도 아닌 옥색이다. 

 옥색 대문에 작은 마당이 있고 방 세 개가 있는 낡은 집이었다. 내가 들어오기 전엔 건국대에 다니는 여학생 셋이 살았다는데, 집을 보러 갔던 날 온 집이 어질러져 있어서 부동산 아저씨도 나도 적잖이 놀랐다.

 어차피 나는 혼자 살 거고, 가끔 동생이 오면 재울 걸 생각하며 깨끗이 치워야지 생각하고 도배와 장판을 새로 했고 문짝과 몰딩에 내가 직접 페인트 칠을 했다.



아가씨, 어느 집이나 물은 새.


 집주인에게 천장에서 비가 새서 온 집이 난리가 났고, 신발까지 다 버렸다고 말했다.

 7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집주인은 나더러 "아가씨, 어느 집이나 물이 새."라고 하기에 "저는 단 한 번도 비 새는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데요?"하고 받아쳤다.


 며칠 뒤, 집주인이 직접 지붕을 보러 오겠다며 성수동에 왔고 내 앞에서 계속 투덜거렸다. 본인이 여기 말고도 성북구와 노원구에 집이 두 채씩 있는데, 그 집 입주자들은 아무 말도 없는데 나만 비가 샌다고 따진다며 집 가진 게 죄라 했다.

 "에이, 집 없어서 얹혀사는 제가 죄인이죠."

 재수 없어서 한마디도 안 지고 대꾸하는 나에게 대뜸 실리콘 건을 쥐어준다.


 "아가씨, 이 뒤로 해서 계단 올라가면 지붕 위에 올라갈 수 있어. 새는 곳에 이걸로 막으면 돼."


 황당해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자, "내가 이 몸으로 할 수는 없잖아." 한다.


 스물일곱 인생 처음으로 실리콘 건을 들고 슬레이트 지붕 위로 올라갔다.

 이미 비가 새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있었던 것이... 박스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입주할 때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지 뭐, 하며 실리콘 건을 열심히 눌러 짰다.


 그리고 며칠 뒤, 장맛비가 내리던 날부터 신발장뿐만 아니라 거실 한가운데에서도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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