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잘못이 아닌데 왜 그랬을까
알아서 할게. 그냥 둬.
부모님 집에 오면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나는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동안 엄마는 분주하게 음식을 만든다. 내가 내 집에 있을 때엔 다 스스로 하는 일을 괜히 엄마 집에 오면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오랜만에 일주일 넘게 엄마 집에 머물러 있었다.
밖에서 맥주 마시고 들어와서 괜히 엄마 옆에 누워서 엄마 등을 끌어안고 울었다.
"엄마, 내가 이런 딸이라서 미안해."
엄마는 뭐가 미안하냐며, 우리 딸이 있어서 행복하다며 등을 돌려 가슴으로 나를 안아준다. 나는 엄마 품에 안겨서 엄마 티셔츠를 내 눈물로 다 적셨다. 눈물만 적셔 놨음 다행인데 사실 콧물과 침도 범벅이 되어 엄마는 내 얼굴이 그대로 새겨진 티셔츠를 보며 한바탕 웃고 셔츠를 갈아입었다.
어쨌든 집을 빨리 다시 구해서 독립할 생각으로 낮에는 차를 끌고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녔다. 주차가 가능해야 하고 회사에서도 멀지 않아야 했다. 부동산 발품을 팔고 자취 중인 주변 친구들에게도 동네 물건들을 알아봐 달라 했다. 서울 집값은 말 그대로 미쳤다. 내가 알아보는 동네가 비싼 탓도 있겠지만, 여하튼 원룸 월세가 적어도 80만 원 이상은 줘야 집에 누워 있어도 내가 '집'에 있구나 싶겠더라.
오래된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갈까 생각했다가 주차 대란이 싫어서 포기했고, 빌라 원룸이나 투룸에 들어갈까 해서 알아보는데 경찰인 친구가 웬만하면 보안 좋은 동네 오피스텔로 들어가란다. 사실 월급이 또래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나름 나쁘지 않은 편이고, 나 혼자 사는데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아서 그냥 '플렉스'해 버렸다. 다음 주부터 나는 다달이 150만 원을 주거 비용으로만 그대로 빠지는 삶을 살게 된다.
아빠는 나가지 말고 같이 일산 집에서 살잔다. 그건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하다. 나이 서른이 훌쩍 넘어 캥거루 생활을 하고 싶지도 않고, 회사까지 너무 멀어서 싫다는 핑계를 댔다. 그랬더니 온 가족이 우리 회사 근교로 이사를 가잔다. 됐다고, 나 이 동네 너무 좋아서 가끔 와야 하니까 이사할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눌러앉으라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나는 지금 잠깐이나마 부모님과 사는 게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아도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무조건 나갈 거라 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이사를 한다고 하자 엄마는 내심 서운한 눈으로 뭐하러 그렇게 급하게 나가냐고 했다.
"알아서 할게! 그냥 둬!"
마음에도 없는 짜증을 엄마에게 풀었다. 나도 내가 이렇게 된 게 스스로에게 짜증 나는데 엄마가 걱정해주는 말에 괜히 버럭 했다.
엄마가 나에게 집이나 돈, 직장 이야기를 하면 짜증이 그냥 난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대답하기도 싫고 그냥 짜증이 난다. 그래 놓고 한번 꽥! 하고는 돌아서서 바로 후회한다. 오늘도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 엄마 때문이 아니라 아빠 눈치가 보여서 빨리 나가려는 거야, 해 놨다. 아빠는 아무 말도 안 하는데 그냥 아빠 눈치가 보여서. 아무 말도 안 해서 눈치가 보여.
엄마는 가만히 안아주고 다 괜찮다고, 너 마음 편한 게 가장 우선이라 했다.
난 정말 불효녀가 틀림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