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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Aug 24. 2021

뚝도시장 앞에 살기

성수동 2가 뚝도시장

3,000원짜리 콩나물국밥


 2016년에  70년대 성수동 구옥에 이사 오기 전까지 나는 서울에 뚝도시장이 있는 줄도 몰랐다.

 내 친구들도 내가 이 동네로 이사를 오고 난 후 자랑스러운 우리 동네의 아이콘으로 뚝도시장을 소개하면서 성수동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성수동 이마트 본사에서 영동대교 북단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오른편에 뚝도시장이 펼쳐진다.

 시장에서 무슨 물건을 사거나 한 적은 없지만, 그 안의 맛집과 술집들은 다 가봤다.


 최근엔 가본 적이 없어 물가를  모르겠지만, 2016~2018 당시 시장  식당에서 파는 소주가 3,000원이었다. 서울에서 소주  병에 3,000 하는 곳은 찾기 어려워졌을 때였고, 강남에 나가면 소주  병에 5~6,000원씩 받는 곳도 있었단  감안하면, 10  대학교 신입생  학교  물가였다.


 코다리찜, 육회, 곱창전골, 순댓국 등 다양한 맛집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많이 간 곳은 콩나물 국밥을 파는 집이었다.

 뜨끈한 콩나물 국밥이 3,000원이었고 여기에 3,000원을 추가하면 숯불에 구운 돼지갈비 한 접시를 줬다. 콩나물 국밥 말고도 국수나 콩나물 비빔밥도 3,000원~4,000원 사이 가격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고, 감자탕 하나면 두 사람이 소주 한 병 뚝딱 하기 좋다.


 밤에는 감자탕과 매운 족발에 소주를 마셨고, 아침이 되면 콩나물 국밥으로 해장하러 갔다.



 이마트보다 두꺼비 마트


 사거리에는 '두꺼비 마트'라는 식자재 마트가 있었다.

 식당을 하는 사장님을 위해 도매가격으로 파는 곳이었는데, 나는 이곳을 이마트보다 더 자주 갔다.

 두꺼비 마트에는 온갖 냉동, 냉장 식품들이 있었고 과일 할인 시간에 가면 <쇼미 더 머니> 부럽지 않은 아저씨의 랩 실력도 들을 수 있다.


 나는 거기서 주로 레토르트 식품들이나 맥주를 샀고, 밥은 거의 나가서 먹다 보니 이사 올 때 샀던 햇반 한 박스를 2년 뒤 떠날 때까지 다 먹지 못했다.



시장을 지나치는 고급 외제차


 성수역 3번 출구 아래 성수동 2가 쪽은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 옛날 성수동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편이다.

 최근에는 인스타 감성의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내가 그곳에 살 때엔 '대림창고'라는 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가 인기였다. 집 바로 근처에 있는데도 나는 그곳엔 딱 한 번 가봤다.


 뚝도시장 끝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자전거와 사람이 바글바글한 좁은 길을 지나치면 한강이 내 발아래 펼쳐진다는 그 유명한 고급 아파트, '트리마제'가 있다.

 비가 새는 슬레이트 지붕을 갖춘 구옥과 번쩍이는 자태를 뽐내는 트리마제와는 거리가 1km도 채 되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나와 이 길을 따라 10분 정도 지나면 내가 살던 성수동 2가와는 다른, 개발된 성수동이 보인다.

 덕분에 우리 집 앞 골목에는 롤스로이스, 페라리, 포르셰처럼 기시감이 느껴지는 고급 외제차들이 줄지어 달리고 있었다.



단골 식당이 망했다


 바 형태의 테이블이 ㄷ자로 설치되어 있고, 그 가운데에는 큰 철판이 있었다.

 일본식 이자카야 느낌의 인테리어로 벚꽃이 있었고 나무로 된 벽을 갖춘 곳이었다.

 

 주인아저씨는 오리고기, 삼겹살, 목살을 부지런히 볶다가 고기가 다 익을 무렵이면 숙주나물을 볶아 올려 주었다.

   당 7,000원만 내면 철판구이를 무제한으로 맛볼  있는 식당이었다.


 <노다지 철판구이>라는 이 식당은 내가 성수동을 떠나고 얼마 뒤 없어졌다.

 몰래 사내연애를 하던 커플은 나에게 그 자리에서 본인들의 연애 소식을 고백했었고, 나도 좋아하는 사람을 데리고 와 옆자리에 앉혔던 곳이었다.


 한 번도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을 정도로 가성비가 뛰어나고 맛있었는데, 아마도 치솟는 성수동 부동산과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탓인지 문을 닫고 말았다.


 10년 전에 성수동이 이렇게 성장할 줄 알았다면 이 동네에 집이나 땅을 사 뒀어야 했는데!

 이런 멍청한 생각을 또 하고, 성수동 2가를 지날 때면 또 업종이 바뀐 가게 위치를 알아채거나 프랜차이즈가 들어선 걸 보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성수동 자취 생활의 흔적이 하나 둘 없어지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다.




 얼마 전, 성수동으로 다시 들어갈까 싶어 부동산을 다녔다.

 27살 사회 초년생일 때와 달리 나는 어느 정도 돈도 벌고 있고, 차도 끌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주차가 어려운 성수동은 자꾸만 순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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