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질 수 없다면 하지 말 것
얘들아, 아깽이 함부로 만지면 안 돼
아침에 일어나 식빵을 사러 빵집에 가는 중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내지는 중학생처럼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빙 둘러앉아 있길래 뭐가 그리 재미있나 싶어 슬쩍 보니 태어난 지 1~2주 정도 되어 보이는 아기 고양이가 삐-삐- 하고 울고 있었다.
고양이를 보니 깨끗하고 건강해 보이는 게 어미가 잘 보살펴주고 있는, 사랑받는 예쁜 아깽이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쪼그려 앉아 고양이 사진을 찍고 있길래, 나도 옆에서 살짝 구경하다 혹시나 싶어 말했다.
"아기 너무 예쁘다. 그래도 만지면 안 돼요. 아기 고양이가 사람 손을 타면 엄마가 다시 보살펴주지 않을 수 있어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아이가 결국 아기 고양이를 들쳐 안아버렸다.
그리고는 아기가 예뻐서 집에 데려가겠다고 했다.
부모님 의사를 묻지도 않고 그대로 데리고 갔다가는 분명 다시 아기가 이 아파트 단지 도로 위로 돌아올 테고, 그땐 어미가 아기를 보살펴 주지도 않을 텐데.
학생 본인은 자신이 아기 고양이를 구조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후 뒷감당에 대한 책임은 전혀 없는 행동이었다.
"부모님께 전화드렸니? 아기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고 그렇게 안았으면 이제 책임을 져야 해.
이제 사람 손을 탔으니 어미가 데리러 오지 않을 거야. 병원 데려가서 검사받고, 앞으로 네가 키우거나 임시보호를 하며 입양할 사람을 알아봐야 할 거야.
그렇게 하지 않고 다시 여기 데려다 두면 구조해 준 보람도 없이 아기 혼자 이렇게 버려져 있다 죽을 수도 있어."
나긋한 말투로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약간 화가 난 듯 말했다.
조금 겁을 먹은 듯한 학생은 말없이 분리수거장에서 택배 박스 하나를 꺼내 고양이를 담아 들고 갔다.
학생은 좋은 마음으로 그랬을 텐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말한 것 같아서 돌아서는 길에 마음이 좀 무겁고 미안했다.
네가 그런 게 아닌데 왜 네가 책임지려고 해?
한 시간쯤 뒤, 차를 몰고 카페에 가려고 주차장에 가는데 역시,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주차장 바닥 상자 안에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친한 동료에게 전화해 아기 고양이는 어떻게 하면 좋냐고 하니 역시나, 사람 손을 탔다면 그 길로 동물병원 가서 검진받고 데려다 키워야 한단다.
"내가 그런 게 아니고, 동네 애들이 냥줍 하려다 집에서 반대했는지, 내가 눈치를 줘서 데리고 가는 척한 건지. 아무튼 이미 사람 손은 탔어. 내가 그런 건 아냐."
눈에 밟혀서 한참을 그 앞에 앉아 있었는데 그 동료가 말했다.
"죄책감 갖지 마. 네가 그런 것도 아니면서 왜 떠안으려 하고 책임지려고 해. 그럴 필요 없어."
엄마는 내가 혼낸 그 학생들이 이제는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는 걸 배웠을 거라고, 너무 거기에 마음 쏟지 말라고 했지만 그 친구들이 깨우친 교훈 때문에 고양이 한 마리가 생명을 잃게 생겼다.
다행히 근처에 사는 친구 하나가 고양이를 키운 적도 있고 임시보호도 짧게는 가능하다 했고, 태어난 지 정말 얼마 안 된 아이라 입양이 쉬울 것 같다해서 동물병원에 갔다가 친구 집에 맡겼다.
그렇지 않아도 집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이 있어 그분에게 아깽이를 보내기로 하고, 나는 그 뒤로는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내내 그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나는 내 일도 아니면서 왜 그 학생들에게 화를 냈을까?
그 고양이가 나 같아서? - 에이, 그런 심오한 이야긴 아냐.
버려질 고양이가 너무 가여워서? - 물론, 그건 맞는 말.
만지지 말라는 내 말을 학생이 듣지 않아서? - 그 친구가 내 딸도 아니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도 아닌데.
무책임한 행동에 당황해서? - 그럴지도.
그러니까, 아이들이 거기에 모여 있고 아기 고양이가 있다는 걸 몰랐다면 내가 화가 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굳이 학생들에게 화를 낼 것도 아니었다. 그냥 몰랐으면 없었을 일이다.
만지지 않았다면 그 학생은 죄책감을 느낄 일이 없었을 테고, 내가 보지 못했다면 느끼지 않았을 책임감이다.
그 학생도 아마 오늘 밤 잠 못 이루겠지.
이상한 오지랖 넓은 이모같은 사람 하나 때문에 죄책감을 선물 받게 되었으니.
그리고 다시는 길에 있는 아기 고양이를 귀엽다고 함부로 만지지도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