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화가 난 엄마
할아버지가 아파트 현관에 쓰러져 계세요
비가 주룩주룩 오던 날, 엄마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엄마는 이모와 백화점에 갔다 커피 마시는 중이었는데, 별안간 온 전화 한 통에 온 집안이 난리가 났다.
"안녕하세요, 저 605호 사는 사람인데요. 현관에 할아버지가 쓰러져 계셔서 전화드렸어요. 일단 119는 불렀고요, 어서 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아빠는 파킨슨을 앓고 있어 거동이 불편해서 항상 내가 사준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최근에는 여러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아 "이러다 나 쓰러지겠다." 소리를 간간히 하고 있었다.
엄마는 혼비백산해서 이모와 함께 집으로 향했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자 구급대원이 전화를 받았다.
"빗길에 미끄러져 넘어지신 모양이에요. 외상은 특별히 없어 보이셔서 어느 병원으로 이송해드릴지 여쭈려고 하는데, 괜찮으시다고 댁으로 들어가신다네요. 일단 댁에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집에 도착해보니 아빠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다행히 조금 어지러운 것 말고는 괜찮다고 하셨다.
엄마는 경비아저씨와 605호 사시는 분께 멜론과 망고 같은 과일을 사다가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런데 605호 문이 열리자 반갑게 인사하던 신고자분은 다름 아닌 11살 꼬마였다.
전화 통화만 해서 목소리로는 초등학생인 줄 몰랐는데, 그 사람이 어린아이였다는 걸 알고 엄마는 또 고마우면서도 미안해했다.
"어머, 네가 신고해 준 거니? 정말 너무 고맙다... 정말 큰 일을 해 주었어. 너인 줄 알았으면 이런 걸 사 오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자 그 아이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 멜론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런 선물 안 주셔도 되는걸요."
소리가 들리자 집 안에서 방문이 열리고 나온 할머니가 애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라며 많이 놀라셨겠다고, 아저씨는 괜찮으시냐 물어서 다행히 정말 괜찮다고 인사드리고 다시 집으로 올라왔다.
집에 들어오자 아빠는 아이스크림 콘을 물고 TV 앞에 앉아 있었다. 냉장고에는 새로 사 온 아이스크림이 가득 들어있었다.
"어쩌다가 다쳤어?"
"아이스크림 사고 오는 길이었어. 우산도 들고 아이스크림도 사 와야 하니까 지팡이를 안 갖고 나갔지."
엄마는 그날 백화점에서 5만 원짜리 신발을 살까 말까 하다가 그냥 안 사고 돌아왔는데, 그깟 아이스크림 한 봉지 사겠다고 나갔다가 넘어진 아빠 때문에 10만 원어치 과일을 사고 감사 인사를 하고 돌아온 길이었다. 그러니 한숨과 함께 화가 치밀어 올랐다 했다. 그리고는 나와서 나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깟 아이스크림 한 봉지 산다고 지금 몇 사람이 놀란 거야, 도대체!"
"진짜 엄청 드시고 싶으셨나 보다. 다음부턴 그냥 나한테 전화하라고 해. 요새 배달 다 해줘. 내가 아이스크림 원 없이 드시게 한 박스 보낼게."
그리고 엄마가 집에 다시 들어갔을 때, 집 현관문 앞에 붙은 종이 한 장을 보고 또 박장대소하다가 눈물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