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3년간 경험한 단독주택 생활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단독주택을 선택했고 이곳으로 이사 온 지 3년이 훌쩍 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30대 후반이 되는 동안 한 곳에서 3년 넘게 살았던 적은 상당히 드물다. 적어도 내가 기억이 있고부터는 이 집이 처음인 것 같다. 그동안 코로나가 왔다가 갔고, 아이는 유치원을 마치고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내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나는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근에 있는 산 때문인지 집에 있는 정원 때문인지 우리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 계절의 변화를 크게 느끼고 있다. 정원에 있는 나무에 이름 모를 새가 둥지를 틀기도 했고 외부 계단 아래 생긴 벌집을 제거하느라 애를 쓰기도 했다. 그간 브런치에 올렸던 글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이번 글은 단독주택 살이 3년에 대한 총평을 써보려 한다.
이전에 설명했던 것처럼 우리는 이민보다는 서울을 선택했다. 서울에서도 충분히 이민 간 것처럼 만족하며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외국에서 살며 좋았던 것들이 사실 한국에서도 가능한 것이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거기다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고 우리가 외국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이만한 대우를 받기는 어려웠을 것 같았다. 도망쳐서 이민 갈 정도로 한국에서의 상황이 안 좋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에는 엄연히 주류 문화가 있고 이는 사회에서 물리적으로 벗어나지 않으면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어렵게 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는데 단독주택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가족 중 누군가가 불만이 있다면 나 역시 만족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다행스럽게도 아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들은 현재의 삶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아내는 아파트에 살 때 겪었던 층간소음이나 옆집에서 생선 굽는 냄새, 그리고 담배냄새가 안 나는 것만으로도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단독주택으로 이사할 무렵에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간 이후로 여유 시간이 늘어서인지 짜증이 많이 줄었다. 아이가 학교에 갔을 때 피트니스 센터도 나가고 피아노도 꾸준히 배우고 있다. 아내는 원래 책을 '사는'것을 좋아하면서 '읽는' 일은 드물었는데, 요즘에는 책을 읽는 일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아내는 자유시간이 많아지니 더 피곤해하는 눈치다.
초등학생 아들은 사실 아파트에 살 때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때는 너무 어리기도 했고, 이사를 너무 자주 다녀서 살던 집에 정 붙이지 못하게 한 내 탓이 크다. 그런 아들이 이곳에 만족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우리 집과 이 동네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크다. 요즘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좀 덜하지만, 날씨가 좋은 날이면 가족끼리 집 주변을 자주 걸어 다닌다. 북악산에도 올라가고 근처에 있는 놀이터와 공원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이는 우리가 북유럽에서 살 때만큼이나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한국식 사교육은 받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하루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대치동 아이들에게서 흔하게 목격된다는 불안감이나 초조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직장병행으로 박사과정을 졸업하기 위해 서재나 우리 집 정원 옆에 있는 작은 별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직장도 박사과정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 어느 하나 쉬운 것은 없었다. 그래도 내가 선택한 일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서 학위논문 제출을 힘겹게 완료하였다. 아파트에 살 때는 아이가 노는 소리나 TV 소리 때문에 학업이나 업무에 집중도가 많이 떨어졌는데 2층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오면서 업무 효율이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 뒤돌아보면, 아파트에 살 때, 별일 아닌 일에도 예민하게 굴었던 것 같아서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전업주부인 아내와 어린 아들, 그리고 재택근무를 하는 나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특히 많아서 '편리한' 아파트보다는 '편안한' 단독주택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굉장히 만족스럽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좋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몇 차례 언급했던 것처럼, 여름철 정원관리가 상당히 힘들다. 조그만 크기의 정원임에도 늘어가는 잡초와 지칠 줄 모르고 뻗어 가는 나뭇가지가 나를 힘들게 한다. 나 말고는 아무도 신경을 안 쓰기 때문에 잡초가 자라날수록 부담이 커진다. 조금이나마 수고를 줄이고자 정원에 있는 잔디를 없애려고 고민 중이다. 그리고 초반에 리모델링 업체의 실수로 옥상 누수가 있었다. 이사 온 해 여름에 엄청난 장대비가 연신 내릴 때 누수가 있었고 업체에서 보수를 진행해서 그 이후로는 비가 샌 적이 없지만, 비가 많이 오면 혹시나 누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서 비가 올 때 집에 아무도 없으면 불안한 마음이 커진다. 그리고 외부 페인트나 옥상방수는 시간이 지나면 보수가 필요하므로 관리비용 증가가 커진다고 하는데 아직 그 부분은 겪어보지 못해서 신발에 들어간 작은 돌멩이처럼 마음을 불편케 한다.
그동안 단독주택에 살면서 가족이 대체로 만족해하고 나도 편안한 마음이 커서 적어도 현재로서는 아파트로 이사 갈 마음이 없다. 가더라도 더 좋은 단독주택에 가고 싶은 마음이다. 서울에서 인구밀도가 유난히 낮은 지역이라 그런지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도 적어서 외국에 살 때 느낌이 난다. 그런 점에서 처음 계획했었던 서울로의 이민은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