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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카야자 Jan 24. 2024

프리폴(Free fall)

자유로운 낙하. 프리다이버의 비행.


프리폴(Freefall)은 프리다이빙의 기술이다.

중성부력 구간보다 깊은 수심에서 음성부력이 발생하면

온몸을 유선형으로 만들어 힘을 빼고 말 그대로 자유롭게(free) 낙하(fall)하는,

그야말로 프리다이빙의 꽃.


내가 프리폴을 좋아하는 이유 중 첫 번째는 이 단어가 가지는 역설의 묘미다.

프리폴. 자유로운 낙하. 


우리 삶에서 '낙하'는 물리적으로든 은유적으로든 주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띤다.

중력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은 아무런 장치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땅에서 1m를 뛰어오르는 것도 힘들다. (마이클 조던의 서전트 점프가 약 1m다.) 

때문에 늘 '상승'은 인간의 본능적인 목표이고, '높이'는 곧 권력이자 힘이다. 

그러므로 '낙하' 또는 '추락'은 언제나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반면 프리다이빙에서 낙하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프리다이빙에서 우리의 목표는 

상승이 아니라 하강이다. 높이가 아니라 깊이다.  

고로 낙하는 곧 다이버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의 비행이다. 

목적지로의 자유로운 낙하. 짜릿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말장난을 마치고 프리폴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프리다이빙에는 여러 가지 동작과 기술이 있지만

프리폴이 프리다이빙의 꽃으로 불리는 것은

프리다이빙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동작이자 기술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음성부력 구간에서 프리폴을 시작하고 나면 

다이버는 목표 수심으로 가기 위해 더 이상 어떤 동작도 취할 필요가 없다.

아니, 오히려 어떠한 동작이든 취하는 것은 원활한 다이빙을 방해한다. 

심지어는 어떤 생각도.


프리다이빙 중에는 산소를 아끼는 것, 

즉 산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긴장과 불안을 떨치는 것, 

나아가 모든 잡념을 비우고 물속을 비행하는 '나'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이빙 중 산소 소모를 가장 많이 하는 신체 기관은 어딜까? 팔? 다리? 심장? 

아니, 바로 '뇌'다.


몸의 힘과 머릿속을 온전히 비워내는 것.


짐짓 철학적이기까지 해 보이는 이 행위가 나는 

프리다이빙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프리폴(Free fall)



물론 프리폴을 타는 단계까지의 훈련은 지난하다.

프리다이빙에서 요구하는 거의 모든 스킬을 갖춰야 한다. 

수면을 뚫고 입수하는 깔끔한 덕다이빙(duck diving)과 

양성부력 구간을 최소한의 에너지로 역행할 효율적인 피닝(fining),

깊은 수심을 다녀올 동안 숨을 참을 수 있는 스태틱(static apnea) 실력, 

편안한 다이빙을 위한 원활한 프렌젤(frenzel) 이퀄라이징, 

추가적으로 더 긴 프리폴을 위한 마우스필(mouth fill) 이퀄라이징.


이 모든 것을 익히고

익힘을 너머 체화해 큰 에너지와 신경을 쓰지 않고도 수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프리폴은 free한 fall이 된다. 


내가 속한 프리다이빙 단체인 AIDA의 레벨과정에서 수심 요건은 40m가 최대다.

(40m 이상 내려가면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AIDA 최고 레벨의 수심 충족 요건이 40m라는 뜻이다.)

통상 20m 정도부터 프리폴을 탄다고 봤을 때, 

AIDA의 강사 레벨이 되더라도 자유롭게 낙하할 수 있는 구간은 고작 20m 내외이다. 

(물론 더 깊은 수심으로 가기 위한 훈련을 끊임없이 하고 그 몇 배의 수심을 가는 다이버들도 있다)

효율적인 자세로 1m/s정도의 속도를 낸다면, 길어봐야 20초가 안 되는 시간이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음성부력이 강해져 속도는 더 붙는다.)


물론 무호흡 상태에서의 물속은 

1초, 1초가 지상에서의 시간과는 다르게 흐르지만

프리폴은 어쨌든 실제로 짧은 시간이다.

고작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잡념과 쓸데없는 몸과 마음의 긴장이 찾아드는지.


'내가 진짜 그 수심까지 갈 수 있을까?'
'아직 멀었나? 몇 미터쯤 남았지?'
'프리폴 속도가 영 안나는 것 같은데 언제 다 가지'
'다이빙 컴퓨터 알림이 울렸나? 왜 안 울리지? 내가 못 들은 건가?'
'벌써 숨이 모자란 것 같은데 돌아서 올라갈 수 있을까?'


잡념은 잡념을 낳는다.

그렇게 꼬리를 무는 잡념은 몸의 긴장으로 이어지고

몸의 긴장은 산소를 더 빠르게 소진시킬 뿐 아니라 

원활한 이퀄라이징을 방해한다. 


 

CWT 상승


그렇기 때문에 프리폴은 그 행위 자체가 프리다이빙의 본질과 맞닿아있다. 

긴장을 없애고 생각을 덜어내는 '비움'의 미학. 


일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곳에 힘을 주고 사는 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러니 부러 힘을 빼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도.


그래서 나는 프리다이빙에 무한한 매력을 느낀다.

일상에서 할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는

몸과 마음을 비워내고 자유로이 낙하하는 것. 

낙하함으로써 도달하고자 하는 곳에 가까워지는 것.


프리폴(free 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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