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주의
Saint Jean Pied de Port - Roncesvalles - Zubiri - Pamplona - Ciraqui(34.5km)
= 103.3km
죽겄다 죽겄어. 처음으로 까미노 ‘30-30 클럽’을 달성한 날이다. 그런 말은 없는데 내가 그냥 방금 만들었다. 30도 이상의 날씨에서 30km 이상 걸은 날이라는 뜻. 케이틀린이 아니면 정말 못 걸었을 거다. 목적지에 거의 다 와갈 때쯤 “너 없이 나 혼자 걸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야”하고 정다운 말을 건넸는데 그녀는 앞서가며 ”왜?“ 했다. 왜는 뭔 왜야. 너 T야?
팜플로나에서 빠져나오는 중에 길만 세 번 잃었다. 오해하지 마시라, 당연히 어플로 지도 보면서 다닌다. 길치는 원래 본인의 감 따위는 믿지 않고 폰을 보고 따라가는데, 진짜 찐 길치는 그 마저도 파란 점이 경로를 벗어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6시경 출발했다. 일출 전 출발은 처음이었지만 팜플로나는 대도시라 거리마다 가로등이 있어 헤드랜턴은 사용할 일 없었다. 10분쯤 가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케이틀린이었다. 옆에는 처음 보는 분이었는데 뉴질랜드에서 온 크리스라고 했다. 정말 인상 좋고 목소리 부드러운 할아버지였다. 정말 특이했던 건 서울-부산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셨다는 거였다. 크리스는 12년 전에, 나는 5년 전에 했으니 7년의 갭을 두고 같은 길을 달렸었고 지금은 같은 날 같은 곳을 걷고 있다.
오늘은 대부분을 케이틀린, 크리스와 함께 걸었다. 대화가 끊이지 않을 때도 있고, 서로의 발소리만이 정적을 깨 주는 시간도 있었다. 그러다 ‘용서의 언덕’을 만났다. 사진과 영상으로 숱하게 보던 곳. 대부분의 영상에서 이곳에는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주변엔 풍력발전기가 가득하다), 오늘은 무슨 복인지 비도 바람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케이틀린과 크리스에게 “누굴 용서할지 마음 정했어?” 하니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알고 보니 둘은 여기가 무슨 의미를 가진 곳인지 전혀 몰랐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기 전 이곳에 대해 블로그도 유튜브도 영화도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그때 마주하는 풍경과 놀라운 순간들을 곧이곧대로 맞이하고자 하는 그들의 방식이었다.
나는 순례길을 떠나기 전 여럿의 유튜브 영상으로 예습했다. 유명한 까미노 어플이란 어플은 죄다 다운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마주친 한국인들은 내가 ‘까친연(뭐의 준말인진 아직도 모름)’에 가입도 안 하고 순례자 단톡방에도 안 들어가 있다며 나를 보고 놀랐다. 준비에 준비에 준비. 대비에 대비에 대비. 그게 한국인들(물론 모두는 아니겠지만)의 방식이었다. 물론 이해할 수 있다. 휴가가 넘치는 서양인들에 비해 우리에게 이 시간은 더욱이 소중할 것이다. 정해진 일정 내에 까미노를 마처야 하고, 그러므로 일정을 망치고 싶지 않고, 따라서 가능한 위험요소를 모두 줄이는 편이 안전할 터. 그렇지만 나만 해도 어느 경로에 뭐가 나오고, 어디가 가장 힘들고, 어디서는 뭐를 먹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바가 많았다. 그 말은, 그것들을 직접 마주했을 때 내가 받을 감동이나 내가 느낄 감정들의 폭이 이미 한참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이들에게 용서의 언덕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고, 나에게 용서의 언덕은 예견된 명소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스포일러 주의’. 기대하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면서 영화에 대한 모든 내용과 결말을 듣고 가지는 않는다. 모든 대사와 장면을 직접 보고 직접 느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손꼽아 기다리던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영화를 전부, 그것도 여러 사람으로부터 여러 차례 스포를 당한 셈이었다.
나는 이미 까미노에 오기 전부터 내가 용서의 언덕에 오르면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랐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지금 가장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이 그였다. 국회 출입기자로 있으면서, 아니 그보다 그저 대한민국을 살아가던 평범한 시민으로서 지금 내가 가진 분노와 혼란, 그리고 이 사회에 더없이 늘어난 혐오와 멸시가 상당 부분 그로부터 기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용서의 언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그를 용서할 순 없었다. 도저히 안 됐다. 진심으로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를 용서하고 내 마음이 좀 더 평안해지기를 바랐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쨌든 기념으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같이 셀카도 몇 장 남겼다. 내려가기 전 케이틀린이 크리스에게 “용서할 사람들은 다 용서했어?” 했더니 크리스는 “그러려면 여기 며칠 있어야 돼” 했고, 다 같이 웃었다. 좀 더 걷다 보니 어제저녁을 함께한 미국인 엘라를 만났다. 넷이 함께 ‘푸엔테라레이나’까지 걷고 점심을 먹었다. 엘라와 크리스는 여기서 머물고 나와 케이틀린은 ‘씨라끼’까지 가는 일정. 순례길에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정해진 일정은 없지만 많은 순례객들이 묵는 도시가 얼추 있긴 있다. 대부분의 순례객들은 오늘 푸엔테라레이나에서 묵을 것이다. 적당한 거리고, 꽤 큰 마을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좀 더 가고 싶었고, 어제 씨라끼에 숙소를 예약해 뒀으므로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방향이 같으니 우리는 언젠가 길 위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지. 서로에게 “부엔 까미노”를 건네고 헤어졌다.
어쩌다 보니 케이틀린과는 3일째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오늘 아침 그녀도 씨라끼까지 갈 거라는 얘기를 듣고 퍽 반가웠던 이유다. 씨라끼까지는 7킬로 조금 넘게 남았는데, 온통 언덕이었다. 심지어 매우 좁고 가파른 언덕. 용평 리조트의 레드 슬로프를 걸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스틱을 팍팍 찍어가며 헉헉 거리는데 케이틀린은 스틱도 없이 퍽퍽 잘도 올랐다. 심지어 스틱이 있는데도 가방에 꽂아놓고 안 썼다. “스틱도 없이 너 진짜 잘 걷는다” 하니 “야 스틱 필요 없어 걱정하지 마” 했다. 개멋져. 오르막도 오르막이지만, 진짜 야마는 뜨겁디 뜨거운 햇빛이었다. 섭씨 32도, 그늘 없음. 힘겹게 올라와 둘 다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바에 들어가 콜라와 물을 시켜 들이켰다. 들이켰다는 건 사실 뻥이고, 진짜 덥고 힘들면 시원한 음료도 잘 안 들어가는 느낌 아나? 딱 그랬다. 첫 모금은 시원하고 좋았는데, 잘 들어가지가 않았다. 양팔에 흐른 땀을 휴지로 닦고, 쉬엄쉬엄 콜라를 비우고 물병에 얼음을 채워 나왔다. 케이틀린한테도 “물병에 얼음 넣어줄까?” 하니까 됐다 그랬다. 아니 님 왤케 센척하시는데요. 바에서 나왔더니 거짓말처럼 구름이 껴 뜨거운 햇빛을 감춰줬다. 분명히 구름 한 점 없었던 것 같은데 이 구름이 다 어디서 왔지. 아니다 몰라도 된다. 완전히 무차스 그라시아스다.
도착한 알베르게에는 예약한 우리 둘과 함께 예약 없이 도착한 버지니아 부부 한 쌍이 계셨는데, 언뜻 보기에도 우리 부모님 또래쯤 돼 보이는 분들이었다. 보통은 선착순으로 1층 침대를 배정하니 먼저 예약한 우리가 우선순위였지만 기꺼이 그들을 위해 양보하고 2층 침대를 택했다. 여성분이 고맙다는 말을 수차례 건넸다. 나는 “괜찮아요. 별 거 아닌데요!” 하니 듣고 있던 다른 프랑스 아주머니 한 분이 “아니. 별 거 맞아” 하셨다. 나는 젊고 키도 크니 2층이 큰 부담은 아닌데, 그들은 힘겹게 걷고 도착해 2층 침대에 낑낑대며 오르내리는 게 퍽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아주 뿌듯했다.
계획대로면 내일도 35킬로 정도를 걸어야 하는데 오늘 걸어보고 나니 이게 맞나 싶다. 비가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부른 걸 보면 까미노를 왔다 간 건가 싶다. 내일 숙소는 예약을 안 해뒀으니 일단 걷는 대로 걸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