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낫?!
Saint Jean Pied de Port - Roncesvalles - Zubiri - Pamplona - Ciraqui - Los Arcos(36.9km)
= 140.2km
길고 지루한 길이었지만 그리 힘들진 않았다. 그리 힘들지 않았다는 건 힘들긴 힘들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살면서 37km 또는 4만 7천보가 넘게 걸어본 적은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확실히 어제보단 덜 힘들었다. 경사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장 더워질 시간 전에 도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중간에 만난 푸드트럭과 푸드트럭에서 겪은 값진 경험 덕이기도 하다.
또다시 출발시간 기록을 경신했다. 내가 일어나 양치를 하러 가는 길에 케이틀린은 이미 채비를 마친 후였다. “쫓아갈게!” 얘기하고 나는 20분 후쯤 출발했다. 그게 겨우 5시 45분이었다.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라 처음 헤드랜턴을 끼고 걸었는데, 시작하자마자 내리막 산길인 데다 앞뒤로 다른 순례자들이 보이지 않아 제법 긴장됐다. 첫 번째 마을을 만났을 땐 아직 아무 바도 열지 않아 아쉬움을 뒤로한 채 두 번째 마을의 첫 바에 들어갔다. 라떼와 초코빵을 시켰는데, 세상에 갓 구운 초코빵을 주는 게 아닌가. 폭신하고 부드러운 최고의 초코빵이었다. 당충전 제대로 하고 다시 출발. 얼마 못 가 앞가방에 꽂아놓은 선글라스가 없어진 걸 발견했다. 좁은 길을 지나오느라 무성한 풀들을 헤치고 지나왔는데, 그 과정에서 대충 꽂아놓은 선글라스가 빠진 모양. 아끼는 선글라스였음에도 진심으로 그냥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곱게 돌린 건 아니고 사실 혼잣말로 쌍욕을 좀 했다. 맞다. 그래봐야 듣는 이도 나뿐이라 나한테 욕한 셈이다. 헐레벌떡 뛰다시피 돌아가고 있는데 며칠 전 론세스바예스에서 안면을 튼 한국인 선생님이 한 손에 선글라스를 들고 나타났다. 오 마이갓 순례길에서 만난 첫 번째 예수님인가. 연신 감사 인사를 드리고, 돌아간 만큼 서둘러 다시 걸었다.
좀 더 걷다보니 그 유명한 이레체 와인꼭지(!)가 나왔다. 수도원에서 매일 100리터의 적포도주를 채워놓고, 순례자들은 지치고 힘든 와중 소소한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하루 제한된 양이 있기 때문에 이른 시간이 아니면 포도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나는 훨씬 전 마을에서부터 걸어간 거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았는데, 와인이 아주 콸콸콸 쏟아졌다. 가방에 달고 다니던 캠핑용 컵으로 와인을 맛봤는데 호불호 없이 모두에게 맛있을 와인이었다. 쏘 굳. 감탄을 하며 연달아 세 잔을 마시고 불콰해진 채 헤롱거리며 걸었다.
한참을 더 가서야 케이틀린을 따라잡았다. 와인 기운이 올라온다고 하자 “토 할거야…?” 하길래 아니아니 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연일 같이 걷다 보니 오늘은 많은 대화를 하진 않고 걷고 있다가 그녀의 가방에 대롱대롱 매달린 미피를 처음 봤다(나는 헤롱거리고 미피는 대롱 거렸네. 일부러 맞춘 건 아닏 . “원래부터 ㅔ 이있었나?”했더니 처음부터 늘 달고 있었다며 미피가 네덜란드 거란걸 알려줬다. 아참 케이틀린은 호주에서 왔지만 네덜란드 여권을 가지고 있는 더치(Dutch)다. 뭐 무슨 사연이 있는 건진 모르겠고 본인도 모른 순례자들에게 그냥 ”I’m from australia”라고 한다. 그래도 더치는 더치인지, 바에서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내가 내려고 하면 손사래를 친다. 아니 이 정도 동행했으면 물이나 콜라정돈 사줄 수 있는 거 아닌가. 근데 더치들도 더치페이라는 말을 쓰나? 이따 한 번 물어봐야지.
한 할아버지가 서서 순례자들을 기다리다 “자네 로스 아르코스까지 가나?” (할아버지라 말투는 내 맘대로 옮겼다) 물은 뒤 가는 길에 있는 푸드트럭의 전단지를 나눠주셨다. 전단지를 보니 제법 진짜 음식들도 파는 푸드트럭이라 꼭 들러 먹어야지 결심했다. 케이틀린과 함께 도착했는데 그녀는 잠시 앉았다 먼저 출발하겠다고 했다. 나는 무려 빠에야를 시켜 먹었는데 시장이 반찬이었던 건지 꽤나 맛있었다. 한 그릇을 금세 뚝딱하고 잠깐 숨 좀 돌리는데, 바로 건너편 야외에 약간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고 그 아래에서 청년들의 신난 아우성이 들렸다. 궁금해 가보니 현지인 둘이 웃통을 까고 고여있는 물에 들어가 첨벙거리고 있었다. 내가 호기심을 보이자 짧은 영어로 나한테도 들어오라고 소리쳤다. “시원해?” 하니 “쏘 쿨!” 했다. 고민됐다. 일단 물이 개더러워 보이는 데다 아직 목적지까지는 10킬로 정돈 더 가야 하는데 숙소 예약은 안 해놨고, 바지며 팬티가 젖은 채로 걸으면 마르면서 사타구니가 쓸리진 않을까, 구정물을 뒤집어쓰고 찝찝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두 청년은 “야 그러면 티셔츠라도 담갔다가 다시 입어! 와이낫?” 했다. 그냥 가면 갔지 그런 짓을 하는 건 약간 짜쳤다. 바로 웃통을 까고 뛰어들었다. 온몸이 시리게 시원했다. 들어가는 순간 수질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곧바로 머리까지 담갔다. 아 개좋다. 뚜벅뚜벅 걸어 나와 발을 말리고 다시 신발을 신었다. 추천해 준 친구들에게 엄지 척하며 고맙다고 했다. 올라오니 루마니아에서 온 사미르라는 청년도 하나 와있었다. 이미 두 친구에게 설득당해 웃통을 까고 있었다. 처음 보는 네 남자가 웃통을 까고 깔깔깔. 글쎄 내 피부가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순간만큼은 정말 짜릿했다. “와이낫?” 들어가지 않을 이유는 차고 넘쳤지만 들어갔다 오니 그 모든 이유 앞에 짜릿한 기억이 남았다.
예상보다 시간을 한참 보내 걸음을 서둘렀다. 목적지까지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무렵 케이틀린이 어디쯤인지 물었다. “시간을 더 보내느라 아직도 여기 :(” 하고 내 위치를 캡처해 보냈다. 생각보다 공립 알베르게에 침대가 많다고 알려줘 안심하고 걸어 체크인했다. 알베르게에는 처음 보는 내 또래 한국남자 셋이 있었다. 체크인하고 광장으로 나가보자 셋이 앉아 샹그리아를 마시고 있길래 합석해 시간을 보냈다. 승민 씨는 나보다 한 살 어린 94년생, 호진 씨는 갓 제대하고 온 02년생, 현준 씨는 광주에서 온 98년생이었다. 다들 참 순하고 호감 가는 친구들이었다. 다들 20킬로 초반대 정도만 걷는 중이라 어제와 오늘 내 스케줄로 따라잡게 된 거였다. 우리가 앉아있던 광장에 정장과 화려한 원피스를 입은 현지인들이 즐비했다. 뭘까 뭘까 궁금해하다 내가 못 참고 가서 한 명한테 물어보자 바로 앞 성당에서 결혼식이 있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차에서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내렸다. 광장의 모두가 박수갈채와 환호를 보내며 축하해 줬다. 진짜 축제 같은 결혼식이었다. 이름 모를 신랑과 신부님, 작고 소중한 인연이지만 진심으로 축하를 보냅니다.
내일은 드디어 연박할 대도시로 가는 날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일주일 가까이 된 거구나. 가지 않는 것 같은 시간은 늘 돌아보면 한참을 지나있다. 까미노에 30일 정도가 걸린다고 치면 벌써 약 1/5 정도가 지난 거네. 지금 이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도록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느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