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침대와 2층 침대는 고작 사다리 몇 칸 차이가 아니다.
Saint Jean Pied de Port - Roncesvalles - Zubiri - Pamplona - Ciraqui - Los Arcos - Logroño - Najera (29.5km)
= 198.2km
Day7은 로그로뇨에서의 쉼. “걷지 않는 자 기록도 말라”는 말이 있듯이(없다) 어제 하루는 스킵하고 Day8이 됐다. 어젠 정말이지 먹고 뒹굴다 자고 일어나 먹고 잤다. Day7에 한 가지 기록하고 싶은 건 케이틀린과의 작별이다. 나흘 정도를 같이 걷고 먹고 지내다 보니 순례길 동반자로서 꽤 정이 들었다. 게다가 로그로뇨에 도착한 날 그녀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저녁도 함께 먹지 못해 사실상 로그로뇨로 오는 길에서 잠깐 쉬겠다며 나보고 먼저 가라던 그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이 된 것이다. 나는 퍽 아쉬운 마음에 지난 4일 함께 지낼 수 있어 정말 좋았고 마지막 저녁을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고, 상태가 걱정되고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고, 네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고, 앞으로도 몸 조심하고 우리 길 위에서 꼭 다시 만나자고 애정 어린 작별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그녀는 나도 같이 걸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 부엔 까미노! 라고 짤막한 답장을 보냈다. 흥, 정 없는 것.
8일 차 아침은 나만의 공간 에어비앤비에서 일어났다. 혼자니 더 잘 잘 법도 한데 다시 일찌감치 일어나 걸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 요상 망측한 꿈을 두어 개 꾸고는 잠을 설치고 새벽 일찍 깼다. 차라리 잘됐다. 나헤라 숙소를 예약해두지 않았으니 빨리 도착하면 더 많은 옵션이 있겠지 뭐. 로그로뇨는 확실히 대도시인지라 도시를 벗어나는 데에만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로그로뇨에서 나헤라까지는 12.5km를 가서야 첫 번째 마을이 나온다. 때문에 어제 로그로뇨에서 주전부리를 좀 준비해 왔다. 초코렛과 귤과 하몽. 첫 번째 마을에 가기 전 멋진 호숫가 공원이 나와 벤치에 자리를 잡고 귤을 까먹었다. 딱 세 개를 싸왔는데 부녀로 보이는 순례자 둘이 쉬고 있어 각각 하나씩 나눠먹었다.
첫 번째 마을에 가자 예쁜 바가 있었다. 새벽에 온 비로 테라스 의자들이 좀 젖어 있었는데 툭툭 털고 바깥 자리를 잡았다. 생 오렌지를 갈아주는 주스를 하나 주문하고 나오는데 처음 보는 또래 한국인이 있어 인사를 건넸다. 자기 맞은편 자리가 비었다며 권해 함께 앉았고 옆 테이블에 있던 네덜란드 아주머니 두 분과 함께 넷이 수다를 떨었다. 아주머니들이 뉴질랜드를 가는 길에 서울을 하루 경유했는데, 도심에 나가보니 온갖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있었던 것이 인상 깊었다고 해서 웃겼다. 내가 그건 정치적 집회였을 거라고 하며 작금의 상황에 대해 간략히 들려줬는데, 두 분도 대강의 내용은 뉴스를 통해 접한 모양이었다. 새삼 국제적인 망신 망신 개망신이 아닐 수 없다. 놀랍게도 동석했던 한국인 분도 여행 중 재외국민 투표를 하셨다고 했다. 심지어 순례길을 걷던 도중 팜플로나에 도착한 뒤 투표를 위해 바르셀로나에 다녀왔다고. 나와 그녀는 서로 재외국민 투표를 미리미리 신청해 실제로 하고 온 여행자를 처음 봤다며 놀랐다.
그 후로 나헤라까지는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왔다. 왼발 새끼발가락에 또다시 물집이 차오르는 게 느껴지는 것 빼고는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썩 좋았는지, 나헤라 마을이 보였을 때 나는 ‘저건 무슨 마을이지? 나헤라까지는 마을이 없는데?’ 싶어 지도를 확인하고 ‘벌써 다 왔다고?’하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어차피 숙소도 예약 안 했는데 더 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빼꼼 내밀길래 진정시키고 넣어뒀다. 워, 워, 들어가 들어가.
아무래도 공립 알베르게보다는 사립의 시설이 좋은 경우가 많아서 나는 오늘도 사립에 묵고자 오는 길에 몇 군데 연락을 해봤었는데 모두 예약 완료라고 했다. 한 곳은 “한국인 단체가 전부 예약을 해버려서 침대가 없어”라고 했는데, 같은 한국인인 나도 짜증이 나는데 외국인 순례자가 이런 얘길 들으면 한국인에 대해 뭐라고 생각할까 싶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전세 버스가 가방을 실어 나르며 단체로 순례를 하는 사람들을 한국인 외에는 아직 못 봤다. 순례자들 사이에서 눈에 띌 뿐만 아니라 눈엣가시가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이유다. 나는 워크인 순례자를 위해 남겨놓는 침대가 있다는 곳으로 일단 가봤는데 “메세지를 보냈던 직원이 실수를 했나 보다”며 남은 침대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공립 알베르게로 향했고 체크인 시간까지는 한 시간 반여가 남아서 나는 그 앞에 앉아 싸왔던 초코렛과 하몽을 먹었다.
하루를 쉬고 걸으니 연속으로 장거리를 걸으며 멀어졌던 순례자들을 다시 만나게 돼 좋았다. 함께 한 시간보다 다른 마을에서 각자의 순례를 한 시간이 더 길었음에도 오랜만에 만난 순례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오! 여기서 널 만날 줄 몰랐는데!” 하는 순례자들에게 로그로뇨에서 2박을 했다고 자랑했다. 그간 무릎이 아파 아대를 사서 차고 온 아델이나 배탈이 나서 바나나만 먹고 있는 안토니 등 각자의 상처뿐인 영광을 안고 있었다.
우르르 체크인을 하고 알아서 각자의 침대를 고르는 방식이었다. 나는 일찍 들어간 편에 속해 남는 침대가 아주 많았는데, 편한 1층을 고를지 연장자와 부상자들을 위해 2층을 택할지 망설였다. 가방과의 접근성으로 보나, 눕고 일어나는 편의성으로 보나, 굴러 떨어질 위험성으로 보나 어느 순례자에게나 1층 침대가 더 매력적인 건 사실이다. 고민이 길어지며 가방을 놓지 못하고 이리저리 배회하자 알베르게의 봉사자가 들어와 웃으며 “젊은 사람들은 2층으로 가줘” 했다. “오브콜스, 노 프라블럼” 하며 2층에 짐을 풀었다. 스스로 주저 없이 2층을 선택하지 못한 게 부끄러웠다. 함께 들어와 1층에 짐을 풀었던 안토니와 호진 씨는 머쓱하게 침대를 옮겼다.
내일과 모레는 다시 30km 이상을 달리는 날이다. 부르고스까지 이틀 안에 끊기 위함인데 내 페이스 메이커 케이틀린 없이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