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 순례길에서 사우나도 하고! 빠에야도 묵고 마 다 해써!”
Saint Jean Pied de Port - Roncesvalles - Zubiri - Pamplona - Ciraqui - Los Arcos - Logroño - Najera - Catildelgado - SanJuanDeOrtega - Burgos - Hontanas(32.4km)
= 327.0km
어제저녁 드디어 MELT 치즈케이크를 먹었다. 스페인에서 아주 핫한 신생 브랜드인데, 테이크아웃 전문 케익샵이다. 팜플로나에서 상상초월로 긴 줄을 따라가봤을 때 그 끝에 이 MELT가 있었다. 로그로뇨에서 두 번째로 노렸을 땐 월요일이라 휴무. 삼고초려 끝에 드디어 부르고스에서 영접할 수 있었다. 괜히 줄을 길게 세우는 게 아니었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한다. 한국인들과 저녁을 먹고 나오니 9시가 넘었고 알베르게에서 수박을 먹고 가라는 걸 거절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얼른 씻고 누워 10시쯤 안락한 잠을 청했다. 5시 40분에 눈을 떴다. 진짜 황당한 건 꿈에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김민전 의원이 나왔다. 어이가 없어 너털웃음이 나왔다. 몸은 순례길에 왔건만 아직도 내 정신은 국회 출입기자에 머물러 있는가.
6시 반에 동행들의 알베르게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조금 일찍 도착해 기다리지 않고 먼저 가겠다는 DM을 남긴 뒤 출발했다. 사흘정도 만에 혼자 걸으니 그런대로 기분은 좋았는데 오늘은 또 왼쪽 새끼발가락의 물집이 말썽이었다. 발목도 나아졌는데 고작 물집 하나에 절뚝거리려니 정말 짜증 났다. 보통 물집은 그냥 참고 꾹 밟으며 몇 걸음 걷다 보면 적응이 돼 그런대로 걸을 만 해 지는데 오늘 이 녀석은 뭔가 달랐다. 이상한 걸음걸이로 어찌 됐든 길을 나아갔다. 부르고스를 벗어나며 예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갓 뜬 해가 길마다 핀 꽃들이며 너른 들판에 금빛을 더했다.
첫 번째 마을까지는 약 11km. 오늘 목적지까지 거리의 1/3 지점이다. 그쯤에서 다들 멈춰 아침을 먹을 예정. 동행들은 그전에 나를 따라잡았다. 아직까지도 내가 누구를 제치는 게 아닌 누가 나를 앞질러 가는 건 잘 적응이 안 되는 상황인데 오늘은 내 걸음이 워낙 느려 그럴 만했다. 아침으로 또르띠야와 초코빵을 먹었다. 먹고 나서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양말을 벗고 물집밴드를 갈아 붙였다. 그리고 걸어가는데 오히려 통증이 더 심해져 얼마 못 가고 다시 벤치에 앉아 양말을 모두 벗었다. 이 자리에서 터트려버리고 가야겠다 생각하고 바늘을 꺼내 찌르는데 물이 잘 나오지 않았다. 새끼발가락의 어떤 부분은 이미 굳은살이 됐고 어떤 부분은 물 빠진 집만 남아 흐물흐물했고 어떤 부분은 갓 생긴 물집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야말로 발가락 하나에 물집의 흥망성쇠(?)가 다 들어있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인진지’ 발가락 양말을 신고 그 위에 울로 된 양말을 덧신는다. 나 또한 그 구성으로 여태껏 걸어왔는데 오늘은 울 양말이 발가락을 다소 조이는 것 같아 인진지 발가락 양말만 신고 걷기로 했다. 한결 나았다.
그래도 여전히 짜증 가득한 마음으로 절뚝이며 걷다가 심지어는 길을 잘못 들었다. 지나가던 현지인이 스페인어로 맞는 길을 알려주고는 화살표를 똑바로 보고 다니라며 잔소리를 했다. 길을 알려준 고마운 분이었건만 당시 기분으로는 도대체 저런 잔소리는 왜 덧붙이는 거지 하고 더 짜증이 났다. 다시 길로 돌아와 한참을 도대체 짜증이라는 건 뭘까를 생각하며 걸었다. 화가 아닌 짜증은 주로 정확한 명분이나 근거가 없기 마련이다. 또 대상이 없거나 나 자신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짜증은 내면 낼 수록 셰도우 복싱, 아니 나 자신을 향해 날리는 펀치에 불과한 것이다. 짜증으로 가득 찬 상태에선 오히려 할 수 있는 것들도 놓치거나 될 일도 안된다. 가방의 허리 주머니에 넣어 둔 초코렛을 바로 꺼내 물었다. 한 판을 다 먹으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조금 걷다 보니 작은 예배당이 나왔고 그 앞에 순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들어가 보니 수녀님 한 분이 세요(스탬프)를 찍어주고 실로 엮은 작은 펜던트를 나눠주며 축복해주고 계셨다. 나 또한 들어가 도장을 받은 뒤 뜻 모를 스페인어로 축복을 받았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거쳐갈 텐데 수녀님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한 명 한 명에게 정성껏 기도해 주셨다. 조금 더 걷다 보니 호진을 따라잡았다. 호진은 어제 신발에서 복숭아뼈가 닿는 부분을 칼로 살짝 도려내고 오늘부터는 샌들 대신 다시 신발을 신고 걷는 중이었다. 대화를 좀 하며 걸으니 2/3 지점 마을에 도착했다. 아침을 거른 호진은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나는 제로 콜라 한 잔을 마셨다. 더운 날 땀을 흘리고 마시는 콜라는 정말이지 위대하다. 새삼 감동을 받아 인터넷에 코카콜라 발명가 이름을 검색해 외워놨다. 존 펨버턴이라는 인물이란다.
순례길은 걷는 순례자들과 자전거를 타는 순례자들로 나뉜다. 걷는 동안 수많은 자전거들이 나를 지나쳐갔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지나가는 자전거들이 야속할 만큼 부러웠다. 그 순간 자전거로 국토종주와 동해종주를 하던 당시가 생각났다. 자전거를 타고 매일 장거리를 달리는 것도 꽤나 체력을 요하는 일이어서 당시에는 힘든 순간순간들이 있었고 그때는 우리를 지나쳐가는 전기 자전거나 오르막을 손쉽게 오르는 자동차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서울에서 차를 몰고 다닐 때는 심한 교통체증이나 주차난에 오히려 자전거나 대중교통이 부러웠던 경험이 있지 않나. 그러니까 부러움이란 애초에 끝이 없는 불만족이다. 다리를 다쳐 걷지 못하거나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하루 수십 킬로씩 걸을 수 있는 내가 얼마나 부럽겠나. 위를 쳐다보면 언제나 부러울 대상은 끊임이 없다. 인간이 가진 가장 느린 이동수단인 ‘걸음‘을 선택한 이 여정에서는 모든 이동수단들을 부러워하기보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마을에서는 내가 조금 먼저 출발해 알베르게까지는 각자 걸었다. 수빈과 진이 먼저 도착해 내 이름으로 예약된 침대 네 개를 모두 배정받아 짐을 풀고 있었고 그로부터 약 10분 후 내가 들어갔다. 오늘 묵는 알베르게는 무려 스파가 있는 알베르게로 유명하다. 물론 추가요금을 내긴 하지만 순례길 중 매우 드문 (사실 유일한지도 모르겠음) 경험인지라 많은 순례자들이 스파를 경험하기 위해 이 알베르게를 선택한다. 수빈, 진과 호진은 귀찮은 건지 추가금이 아까운 건지 스파를 하지 않았고 나 혼자 즐기고 왔다. 사실 핀란드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사우나를 가장 사랑하는 한국 출신으로서 평가하건대 시설은 ’스파‘라기 보단 습식 사우나가 포함된 수영장에 가까웠다. 그래도 아무도 없는 습식 사우나에 들어가 몇 분 간 드러누워 있었는데 아주 포근하고 좋았다. 물에 몸을 통째로 물에 넣는 것도 오랜만이라 시원하고 좋았다. 풀 옆으론 강한 해가 내리쬐는 테라스가 있어 수영복을 입고 앉아 약간의 태닝을 했다. 순례길 동안 팔만 타고 배는 새하얘 보기 싫었던 차에 조금이나마 그 대비를 줄여보려는 심산이었다.
약 40분쯤 앞판을 구운 뒤 샤워를 하고 나왔다. 레몬 맥주를 한 잔 사고 야외 그늘막 테이블에 앉아 글을 남기는 중이다. 곧 있을 저녁은 치킨 빠에야가 나온다고 해 기대가 된다. 내일은 어디까지 걸을지 아직 미정. 28km를 가 아주 작은 마을인 ‘보디야 델 까미노’에 묵거나 34km를 가 대도시 프로미스타에 묵는 방법이 있는데, 마음은 후자로 기울고 몸은 전자로 기운다.
저녁은 알베르게에서 단체로 먹었다. 거대한 팬에 치킨을 넣은 빠에야를 만들어와 각자 접시에 덜어먹는 방식이었는데 맛도 있고 재미도 있고 양도 넉넉했다. 각 테이블마다 와인이 병 째 놓였는데 나는 콜라와 와인을 섞어 마셨다. 식사를 마치고는 한 순례자 아저씨가 들고 다니던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어쩌구 저쩌구 웨스트 벌지니아~” 하는 노래와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는 노래여서 모두가 후렴구를 따라불렀다. 오랜 내공이 느껴지는 실력은 아니었고 우쿨렐레를 갓 배워 써먹고 싶어 챙겨온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