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3. ~Boadilla del Camino

표현력이 부족해 차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29.4km)

by 아레카야자


Saint Jean Pied de Port - Roncesvalles - Zubiri - Pamplona - Ciraqui - Los Arcos - Logroño - Najera - Catildelgado - SanJuanDeOrtega - Burgos - Hontanas - Boadilla del Camino(29.4km)
= 356.4km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의 기나 긴 여정은 메세타 평원으로 이어진다. 약 200km가 넘는 평원. 누가 메세타 평원이 지루하다고 했나. 오늘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없었다. 참으로 시 같은 풍경이었다.




5시 반에 일어나 6시를 조금 넘겨 출발했다. 수빈, 진과는 목적지가 달라 오늘이 함께 출발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안전하게 잘 걸으라고 작별인사를 하고 일정이 맞으면 레온에서 만나기로 했다. 둘의 걸음이 워낙 빠른 탓에 일찌감치 헤어지고 혼자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산 등선 너머로 해가 떠올랐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선명하고 예쁜 해였다. 해가 떠올라 금빛으로 세상을 물들이자 일출 전까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에선 파도 소리가 났다.



약 9km 떨어진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바가 보여 들어갔다. 수빈, 진이 와있었고 상민과 현준도 뒤이어 들어왔다. 각자 기호에 맞는 아침거리를 주문하고 앉았다. 나는 오늘도 초코빵에 초코머핀, 생 오렌지 주스와 라떼를 먹었다. 각자 음식을 비울 때쯤 호진이 들어왔다. 신발에 옆면을 도려내 복숭아뼈가 닿지 않게 개조한 뒤로는 신발을 신고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우리는 또 한 번 서로 다른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메세타 평원 사이로 난 길 양옆에는 갖가지 색깔의 꽃들이 피어있었다. 12도 경사의 오르막을 한 발 한 발 올라가 정상에 서니 드넓은 평원이 내려다보였다. 순례자들은 헐떡이는 숨을 고르고 사진을 찍기 바빴다. 나도 먼저 와있던 상민에게 사진을 한 장 부탁하고 둘이 함께 셀카를 남겼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리막길. 스틱을 짚으며 한 발 한 발 내려가다 속도가 붙어 스틱을 쥐고 우다다다 뛰었다. “오오오오 안 멈춰져” 하며 슝 지나가자 상민이 내 꼴을 보며 웃었다. 내리막길 끝에는 기가 막힌 양귀비 밭이 펼쳐졌다. 실로 감탄이 나오는 풍경이었다. 청명한 하늘은 선명한 하늘색, 드넓은 평원은 색초록색, 그리고 양귀비 밭은 온통 빨강이었다. 황홀경이었다.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그 아름다움은 담기지 않았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걸음을 늦췄음에도 그 풍경을 지나쳐 가야 하는 게 아쉬울 만큼 아름다웠다. 어떤 화가도 그려내기 힘들고 어떤 문장가도 묘사하기 어려울 자연이 쓴 시였다. 윤석철 트리오의 앨범을 들으며 걸었다. 노이즈 캔슬링은 끄고 새와 나무들이 내는 소리를 함께 페어링 했다.



양귀비 밭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후로도 쭉 평원은 아름다웠다. 무리 지어 술래잡기를 하는 새들을 관찰하고 짝 지어 숨바꼭질하는 나비들을 구경했다. 느릿느릿 걸었다. 발길과 눈길을 붙잡는 많은 요소들이 펼쳐져 있었다. 오늘은 30km가 조금 안 되는 거리였고 어제저녁 숙소 예약도 해놔 급할 게 전혀 없었다. 천천히 걸어 도착한 숙소엔 야외풀이 있었다. 어제는 스파, 오늘은 야외풀장. 어제오늘 아주 호사다. 오자마자 급하게 샤워로 땀기를 빼고 바로 수영복을 입고 뛰쳐나와 풀장에 그대로 다이빙. 목욕탕 냉탕 수준의 온도였는데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걷고 난 후 최고의 보상이었다. 함께 묵는 순례자들이 지나가며 물이 차갑냐고 물어 아주 차갑다고 일러 줬더니 엄지척을 날리며 지나갔다. 웃통을 까고 그대로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오늘도 앞판이 어느 정도 구워지겠지. 아 덥다. 다시 물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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