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4. ~Carrion de los Condes

품위랄지 교양이랄지, 아무튼 진정한 ‘어른’의 모습에 대하여

by 아레카야자


Saint Jean Pied de Port - Roncesvalles - Zubiri - Pamplona - Ciraqui - Los Arcos - Logroño - Najera - Catildelgado - SanJuanDeOrtega - Burgos - Hontanas - Boadilla del Camino - Carrion de los Condes(27.1km)

= 383.5km


오랜만에 20km 중반대의 짧은(?) 거리이고 목적지의 알베르게도 많은 침대를 보유하고 있어 여유가 있는 날이었지만 5시쯤 살짝 깬 잠이 다시 들지 않아 5시 20분쯤 일어났다. 일어나 침낭을 구겨 압축팩에 넣고 양치를 하고 왔다. 화장실에서 방으로 돌아오는데 내 방에 가까워질수록 뭔가 익숙한 멜로디가 들렸다. ‘아 설마….?’ 하며 몇 걸음 달려 들어오자 설마 했던 그것이었다. 5시 30분에 맞춰둔 내 휴대폰 알람이 꺼줄 주인도 없이 울려 퍼지고 있던 것이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다른 순례자가 똑같은 행동을 했을 때 속으로 얼마나 손가락질을 했던가. 한참을 울리던 그 알람의 주인은 결국 누군지 보지 못했고 참다못한 다른 순례자가 대신 알람을 끄고는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짜증을 부렸더랬다. 그 짓을 내가 하다니. 방에 남아있던 유일한 순례자 할머님께 “아임 쏘 쏘리”를 외쳤다. 그때 그 독일 할머니가 하신 말씀을 나는 오늘 걸으며 두고두고 생각했다. “아냐. 노래가 참 좋던걸!”


안톤 체호프의 단편집 <사랑에 대하여> 중 ‘다락방이 있는 집’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훌륭한 교육이란 식탁보에 소스를 흘리지 않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이 소스를 흘려도 모른 체하는 데 있지요.


오늘 새벽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침대에 알람을 흘렸을 때, 독일에서 온 할머니는 내 실수를 모른 체해줬다. 그저 “괜찮아” 정도가 아니라 그 어떤 대답보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방식으로 나의 실수를 덮어줬다. 내가 배우고 싶은 재치와 품격이었고 닮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었다. 그 대답에 내가 얼마나 감명을 받았는지, 미안할 짓을 해놓곤 얼마나 감동을 받아 나왔는지를 미처 설명하지 못 한 채 그저 부엔 까미노를 속삭이고 나온 게 두고두고 아쉽다.





6시경 출발해 한 시간 여를 걸어 도착한 폰페라다에서 라떼와 초코빵을 먹고 걸음을 나아갔다. 오늘의 길은 말 그대로 평원. 그늘도 쉼터도 없이 쭉 뻗은 길을 따라 걸었다. 달궈진 모래바닥을 계속 밟으니 발바닥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19km 정도 지점에 마을이 있어 콜라 한 잔을 기대하며 쉼 없이 갔는데, 야외에 깔려있는 테이블이 무색하게 바의 문은 잠겨있었다. 그늘막에 앉아 신발을 벗고 발을 식히며 들고 다니던 미지근한 물을 마시는 걸로 대신했다. 뒤이어 오던 상민이 오길래 비보를 전했다. 그도 시원한 뭔가를 한 잔 기대하고 온 모양인데 실망하고는 잠시 땅바닥에 앉아 있다 먼저 떠났다. 남은 거린 6km 남짓. 마찬가지로 뜨겁게 달궈진 바닥으로 길은 이어졌다. 쉴 만한 그늘도 사진을 찍을 만한 풍경도 없는 탓에 걷는 것밖에는 할 게 없었다. 그 덕에 목적지 마을에 정오 무렵 도착할 수 있었다.



체크인 대기 공간에서 브라질 할아버지와 네덜란드 청년 브라이언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브라질 할아버지는 이번이 그의 8번째(!) 까미노라고 했다. 약 10년 전 걸었던 까미노에서 지윤이란 이름의 한국 여성을 만났는데 자신의 ‘한국인 딸’이 됐다며 자랑했다. 단순히 10년 전 까미노를 잠깐 함께한 정도가 아니라 그 후로도 그들은 꾸준히 연락하고 심지어 그 후에 그의 여자친구와 셋이 그리스를 여행하기도 했다고. 현대 계열의 광고회사에 다녔다는 걸 보니 아마도 이노션으로 추정되는 회사에 종사했던 모양인데 퇴사 후 현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스카웃 돼 그곳에서 일한다고. 일면식도 없는 지윤의 소식을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길게도 늘어놓으셨다. 역시 딸 자랑은 국적을 막론하고 국룰인가 보다.



체크인을 마치고 씻고 오랜만에 손빨래를 했다. 행보관이 주말에 자빠져있던 병사들을 깨워 일광건조를 시킬 만큼의 햇살이었다. 샤워를 하러 들어가던 브라이언에게 점심에 별 계획 없으면 같이 먹으러 가자고 얘기해둔 참. 호진과 함께 셋이 나와 적당한 타파스 바에 들어갔다. 레몬 맥주와 소세지, 오징어 튀김, 또르띠야 등을 시켜놓고 있는데 상민과 현준까지 들어와 다섯이 둘러앉았다. 브라이언이 먼저 자신이 까미노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그 설명의 정도가 너무 상세하고 솔직해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지만 눈을 맞추며 들어줬다. 일에 지치고 삶에 지쳐 있었고, 작년엔 약물 중독 치료까지 받았다는 그는 중독 치료 중 ‘fellowship’의 효능을 알게 됐고, 이 까미노에서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서로 판단하지 않는 점이 참 좋다고, 그 과정에서 자기는 비로소 숨 쉴 수 있고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가 시작한 솔직한 이야기 덕에 나는 몰랐던 상민과 현준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현준의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일 만큼 극적인 이야기였다. 그가 걷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수다를 떨기보다는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반면 나는 이 까미노에 왜 왔나. 본 매거진의 첫 글로 그 이유에 대해 적어놨지만 사실 그건 실제로 까미노를 결심한 이유라기보다는 까미노를 결심하고 나서 갖다 붙인, 또는 기대했던 것들에 가깝다. 나는 그저 회사로부터 주어진 한 달의 휴가를 좀 더 뜻깊고 색다르게 보내고 싶었을 뿐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저 유럽여행이나 발리 한 달 살기보다 ‘있어 보이’기도 하고. 내가 품고 왔던 생각에 비해 까미노에는 각자의 명확한 사연과 이유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벌써 14일 차. 나는 그저 이곳에 걷기 위해 왔나. 틀린 말은 아니지만 걷는 것은 까미노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순 없다. 걷고 걸어 이 길의 끝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건 뭔가. 그 생각을 다시금 할 때가 됐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