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싶은 것 vs 얻고 싶은 것
Saint Jean Pied de Port - Roncesvalles - Zubiri - Pamplona - Ciraqui - Los Arcos - Logroño - Najera - Catildelgado - SanJuanDeOrtega - Burgos - Hontanas - Boadilla del Camino - Carrion de los Condes - Moratinos - El Burgo Ranero - Leon - Hospital de Orbigo - Santa Catalina de Somoza - Molinaseca(37km)
= 580.3km
전체 순례길 중 가장 높은 고도에 오르는 날. 가장 높은 고도에 꽂혀있는 ‘철의 십자가’를 만나는 날. 저마다 버리고 싶은 것이나 얻고 싶은 것, 이루고자 하는 점 등을 적어 올려놓고 오는 곳. 순례길 첫날 생장드피에드포르의 알베르게에서 주인아저씨는 나에게 돌멩이를 챙겨 왔냐고 물었고, 없다고 하자 하얗고 예쁜 돌 하나를 줬더랬다. 그걸 21일간 가방에 넣어 잘 가지고 왔다. 버리고 싶은 것과 얻고 싶은 것. 나에겐 무엇이 더 필요할까 나는 뭘 버리고 싶으며 뭘 얻어내고 싶을까. 뭘 적어야 할까.
어제 채 30km도 걷지 않아 오늘은 그 몫까지 36km를 걸을 예정이었다. 메세타 평원이었다면 36km가 그렇게까지 부담스러운 거리는 아닌데, 1500m 고지를 넘어 그 거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암튼 죽었다 생각하고 걸어야 한다는 뜻. 오랜만에 해도 안 뜬 5시 15분에 길을 나섰다. 어제 헤드랜턴은 충분히 충전해 뒀다. 마을을 벗어나자 역시나 칠흑 같은 암흑이었다. 수풀 사이 좁게 난 순례길을 걷는데 주위로 동물들이 풀숲을 헤치는 소리가 삭- 삭- 나서 오싹 오싹 소름이 끼쳤다. 물론 걔네한텐 내가 더 공포스러운 존재였을 거다. 이마에서 빛을 발광하는 크디큰 미확인 존재.
어둠을 뚫고 일출을 맞으며 라바날 델 까미노까지 약 11km를 가서 바에 앉았다. 초코빵과 초코케익, 오렌지 주스와 라떼를 시켜 먹었다. 슬슬 오르막은 계속 됐지만 본격적인 오르막은 이제부터다. 오는 길 내내 일부러 아무것도 듣지 않고 철의 십자가에 놔두고 올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이미 ‘버려야 할 것들’을 적어 두고 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있었다. 그렇다면 무얼 버릴 것인가. 작디작은 조약돌에 적어낼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다. 버리고 싶은 것들을 몽땅 적자면 ‘시지프스의 형벌’에서 그가 끊임없이 밀어 올리는 바위 정돈 돼야 될 테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두려움’이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미지에 대한 두려움 등 여러 두려움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건 ‘상실’에 대한 두려움. 잃는 것이 무서워 무엇과도 새로운 관계를 맺지 못하는 나였다. 그렇다면 그 두려움은 어디에서 왔나를 생각해보다 보니 ‘미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 두려움은 과거로부터 왔다. 실패했던 경험, 잃었던 경험, 아팠던 경험과 그에 대한 미련이 나를 두려워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나는 이런 나를 불쌍히 여기는 내 스스로가 보였다. ‘자기 연민’. 세 번째로 내가 버리고 싶은 단어가 생각났다. ‘미련’과 ‘자기 연민’과 ‘두려움’은 각각이 과거, 현재, 미래에 대응한다. 상처받은 과거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는 나는 이런 모습의 나를 현재 가여워한다. 됐다. 순례길에서 이 세 가지를 버릴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지난한 걸음걸음을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는다고 생각했다.
라바날 델 까미노에서 철의 십자가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산을 오르며 계속 더 높은 곳에 꽂혀 있을 철의 십자가 윗부분을 찾아 헤맸는데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더 올라가야 하는 건가?’ 하는 순간 길 끝에 철의 십자가가 보였다. ‘에걔?’ 사실 첫인상은 이랬다. 물론 에펠탑이나 자유의 여신상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건 작아도 너무 작지 않나. 내 느낌을 담아 다소 과장하자면 이건 거의 ‘조금 긴 막대기’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십자가가 롯데타워가 아니라 부르즈알칼리파만하다고 해서 내 소원을 더 잘 이뤄주고, 짤막한 막대라고 해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만 어쨌든 철의 십자가는 순례길에서 상징하는 바가 상당한 사실상의 하이라이트 격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다소 실망했던 건 사실이다. 어쨌든 조약돌 이 면 저 면에 세 단어를 써넣고 철의 십자가 아래에 툭 던져 올렸다. 돌은 주사위처럼 구르다 ‘미련’이 보이게 안착했다. 결국 세 가지 중 가장 시급하게 버려야 할 것은 미련이란 뜻인가, 하고 생각했다. 자기 연민과 두려움 모두 기실 거기에서 기인하므로.
꾹꾹 눌러 버리기 위해 단어들을 곱씹을 겸 나는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약 30분쯤 지났을까, 슬슬 출발하려고 작은 가방을 둘러메는데 저 편에서 누가 “지호!”하고 불렀다. 수빈과 진이었다. 그들도 각자 준비해 온 돌을 올리고 철의 십자가를 한 바퀴 돌았다. 나름대로 경건해 보였다. 상민과 현준도 뒤이어 오고 있다고 했다. 다 같이 모이면 다섯이서 사진을 찍자고 내가 제안했다. 우리는 셀카, 타이머, 타인 등 동원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사진을 남겼다. 각자가 적거나 마음으로 되새긴 것들이 무엇이든,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철의 십자가 이후로는 말 그대로 죽음의 내리막이었다. 경사도 심했고 돌바닥 위로 작은 자갈이 쫙 깔려있어 자빠지기 딱 좋아 보였다. 그렇지만 우리의 진과 수빈이 누군가. 스틱도 없이 코리안 순례자 최고 속도를 자랑하는 둘 아닌가. 그 둘은 경이로울 정도로 이 내리막을 스틱도 없이 내달렸다. 그 뒤를 졸졸 쫓아가다 보니 우리는 엘 아세보 마을에 정말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조금 떨어져 따라오던 현준이 나중에 말해주길, 우리가 제치며 지난 순례자들이 농담조로 “쟤네 좀 이상해” 할 정도였다고 한다. 맥주 한 잔씩을 시켜 둘러앉아서는 진과 수빈도 죽겠다고 성화길래 나는 “너희도 힘이 들긴 드는구나. 하나도 티가 안 나 몰랐다”고 했더니 “뒤에 식솔들이 따라오는데 내색할 수 없지”란다. 역시 진정한 테토녀다.
나를 제외한 네 명은 이 마을에서 묵기로 했다. 나는 8키로를 더 가야 한다. 친구들이 장난조로 붙잡았으나 나는 몰리나세카에 있는 개천 사진에 마음을 빼앗겨 무조건 가겠다고 마음먹은 참이었다. 방금 같은 내리막을 더 가야 하는 건데 진, 수빈 같은 페이스 메이커들 없이 언제 가나 싶었다. 그러나 간다. 32도에 육박하는 오늘 흠뻑 땀에 젖어 마을에 도착해서는 얼음장 같은 개천에 다이빙하는 상상을 하면 결코 멈출 수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힘들긴 드럽게 힘들었다. 돌바닥의 내리막이니 속도도 안 나고 그러므로 키로 수도 안 줄고 중간중간 철푸덕 앉아 가쁜 숨을 내쉬는 순례자들을 지나치며 나도 딱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어폰을 꽂고 지소쿠리 클럽이나 잔나비나 검정치마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힘을 냈다.
3시 반쯤 마을 초입에 들어오니 슬슬 물소리가 났다. 흥분됐다. 마을로 들어오는 돌다리를 건너며 양옆으로 천변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몇몇이 돗자리를 깔고 태닝을 하고 있었다.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씻지도 않은 채 바로 웃통을 까고 나와 개천으로 갔다. 얼핏 고딩쯤 돼 보이는 애들이 첨벙첨벙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충분히 깊어?” 하니 끄덕끄덕하며 손짓으로 깊다는 제스처를 해 보였다. 의심 없이 펜스를 밟고 바로 다이빙. 목욕탕 냉탕보다도 차가운 물이었다. 온몸이 저릿하게 차가워 평영으로 얼른 반대편까지 건너갔다. 방금 막 물에서 나온 듯 물에 젖은 사내 둘이 천변에 걸터앉아 있길래 “와 물 진짜 시원하네, 너무 좋다“도 너스레를 떨며 나도 발을 담그고 걸터앉았다. 발의 피로가 풀리는 건 좋은데, 차가워도 너무 차가웠다. 발을 넣었다 뺐다 하다가 반대편에 놔두고 온 휴대폰과 여권, 지갑 등이 든 가방이 살짝 불안해 다시 수영을 해 건너왔다.
조그마한 스포츠 타올을 돗자리 삼아 누워 앞판, 뒤판을 고루 구웠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이 너무 뜨거우면 다시 풍덩, 냉수마찰을 하고 올라오면 다시 또 햇살을 견딜만했다. 그 사이 천변의 잔디밭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대부분 이 동네 사람들 같아 보였다. 각자 다른 돗자리에 누워있던 애들도 결국 서로 다 아는 사이들이었다. 한국에선 바닷가에서도 수영복만 입는 사람들이 드문데, 여기선 동네 천변에서도 모두가 수영복 차림이었다. 남녀노소 모두 수영복 차림으로 어우러져 태닝과 다이빙, 수영을 즐겼다.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좋은, 코리안으로선 지나치게 낙천적인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평화로운 오후였다.
생각해 보니 하루 종일 1500m 고지를 넘으며 36km를 걷고, 물놀이까지 한 마당에 먹은 거라곤 아침의 그 빵 두 개가 전부였다. 어쩐지 살짝 어지럽더라니. 두 시간 여를 놀고 여섯 시쯤 숙소로 돌아가 빨래를 맡기고 나왔다. 도저히 질릴 수 없는 풍경이라 천변에 위치한 바깥 자리에 앉아 눈과 귀와 입 모두 즐거운 식사를 했다. 현재 시간은 오후 8시 15분. 아직도 밝디 밝은 스페인이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해를 즐기고 있다. 모든 날을 통틀어 가장 힘겨운 순례를 한 오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관광객스러운 오후를 보냈다. 맘 같아선 나도 소화시킬 겸 수영 한 판 더 하고 싶은데, 이 바지마저 적시면 잘 때 입을 옷이 없어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