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miss your family?”
Saint Jean Pied de Port - Roncesvalles - Zubiri - Pamplona - Ciraqui - Los Arcos - Logroño - Najera - Catildelgado - SanJuanDeOrtega - Burgos - Hontanas - Boadilla del Camino - Carrion de los Condes - Moratinos - El Burgo Ranero - Leon - Hospital de Orbigo - Santa Catalina de Somoza - Molinaseca - Villafranca del Bierzo - O Cebriero(28.7km)
= 641.1km
알베르게에서 눈을 떴을 때 창밖의 달빛이 창가에 걸터앉아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개천은 밤을 새우고도 지치지 않고 바삐 흘러 그 소리가 세찼다. 어느 정도였냐면, 머리맡에 놓은 내 휴대폰 알람 소리가 묻혀 한참을 듣다 경우 알아채고 일어났을 정도로. 단층 침대로만 이루어진 방 안에 코를 고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나간 순례자들이 있는지 몇몇 침대는 비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자고 있어 방안에는 나와 달빛, 개천 소리만 깨어있었다. 이 세찬 고요함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만 같았다.
어제 걸으며 너무 힘들었어서 오늘은 진, 수빈이 간다는 라스 에레리아스까지 20km만 갈까 싶은 생각이 있었다. 어차피 모레 사리아에서 묵어갈 예정이어서 오늘 좀 덜 걸어도 아무 상관없었다. 6시 반쯤 길을 나섰다. 이미 해가 떠서 그런지 출발시점부터 전혀 춥지 않았다. 어제 차디찬 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던 게 도움이 된 건지 발목은 물론이고 물집의 상태도 좋았다. 평소 새벽엔 몸이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했었던 반면, 오늘은 시작부터 가뿐했다. 좋게든 나쁘게든 발 상태가 어쩜 이리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뀔까. 매일매일 신기할 따름이다. 트라바델로까지 10km가 순식간이었다. 마을 초입의 바에 앉아 브라우니와 커피를 먹었다. 아쿠아리스도 한 캔 사 가방에 꽂았다. 라스 에레리아스까지라면 겨우 10km가 남았으니 제법 오래 쉬다 출발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순례자들을 제치며 걸어갔다. 단체로 수학여행을 온 건지 학생 무리가 잔뜩 걷고 있어 우르르 제치며 “부엔 까미노”를 외쳤다. 표정들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도 중고딩 때 끌려왔으면 순례길이고 나발이고 진짜 걷기 싫었을 듯. 라스 에레리아스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반이었다. 작지만 깔끔하고 정감 가는 동네였다. 차양막 아래 테이블을 펼쳐놓은 바에 들어갔더니 3성급 호텔이었다. 석식인지 조식인지 몰라도 무려 뷔페식을 제공하는. 묵을지 말지는 좀 더 고민해 보기로 하고 일단 제로 콜라를 시켜 앉았다. 영어 발음으로 보아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한 아저씨가 “너 정말 빨리 걷더라” 하길래 “그러게요. 오늘 컨디션이 좀 좋네요” 했다.
아무래도 여기에서 오늘의 순례를 마치기엔 시간도 너무 이르고 힘이 많이 남았다. 당초 계획대로 오 세브레이로까지 가보기로 하고 가방을 다시 둘러맸다. 마을 끄트머리로 가니 가파른 산이 보였다. ‘아씨 저걸 넘어가야 되는 건가? 가지 말고 여기 묵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발은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오늘 마저 가든 내일 아침 올라가든 어차피 가야 되는 길. 발 컨디션이 좋은 오늘 넘는 게 낫겠지 싶어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오르막은 생각보다 더더 가파르고 빡셌다. 정확한 경사도들은 모르겠지만 체감상 순례길의 오르막 중 가장 가파른 듯도 했다. 역시나 오르막 중간중간 철푸덕 앉아 있는 순례자들이 많이 보였다. 티셔츠는 이미 땀에 온통 젖었고, 이마에서도 땀이 떨어져 선글라스에 계속 떨어졌다. 그 와중에 파리떼는 좋다고 들러붙어 아무리 손을 내저어도 소용없었다. 산 중간에 벌목을 해놓은 통나무 더미가 보여 나도 가방을 대충 땅에 던져놓고 기대앉았다. 아까 사놓은 아쿠아리우스를 조금씩 조금씩 입을 적셔가며 마셨다.
좀 더 올라가니 마을이 보이길래 나는 그곳이 오 세브레이로인 줄 알았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마을이었네 하며 들어서니, 아우씨 그전 마을이었다. 아직 2.3km가 더 남은 거였다. 다시 바에 앉아 콜라와 참치 샌드위치를 시켰다. 드럽게 맛이 없었다. 꾸역꾸역 두 입정도 먹으니 어제 같은 알베르게에 묵었던 미국인 루카스가 올라왔다. 내 테이블에 앉더니 너무 배가 고프다고 샌드위치를 사 왔다. 다른 종류였는데 그 또한 수준은 대동소이했는지 반 정도 먹고 말더라. 가파른 언덕을 땀 빼며 올라온 배고픈 순례자도 만족시키지 못하다니 어떤 의미론 참 대단도 하다. 루카스는 아빠랑 같이 걷는다고 했다. 아빠는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 택시를 타고 먼저 오 세브레이로에 가 계시다고. 그리고 아빠한테는 비밀이지만,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 가면 가족들이 와있을 거라고도 했다. 일종의 서프라이즈라고. 참으로 단란한 가족인 모양이다. 그는 나에게 가족들이 그립진 않냐고 물었고 난 그 질문이 당황스러우리만치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군대 훈련소도 아니고 고작 이거 몇 주 걷는 동안 가족들이 그립냐니.
나머지 2.3km를 오르는 동안 나는 뜻하지 않게 가족을 떠올리게 됐다. 엄마, 아빠와 나로 이루어진 3인 가족은 내 초등 4학년 즈음 깨졌다. 엄마는 쭉 혼자 살다 대구에 사시던 외할머니를 모시고 올라와 2인 가구를 꾸린 지 한 4-5년 된 것 같고, 아빠는 15년여 전 재혼해 12년여 전 이복동생을 낳았다. 자주 만나고 교류하며 내 정신적 지주인 엄마와는 함께 살지 않은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고, 내 독립 전까지 아빠와는 늘 함께 살았으므로 재혼을 했든 이복동생이 있든 어쨌든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아빠네를 먼저 떠올려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빠와 함께 다회 출연했던 관찰 예능에는 “지호 씨 이제 그 집에는 자주 가지 마시고 지호 씨 인생을 사세요”하는 등의 댓글들이 달렸다. 아, 외부인들의 시선에 나는 더 이상 저 가족에 속하지 않아 보이는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해봤다. 엄마와도 아빠와도 난 친하고 가까운 사이고, 각각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전히 의존하는 바가 크지만, 두 집 어디에도 내가 가장 편안하고 아늑함을 느끼는 곳은 없다. ‘가족’이 가족관계증명서를 뗐을 때 나오는 이름들이라면 글쎄 뭐 고작 몇 주 떨어져 있는다고 보고 싶을 정도는 아니고, ‘가족’이 나에게 가장 편하고 안락한 관계를 말하는 거라면 애초에 보고 싶어 할 대상이 없다.
오 세브레이로에 접어들자 악사 한 분과 개 한 마리가 순례자들을 맞아주었다. 악사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길래 당연히 아저씨의 개인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란다. 가방을 내려놓고 쪼그려 앉아 목과 머리를 쓰다듬어준 다음 아저씨한테 환영해 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왔다. 좋아 보이던 사립 알베르게에는 침대가 없었다. 아빠가 먼저 와 자리를 맡아둔 루카스는 골인. 자기 친구의 침대도 맡아놨는데 걔가 오늘 여기 올지 어쩔지 모르겠다며 전화를 해보겠다고 했으나 친구도 여기로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괜스레 미안해하길래 알아봐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하고 나는 공립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요 며칠 묵은 마을들과 알베르게들이 너무 인상적이고 좋았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들어온 공립 알베르게는 정말 별로였다. 침대들이 다닥다닥 붙어 수십 개가 있는 데다 침대 사이도 좁아 가방을 두면 그걸 넘어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 숙박비가 내가 방금 먹은 햄버거보다도 싼데 뭘 더 바라겠나. 하루 자고 일어나면 그만이지. 아, 근데 고도가 높은 만큼 빨래 건조장의 풍경은 죽여줬다. 좋은 점 하나 찾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