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22. ~Villafranca del Bierzo

산티아고 ‘물’례길

by 아레카야자


Saint Jean Pied de Port - Roncesvalles - Zubiri - Pamplona - Ciraqui - Los Arcos - Logroño - Najera - Catildelgado - SanJuanDeOrtega - Burgos - Hontanas - Boadilla del Camino - Carrion de los Condes - Moratinos - El Burgo Ranero - Leon - Hospital de Orbigo - Santa Catalina de Somoza - Molinaseca - Villafranca del Bierzo(32.1km)

= 612.4km


어제 무리의 여파로 오늘은 출발부터 오른 발목이 저릿저릿했다. 순례 초중반부에 아팠던 곳과는 다른 부위, 다른 느낌. 게다가 그놈의 물집은 “얼씨구 씨구 들어”가다가 “죽지도 않고 또 왔”다. 매일의 상태가 이리 다르다니. 인체의 신비는 참 반갑지도 않은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6시쯤 출발했다. 오늘은 30km를 약간 웃도는 거리니 대략 8시간을 잡고 2시경이면 도착하겠다 싶었다. 날이 무더워지고 있었다. 스페인의 온도는 3-4시경 피크를 찍는데, 그때 걷고 있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폰페라다까지 약 7km를 걸었다. 7시 반쯤이었는데, 제법 큰 도시인게 무색하게 순례길 경로에는 문을 연 바가 없었다. 마을을 거의 지나칠 때까지도 바가 없어 구글맵으로 주변 카페를 검색했더니 평점 4.8점의 츄로스 가게가 하나 나왔다.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었다. 문제는 경로에서 벗어나 약 6분을 걸어가야 한다는 건데, 평소 같았으면 재고할 필요 없는 지척이지만 오늘의 나는 이마저도 고민하게 했다. 그럼에도 모닝 츄로스는 못 참지, 경로를 벗어났다. 6시에 오픈한다고 쓰여있던 츄레리아는 그러나 ‘샷다’가 내려져 있었다. 진한 배신감, 상실감, 허탈함. 다시 순례길에 올랐다.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근사한 가게가 하나 나왔다. 죽으란 법은 없구나. 베이글 샌드위치와 오렌지주스, 라떼를 시키고 앉아 신발을 벗었다. 맛은 평범했다. 뭐, 순례길에서 런던 베이글을 기대한 건 아니었으니 그만하면 훌륭했다고 할 수도 있었다.



다음은 10여 키로를 더 가서 캄포나라야 마을에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걸었다. 약간의 쉼이 도움이 됐는지 이번 10km는 초반 7km 보다 무난했다. 벌써?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이상한 조합이지만 초코빵과 제로 콜라를 시켰다. 이곳의 포카리스웨트 격인 아쿠아리스도 한 캔 시켜 가방에 꽂았다. 가다 마실 심산이었다. 목적지까지는 14km가 남아 단숨에 달리긴 긴 거리였다. 아닌 게 아니라 발목이 다시 아파오고 날씨는 무더웠다. 6km 정도 간 뒤 나온 카카벨로스라는 마을에서 그늘에 놓인 벤치를 애타게 찾았다. 그늘이면 벤치가 없거나, 벤치가 있으면 뙤약볕이어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딱 벤치만 그늘에 들어앉아 있으면 다리는 무방비로 햇빛에 노출되는 데에 앉았다. 아쿠아리스를 원샷했다. 아직도 10km 가까이 남아있었다.



얼마 안 가 갈림길이 나왔다. 차도를 걸어야 하는 짧은 길과 도보가 이어지는 조금 긴 길. 오늘은 안전하고 긴 거리를 택할 컨디션이 아니었다. 주저 없이 차도를 걸었다. 샛길도 없이 말 그대로 차도를 걷는 코스였어서 조금 위험해 보이기는 했지만 교통량이 그리 많은 건 아니어서 차들은 중앙선을 넘어가며 나를 피해 가줬다. 갈림길이 끝나니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갈림길이 다시 합쳐지고 차도와 도보가 나뉘자 한 할아버지가 체리를 팔고 있었다. 별생각 없어 지나가려는데 시식으로 두 알을 내밀길래 먹어봤다가 한 봉지를 샀다. 도대체 이 가성비는 어디서 나온 건지 1유로래서 내가 잘 못 알아들은 건가 하고 재차 물었는데 “우노”, “우노” 했다. 앞가방에 꽂고 쉴 새 없이 먹으며 투- 투- 씨앗을 뱉어 헨젤과 그레텔처럼 내가 온 경로를 표시했다. ‘이 길엔 이제 체리나무가 자라려나?’ 시답지 않은 상상을 하면서.



아까 저 앞에 가던 사제복을 입은 사내가 바로 앞에서 나타났다. 시카고에서 온 사제 존이었다. “아우씨 길을 잘못 들었어” 그가 말했다. 그는 이 무더위에 검은색 사제복을 입고 걷고 있었다. 한 벌로 된 사제복은 긴팔과 긴치마가 합쳐진 형태였다. “으 이 날씨에 길을 잘못 들다니. 난 얼른 도착해서 개천에 뛰어들고 싶어“ 하고 나서 ”너한테는 더 그렇겠다“고 덧붙였다. 대화를 하며 함께 걸으니 훨씬 나았다. 진, 수빈만큼은 아니지만 그도 걸음이 꽤 빨라서 함께 걷기에 좋은 파트너였다. 나도 천주교 신자고 내 세례명은 미카엘이라고 알려줬다. 사실 냉담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는 2027년 카톨릭 세계청년대회가 서울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나는 “맞아. 새 교황이 한국에 오실 예정이지. 너도 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걸으며 실을 꼬아 묵주를 만들고 있었다. 그냥 걷기도 힘들고, 사제복을 입고는 더 힘들 텐데 정말 대단했다. ”그..그거 만드는 거야? 영어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네. 한국말로는 ‘묵주’라고 부르는데“ 하니 그가 ‘rosary’라고 알려줬다. 신자라고 밝히고는 묵주도 영어로 모른다니 조금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더 예상 밖이었다. “하나 줄까?”



내가 “세상에, 그건 투머치인데. 너의 엄청난 노고가 들어가 있는 거잖아!” 하니 그는 “어차피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만드는 거야. 지금 만들고 있는 거 말고 가방에 만들어 놓은 게 더 있어. 팔찌 버전도.”라고 했다. 준다면 나야 너무 고맙다고 하자 그늘에 가방을 내려놓고 나에게 파랑, 빨강, 흰색 실로 만든 묵주 팔찌를 건넸다. “한국의 색이기도 하네”하고 덧붙인 걸 보니 태극기도 아는 모양이었다. 팔찌를 건네고 그는 팔찌에 강복을 해줬다. 효력(?)이 있는 성물이 된 셈이다. 만난 지 길어봐야 30여분 된 미국인 사제로부터 그가 직접 만든 묵주를 선물 받다니. 예상치 못한 선물에 나는 대단히 감동했다. 그와는 숙소가 달라 마을 초입에서 헤어졌는데 인사를 나누고 멀어지다 내가 다시 그를 불러 우리 사진 한 장 남기자, 고 해서 셀카를 남겼다. 사제복을 입고 걷는 이는 어디서든 눈에 띌 테니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 숙소는 조금 더 가서 다리를 건너면 있었다. 다리 아래로 보이는 물은 정말 투명해서 바닥에 돌들이 훤히 보였다. 순례길에서 내가 들어가 본 어떤 물보다 깨끗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의 마을은 저 개천 때문에 일부러 고른 건 아니었고, 적절한 거리를 기준으로 마을을 고르고 나니 지도상에 물길이 보여 “혹시?” 하며 온 거였는데 저건 정말이지 안 들어가고는 못 배길 개천이었다. 아, 당장에라도 가방을 집어던지고 들어가고 싶다, 고 생각하며 숙소에 체크인을 마쳤다. 이 알베르게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왔었는지 군데군데 한국인의 흔적이 보였다. 벽에는 태극기가 두 개나 붙어있고, 기본 도장 위에 알베르게의 이름이 한글로 쓰인 도장을 하나 더 찍어줬다. 다른 한국인이 여기서 직접 깎아 만든 도장이란다. 방을 배정받아 올라오니 모든 침대가 단층이었다. 너무 좋다. 어차피 수영을 하고 나면 또 씻어야 될 텐데 어제처럼 씻기 전에 개천부터 다녀올까 하다가 막상 짐을 풀고 양말을 벗으니 너무 힘들어 갈까 말까를 고민하게 됐다. 일단 씻고 손빨래를 마쳤다.




빨래를 어디다 널어야 하는지 물어보기 위해 다시 카운터로 내려가니 서양인 한 무리가 막 도착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나한테 “오! 우리 너 봤었어. 어디였더라. 아, 팜플로나 ‘까사 이베로라’!” 했다. 나는 전혀 기억도 안나거니와 팜플로나라니, 그건 거의 전생 같은 느낌이었다. “와 너 정말 기억력이 좋구나. 꽤 오래전인데!” 하니 귀여운 지비츠들이 달린 내 흰 크록스를 분명히 기억한다고 했다. 아하 그거였군. 빨래를 널고 방으로 돌아오니 그들도 내 방에 배정됐고 개천에 갈 거라고 했다. 함께 길을 나섰다. 미시시피에서 온 메리와 라일리였다.



숙소에서도 개천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만큼 가까운 거리인데, 천변으로 접근하려면 10여 분은 걸어야 했다. 메리를 졸졸 쫓아가다 “아니 우리 근데 개천에 가까워지고 있는 거 맞아?” 하니 라일리가 껄껄 웃었다. 약 3분 여를 더 걷자 드넓은 천변의 잔디밭과 물로 들어가기 딱 좋게 계단이 나있는 환상적인 공간이 펼쳐졌다. 두시 반정도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직 사람들이 많진 않았고 물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물이 보이자마자 걸으며 바로 웃통을 벗고 그늘에 짐을 내려놓은 뒤 물로 향했다. 물은 시리게 찼다. 그대로 다이빙. 생각했던 것보다 더 차가웠던 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딱 서면 얼굴만 나오는 깊이도 좋았다. 적당히 몸을 식히고 나와 잔디밭에 스포츠 타올을 깔고 누웠다. 선크림이나 태닝오일도 없이 앞뒤면을 고루 굽고 있으니 점점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교를 한 중고딩들이 우르르 몰려와 옹기종기 자리를 잡았다. 하교 후 학원에서 문제집을 펼치는 게 아니라 천변 잔디밭에 돗자리를 펼치는 삶이라니.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20살 어린 내 초딩 동생이 생각났다. 걔는 이미 주말도 없이 학원을 다닌 지가 한참이다. 주말에 본가에 저녁을 먹으러 가면 학원이 끝나고 와 얼른 저녁을 먹고는 또 과외 선생을 맞이했다.



태닝을 하다 뜨거운 햇살에 땀이 나면 야외 냉탕으로 열을 식히고 나와 다시 태닝. 어라, 내가 어제의 글을 다시 쓰고 있나. 어제도 오늘도 물의 축복이 끝이 없다. 오늘의 천변엔 바로 붙은 가게가 있어 끊임없이 음료 수혈이 가능했다. 심지어 슬러시를 팔았다. 이름도 시원한 트로피칼 슬러시를 사 와 개천에 발을 담그고 서서 쪽쪽 빨았다. 약간 외롭긴 해도 더할 나위 없었다. 메리와 라일리는 양키들답지 않게 햇빛을 즐기기보다는 그늘막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양키도 양키 나름인가, 캘리포니아 출신이 아니라서 그런가, 싶었다. 앗, 근데 ’양키‘는 약간 비속언가? ’뉴욕 양키스‘도 있는데 괜찮은 단어겠지? 몇몇 미국인들이 더 와서 나는 그들과 또 통성명을 했다. 유럽인들이야 당연히 가까우니 많다 치고, 순례길엔 미국인들도 생각보다 참 많다. 뚱땡이 미국인 리는 물에 뛰어들자마자 냅다 접영을 갈겼다. 레인이 있는 수영장도 아닌 개천에서 접영을 하는 건 또 처음 봐서 나는 웃었다.



시간이 쏜살같아 5시 반이 됐다. 오늘도 하루 종일 베이글과 체리 말고는 먹은 게 없어 슬슬 어지러웠다. 미국 친구들에게 먼저 돌아간다고 인사하고는 돌아오는데 아뿔싸, 식당들이 저녁 장사를 시작하기 전이었다. 이곳은 보통 8시, 일러도 7시는 돼야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스페인이었다. 하는 수 없이 커피만 한 잔 시켜 마시며 이 글을 쓴다. 다행히 이곳은 7시부터 저녁을 판다고 하니 앞으로 한 시간 정도만 있으면 되겠다. 그전에 다시 샤워도 해야 하니 시간은 얼추 맞을 듯. 아 오늘의 오후도 정말 좋았다. 순례길인데 걷는 것만 빼고 다 좋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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