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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카야자 May 24. 2019

밀리미터(mm)의 세상

벌초 앞두고 '살인 진드기' 비상…폭염으로 역대 최고치


2018년 8월 18일은 토요일이었다. 토요일엔 주로 대규모 집회가 있거나 사건 사고 발생 정도를 커버하는 날이다. 2개월차 수습이 예상할 수 있는 토요일의 일이란 주로 그런 것들이었다.


"가서 진드기 좀 찍어와라. 뭐 한 손톱만한가본데 어떻게 찍을지 생각해보고 필요한 장비들 챙겨가."


진드기? 현장을 진득하게 찍어오라는 말인가? 설마 진짜 진드기?

한번도 진드기를 실제로 본적이 없었던 나는 진드기를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좌) https://blog.naver.com/sjw110427/221115913099    (우) 네이버 검색 '진드기'

0.2 ~ 10mm. 가장 큰 녀석이 1cm가 안된다는 소리였다. 손톱만하다더니. 손톱만한 진드기를 만난다면 그건 말그대로 '뉴스거리'가 될 일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발생 사건, 집회, 시위, 기자회견 등을 위주로 경험을 쌓아가던 2개월차 수습이었다. 제작성 아이템을 맡아본 적 없던 수습에게 밀리미터(mm)의 세상은 아득했다.


180905 뉴스데스크 <벌초 앞두고 '살인 진드기' 비상…폭염으로 역대 최고치>


현장에 도착해 그날 동행하기로 한 진드기 연구원들을 만났다. 방진복을 입었다. 신발도 방진포로 감쌌다. 장갑도 꼈다. 취재기자에게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쥐어주고 연구원들과 함께 산을 오르는 모습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찍었다. 채집 현장에 도착하자 이미 더워 죽을 것 같았다.

본게임은 시작도 전이었다.

 

180905 뉴스데스크 <벌초 앞두고 '살인 진드기' 비상…폭염으로 역대 최고치>


연구원들이 채집을 위해 준비해온 정전기 천을 잔디에 문지르자 진드기들이 붙어나왔다. 작아도 너무 작았다.


거기에다 아뿔싸, 이놈들 벌레였지.

천 위에서 쉴새없이 움직였다.


180905 뉴스데스크 <벌초 앞두고 '살인 진드기' 비상…폭염으로 역대 최고치>


TMI ; 영상 취재에 주로 사용하는 ENG(Electronic News Gathering) 카메라에 달려있는 렌즈는 -후드를 포함해- 가로 159.3mm, 세로 106.6mm의 크기를 지닌다. 가장 큰 몸집의 가로세로 10mm 진드기라고 가정했을 때도 최소 160마리의 진드기를 올릴 수 있는 크기라는 뜻이다. 해당 렌즈의 MOD(Minimum Object Distance, 최소초점거리 혹은 최단촬영거리)는 60cm이다. 포커스링을 가장 짧게 돌려도 저녀석들과 렌즈는 최소 60cm가 떨어져야 한다. 

(출처 : https://www.usa.canon.com/internet/portal/us/home/products/details/lenses/broadcast/hdtv-portable-hdgc-lenses/kj17ex7-7b-series)


게다가 진드기는 '무릎 높이'의 풀 '뒷면'에 주로 붙어있다. 트라이포드를 세워 찍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180905 뉴스데스크 <벌초 앞두고 '살인 진드기' 비상…폭염으로 역대 최고치>


나는 이 날의 취재동안 거의 땅바닥을 기어다녔다. 눈으로 진드기를 찾은다음 그 주변에 렌즈를 향하고 뷰파인더에 눈을 대면 다시 진드기는 보이지 않았다. 움직여 사라졌거나, 익숙치 않은 흑백의 뷰파인더를 통해 발견하기엔 풀이 너무 울창했다.


이날의 최고온도는 32ºC였다. 위아래로 방진복을 뒤집어쓴 나의 땀방울이 쉴새없이 뷰파인더 위로 떨어졌다.


180905 뉴스데스크 <벌초 앞두고 '살인 진드기' 비상…폭염으로 역대 최고치>


취재를 계속하다 고무 재질의 장갑이 촬영에 방해가 돼 장갑을 벗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시장가에 파리를 쫓기위해 물을 담아 부풀려놓은 고무장갑같은 꼴이었다.

손가락은 사우나처럼 쭈글쭈글.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회사의 전통과 같은 수습기자=정장 때문이었을까? 반팔 반바지면 좀 나았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과 같이 청바지에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다면 좀 나았을까? 글쎄, 크게 다르지 않았을것같다. 그만큼 더운 여름이었고 방진복은 삼계탕 속 찰밥처럼 몸에 쩍쩍 들러붙었고 땀에 젖은 구두는 뻘을 걷는 냥 질척거렸다. 그런 여름이었다.


180905 뉴스데스크 <벌초 앞두고 '살인 진드기' 비상…폭염으로 역대 최고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거나 국가적으로 이목이 집중된 여러 현장들에 부지런히도 다녔지만 지난 1년여를 돌아보며 기억에 남는 몇가지 현장들을 브런치에 남겨봐야겠다고 생각한 시점에 이 진드기가 떠올랐던건 아마도 살인 진드기의 어마어마한(?) 몸집과 2018년 여름의 어마어마했던 더위 때문일 것이다.








진드기 취재를 함께갔던 선배와 지난주 오랜만에 함께 현장에 나갔다. 9개월여만에 함께 일정을 나간 선배가 먼저 작년 진드기 취재 이야기를 꺼냈다. 정말 더웠었다고, 수습과 함께나가 큰 기대 안했는데 그림이 좋았었다고 데스크와 함께 감탄 했었다며 칭찬했다.


무더웠던 수습의 여름을 지나고 두번째 여름을 목전에 둔 날이었다.






해당 리포트 ; http://imnews.imbc.com//replay/2018/nwdesk/article/4806897_226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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