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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카야자 May 24. 2019

가족을 묻은 이들에게 묻고 싶은 것들을 묻어둬야할 때

'구조 중 순직' 소방관 눈물의 합동 영결식

[미방분] 2018년 08월 16일 경기도 순직 소방공무원 합동 영결식


2018년 08월 12일 한강 하류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던 김포 소방서 소속 오동진 소방위와 심문규 소방장이 탄 배가 전복되며 두 대원이 보 아래로 떠내려가 순직했다.


나흘 후 16일, 김포에 위치한 한 체육관에서 두 소방대원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미방분] 2018년 08월 16일 경기도 순직 소방공무원 합동 영결식


여전히 무더운 여름이었고

나의 수습은 해제를 한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취재로 마주한 첫 '죽음'이었다.


180817 뉴스투데이 <'구조 중 순직' 소방관 눈물의 합동 영결식>


일로 맞이한 죽음은 비현실적이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위치에 있는 죽음이 아니라

렌즈를 통해야, ENG카메라를 너머야 있는 세상의 일 같았다.


180817 뉴스투데이 <'구조 중 순직' 소방관 눈물의 합동 영결식>

사람들이 울기 시작했다.  


순직한 소방관의 동료가 추도사를 읽자 유족은 물론 참석한 소방관들도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 모습들을 렌즈에 담았다.


순직한 한 소방관의 쌍둥이 아들 중 하나는 떼를 쓰기 시작했다. 소방관의 어머니이자 그 아이의 할머니는 자리를 잠시 떠나 아이를 달랬다. 그 모습 또한 찍었다.


180817 뉴스투데이 <'구조 중 순직' 소방관 눈물의 합동 영결식>


기분이 이상했다. 좋지 않았다.


동료, 아들, 남편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마지못해 터뜨리는 울음을 기회인냥 포착하는 내 스스로가 뭐랄까, 징그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운대로 사이즈 구도 노출 포커스 등을 떠올리며 최대한 많은 컷들을 찍어갔다. 찍는 법은 배웠지만 일하면서 동시에 슬퍼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나는 슬퍼하지 못했다. 그게 싫었다.


180817 뉴스투데이 <'구조 중 순직' 소방관 눈물의 합동 영결식>


시신은 운구차에 실려갔다.


백 명의 소방관들은 떠나는 운구차에 거수 경례를 했다.

몇몇은 아직 울고 있었고 몇몇은 눈을 감고 있었다.


[미방분] 2018년 08월 16일 경기도 순직 소방공무원 합동 영결식


시종일관 슬펐으나 슬퍼하지 못했고 스스로가 싫었으나 내색할 수 없었던 내 표정은 어땠을까,

이제와 나는 묻는다.



                                                                        




운구차가 떠나고 나서 동행한 취재기자 선배가 데스크의 지시라며 유족들의 인터뷰를 시도해보자고 했다.

내키지 않았다. 싫은 내색을 했다. 정 하고싶으시면 나는 여기 있을테니 선배가 인터뷰 하겠다는 유족을 직접 찾아보라고 했다.


그 후로 많은 -장례식, 영결식을 포함한- 취재를 다녀보며 이런 지시는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걸 알게됐다. 어쨌거나 지금도 그건 데스크의 잘못된 지시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나와 동행했던 취재기자 또한 결코 내키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안에서 시키니 시도정도는 해보고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딱 자른 "싫다"는 말보다는 함께 대안을 고민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해당 리포트 ; http://imnews.imbc.com//replay/2018/nwtoday/article/4763431_226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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