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떨리던 목소리

아직도 내 안엔, 그날의 소녀가 산다

by 애나 강



비가 내리면 문득 그때 생각이 난다.
중학교 시절, 나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친구가 없던 건 아니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지냈지만, 수업 시간만 되면 다른 세상 사람이 된 것처럼 작아졌다.


그날도 그랬다. 국어 시간,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순간 손끝이 차가워지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분명 읽을 줄 아는 글자들이었는데, 목소리가 내 뜻대로 나오지 않았다.
혀가 꼬이고, 글자가 눈앞에서 흐릿해졌다.
결국 몇 줄 읽지도 못하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수업이 끝난 뒤, 반장이 내 옆에 다가와 말했다.
“괜찮아, 누구나 그런 날 있어.”
그 짧은 말이 내 마음을 꼭 안아주는 것 같았다.
그 위로 덕분에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었지만,
그날의 떨림은 내 안 깊숙이 자리 잡고 트라우마가 되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누군가 앞에서 무언가를 읽으려 하면 그때 기억이 먼저 찾아온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목이 바짝 마른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한다.
“괜찮아. 천천히 하면 돼.”


이상하게도, 막상 다 읽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닌데
읽기 전까지는 온몸이 긴장한다.
혼자 있을 땐 잘 읽다가도, 누군가 앞에만 서면 어김없이 떨린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연습했다. 거울 앞에서 책을 소리 내어 읽고, 목소리를 녹음해 들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 앞에서는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


요즘은 성당 반모임에서 성경을 함께 읽는다.
내 차례가 다가오면 그 옛날 교실이 다시 떠오른다.
그럴 때면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괜찮아, 천천히 하면 돼.’
그리고 신기하게도, 어느새 나는 자연스럽게 읽고 있다.
그 순간, 마음속의 어린 내가 조용히 미소 짓는다.


나는 여전히 떨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떨린다는 건 도망쳐야 할 감정이 아니라,
내가 여전히 용기 내고 있다는 신호라는 걸.


비 오는 날이면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인사한다.
“괜찮아, 그때도 지금도 잘하고 있어.”


그렇게 나는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나를 다독이며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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