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아픔을 오해한 시간
처음 어깨에 통증이 찾아왔을 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이 들면 다 그렇지.”
“오십견은 운동하면 나아진대.”
주위에서 들었던 그 말들이, 내 마음 속에서 이유 없는 확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참았다.
조금씩 당기고, 옷을 입을 때 아프고, 팔을 올릴 때 찌릿했지만
‘조금만 버티면 괜찮아지겠지’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잠을 잘 때는 괜찮았고, 머리를 감을 때도 아프지 않았던 처음의 그 상태가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는 미끼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통증은 어느 순간부터 조용히 깊어지기 시작했다.
자려고 누우면 욱신거리고, 머리를 감기만 해도 어깨 속 깊은 곳이 아려왔다.
아픈 줄 알면서도, 나는 더 열심히 운동했다.
운동하면 낫는다는 말을
진실처럼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남편이 옆에서 “한의원 한번 가보자”고 말할 때도
나는 그 말을 흘려보냈다.
스스로 내 통증을 너무 단단하게 정의해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오십견이야.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그렇게 나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계속 무시했다.
결국 견딜 수 없는 통증에 며칠 전 한의원을 찾았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아주 단순하지만 무거운 진실을 들었다.
“이건 오십견이 아니라, 회전근개 증후군이에요.
파열 가능성도 있습니다.”
순간, 그동안의 시간들이 한꺼번에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내가 했던 운동들이
통증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아픔을 더 깊게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이
불현듯 나를 후려쳤다.
‘내가 내 몸에게 이런 일을 하고 있었구나.’
그 생각이 들자 마음이 아팠다.
아무도 탓할 수 없었다.
오해한 것도, 버틴 것도,
아무것도 아닌 통증이라고 말한 것도
모두 나였다.
한의원 선생님은 말했다.
“오십견은 운동으로 풀리지만, 회전근개는 다릅니다.
치료가 먼저이고, 그다음이 운동이에요.
지금처럼 계속 쓰면 염증이 악화됩니다.”
처음 아팠을 때 침이라도 맞았다면
지금보다는 가벼웠을 거라는 말에
가슴이 한 번 더 내려앉았다.
몸은 이미 나에게 수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나는 듣지 않았다.
아파도 괜찮다고, 버티면 나아질 거라고
혼자만의 결론을 내리고 살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종종 그런 선택을 한다.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별것 아닌 것처럼 무시하고,
스스로 괜찮다는 이유를 만들어내며
조금 더 버티려고 한다.
하지만 아픔은 늘 우리보다 더 정직하다.
속이 상하면 아프다고 말하고,
무리하면 당기고,
더 아프면 쉬라고 말한다.
나는 그 단순한 진실을 이제야 배웠다.
지금 나는 치료를 받고 있다.
운동을 멈추고, 아픈 곳을 쉬게 하고,
조금씩 천천히 몸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다.
통증은 여전히 있지만
그 아픔을 이제는 오해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바란다.
내 어깨가 다시 가볍게 움직일 수 있기를.
내 몸이 나를 용서해주기를.
그리고 앞으로는
몸이 말하는 작은 신호들을
더 귀 기울여 들을 수 있기를.
아픔을 오해했던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같은 실수를 줄이는 작은 경험이 되기를 바라며
이 이야기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