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런닝

천천히 정말 천천히 뛰기

by 애나 강


아침 공기가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서늘하게 흐르는 시간,
나는 천천히, 정말 천천히 뛰기 시작한다.
요즘 대세라는 슬로우 런닝을 따라 해보는 건데,
사실 이유는 단순하다.
‘뛰고 싶은데 몸은 예전 같지 않고,
그냥 걷자니 마음이 어딘가 허전해서’
그 중간쯤 어딘가를 찾고 싶었다.

처음에는 발걸음이 어색했다.
뛰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것도 아닌 이 속도가
왠지 민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가슴 안에 오래 묵혀두었던 무언가가
살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달리기라는 ‘운동’이 아닌,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어가는 순간이었다.

슬로우 런닝은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몇 km를 뛰었는지, 페이스가 어떤지,
누구보다 빨랐는지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대신 이런 것들이 새겨진다.

— 바람이 볼을 스치는 방향
— 마지막 단풍잎이 떨어지는 시간
— 숨이 가빠지지 않아 들리는 내 마음의 목소리
— 오늘도 살아낸 나에게 건네는 작은 응원

빠르게 달리던 시절에는 몰랐던 것들이다.
삶에서도 그랬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
나는 늘 숨이 조금씩 가빠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한 건
놓치고 지나간 날이 많았다.

천천히 달리면서 비로소 깨닫는다.
속도를 줄인다고 해서
나의 하루가 뒤처지는 건 아니라는 걸.
오히려 숨을 고르게 만들고,
마음을 무너지지 않게 해주며,
내 인생의 리듬을 찾게 해주는 건
이 느린 속도라는 걸.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속도가
내가 살아내고 싶은 삶의 속도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코너를 돌 때쯤
해가 천천히 길을 밝힌다.
그 빛 사이로
오늘의 나도 조금씩 따뜻해진다.
어제보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고,
누군가보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확신이
작게, 그러나 단단하게 자리 잡는다.

슬로우 런닝은 몸을 위한 운동이기도 하지만,
사실 마음을 위한 휴식이다.
잠깐 멈춰 서도 괜찮다는 허락,
천천히 살아도 된다는 위로가
발걸음마다 리듬처럼 이어진다.

오늘도 나는 천천히 뛰며
조용히 나에게 속삭인다.

“늦어도 괜찮아.
지금 이 속도가,
네가 살아내고 싶은 인생의 속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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