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아직도 캔 안에 남아 있다
큰딸은 쥬스를 좋아한다.
마트에 가면 새로운 맛을 발견하는 눈이 바쁘다.
오늘은 이거, 다음엔 저거.
세일 스티커가 붙어 있으면 더 반갑다.
이번에도 그랬다.
마트 한쪽에서 세일 중인 포도 봉봉캔을 몇 개 집어 왔다.
캔을 보는 순간, 나는 멈칫했다.
손이 아니라 기억이 먼저 반응했다.
포도 봉봉캔.
그 이름 하나로 내 머릿속은 아주 오래전으로 되돌아갔다.
어릴 적 포도 봉봉은 아무 때나 마시는 음료가 아니었다.
아플 때, 혹은 누군가를 방문할 때.
병문안을 가며 조심스럽게 들고 가던 음료였고,
몸이 아파 이불 속에 누워 있을 때
친정엄마가 다녀오며 사 오시던 특별한 캔이었다.
캔을 딸 때의 소리,
차갑게 느껴지던 손끝,
그리고 포도 알갱이를 씹을 때의 그 묘한 달콤함.
그건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 같았다.
지금은 다르다.
성인이 된 나는 언제든 마트에 가서 포도 봉봉을 살 수 있다.
돈도 있고, 시간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막상 사서 마시지는 않는다.
마트 진열대에서 포도 봉봉을 보면
“아, 예전에 먹었지.”
그 생각까지만 하고 지나친다.
손은 뻗지 않고, 눈으로만 추억을 마신다.
반면 큰딸은 다르다.
맛있어 보이면 사고,
세일이면 더 좋다.
지금의 기분에 솔직하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젊어서 다른 걸까,
아니면 나는 어느새
‘맛’보다 ‘기억’을 먼저 계산하는 사람이 된 걸까.
포도 봉봉은 여전히 달다.
맛은 변하지 않았을 텐데
그걸 대하는 나는 많이 달라졌다.
아플 때만 허락되던 음료,
특별한 날에만 마시던 캔.
그 시절의 나는
아마도 지금보다 더 적게 가졌지만
더 쉽게 기뻐했을 것이다.
큰딸이 포도 봉봉을 마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지만
묘하게 마음이 채워졌다.
추억은 이렇게
캔 하나로도 돌아오고,
세대 사이를 조용히 건너온다.
오늘도 나는 포도 봉봉을
마시지는 않고
잠시 바라보다가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가끔은
눈으로만 보지 말고
한 모금쯤은
지금의 나에게도 허락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