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마지막 밤, 그 곁에 남은 한 사람
역사는 늘 승자의 이름으로 기록된다.
그래서 패자의 곁을 끝까지 지킨 사람은
대부분 각주처럼 남거나, 아예 사라진다.
엄흥도는 그런 사람이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고
단종은 왕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왕이었던 사람은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었고,
사람들은 빠르게 등을 돌렸다.
살기 위해서였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혹은 그냥 그렇게 세상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때 엄흥도는 떠나지 않았다.
단종이 영월에서 생을 마쳤을 때,
그의 죽음조차 조용히 처리되기를 바라는 시대였다.
장례는 허락되지 않았고
시신은 누구의 것도 아닌 것처럼 방치될 운명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를 여전히 임금으로 기억했다.
엄흥도였다.
그는 밤을 택했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움직였고
말없이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듯이.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발각되면 죽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묻지 않았다.
‘이게 나에게 이득인가’라는 질문을.
엄흥도는 영웅이 아니었다.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화려하지도 않았고
역사를 바꾼 인물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사람이 끝까지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은 사람이었다.
모두가 외면할 때
한 사람만 기억해 주어도
그 존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단종을 만난다.
더 이상 쓸모없어졌다는 이유로,
힘을 잃었다는 이유로
쉽게 버려지는 사람들.
그리고 그 곁을 떠나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어쩔 수 없었다”고.
엄흥도의 이야기가
지금도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너무 인간적이어서일지도 모른다.
끝까지 임금이었던 사람을
임금으로 불러준 단 한 사람.
그 이름이
엄흥도다.